강 론 말 씀

2020년 2월 9일 연중 제5주일 - 오상선 신부

dariaofs 2020. 2. 9. 06:04



오늘 미사 독서들을 통해 "빛"이 우리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여기저기에서 온통 "빛"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 5,16).
빛은 어둠을 밝히고 감추인 것을 드러냅니다. 암흑에 묻혀 있던 것을 드러나게 하고 보이게 하지요. 빛은 작은 방 안에서도 많은 활동을 가능하게 하지만, 망망대해나 첩첩산중에서 멀리 보이는 한 점 불빛이 삶의 의지와 희망의 청신호가 되기도 합니다.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6).
예수님은 물리적으로 빛을 낼 수 없는 우리 인간이 빛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십니다. 바로 "착한 행실"입니다.

선함은 우리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이라는 증거입니다. 그분이야말로 선 자체이십니다. 우리가 보이지 않는 주님과 내적으로 통교하고 사랑을 나누는 그 힘이 우리 육신을 통해 외부로 흘러나오는 것이 곧 "착한 행실", 사랑이라 할 수 있지요.

"착한 행실"은 행위의 주인공 내면에 계시는 하느님을 드러냅니다. 그분은 감추어 계실 수 없는 빛이시니 우리를 통해 그렇게 새어나올 수밖에 없으십니다.


진정 "착한 행실"은 자기에게로 시선을 모으지 않고 착함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인식하게 만듭니다. 행여 그 시선이 우리에게 멈추면 얼른 그 영광을 주님께 돌려 드리는 것이 우리의 몫이지요. 거기까지 가야 "착한 행실"입니다.

"나의 말과 나의 복음 선포는 ... 성령의 힘을 드러내는 것"(1코린 2,4).
그래서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자신이 아닌, 자기를 움직이는 힘이신 성령을 드러냅니다.


그가 전하는 기쁜 소식은 인간 바오로 사도의 전유물이나 발명품이 아님을 분명히 하는 것이지요. 그래야 그를 접한 이들의 "믿음"이 "하느님의 힘"에 바탕을 둘 수 있습니다.

제1독서에서는 "착한 행실"을 구체적으로 서술합니다.

"굶주린 이, 가련하게 떠도는 이, 헐벗은 사람, (곤란을 겪는) 네 혈육, 고생하는 이."


"착한 행실"의 대상은 도처에 존재합니다. 인류가 생긴 이래 가난과 질병과 고통이 없었던 적이 없으니, "인간의 하느님 모상다움"인 "착한 행실"도 역사와 맥을 같이해 왔을 것입니다.

"그리하면 너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 나오고 너의 상처가 곧바로 아물리라 ... 주님의 영광이 네 뒤를 지켜 주리라"(이사 58,8).
주님은 예언자를 통해 나눔과 희사, 자선과 선행을 하는 이에게 그 보상을 잊지 않으십니다. 착하게 산다고 삶의 고통이 비껴가지는 않으나 그 상처를 곧바로 치유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네가 부르짖으면 '나 여기 있다' 하고 말씀해 주시리라"(이사 58,9).


참 든든하지 않습니까! 그분은 가난한 이는 물론 가난한 이와 함께하는 사람의 목소리까지 늘 귀를 기울이고 계십니다.


작은 신음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시려고 집중하십니다. 언제라도 즉각 "얘야 나 여기 있으니 안심해라. 걱정하지 마라."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으십니다.

사랑하는 벗님! 우리는 빛입니다. 참빛이신 주님을 담아내고 투영하고 반사하는 작은 빛들입니다.


이웃에게 딱히 그리스도를 보여준 적이 없는 것 같아 손사래 치는 분도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우리가 주님 향한 내면의 불꽃을 끄지 않고 말씀의 빛줄기를 간직하고 있는 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빛이신 분께서 어느 틈으로든지 새어나와 당신을 드러내셨을 겁니다.

다급히 지나가는 구급차 소리에, 공사현장 높은 곳을 아슬아슬 오가는 노동자의 발걸음에, 골목을 누비는 배달 오토바이 뒷모습에 우리는 잠시지만 그들의 무사 안전을 위해 마음을 모읍니다.


어려운 이들을 위해 지갑을 열고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이에게 부러 다가가 눈맞춥니다. 작고 미소한 일상이지만 우리에게 집중해 귀기울이고 계시는 주님처럼 우리가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를 구하거나 나라를 지키는 엄청난 영웅은 못 되어도, 일상에서 바치는 소박한 전구기도와 정성된 나눔, 동행과 연대, 미소와 격려 모두가 참빛이신 분을 드러내는 작다란 빛입니다. 빛이신 벗님을 축복합니다. 빛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