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2월 16일 연중 제6주일 - 오상선 신부

dariaofs 2020. 2. 16. 07:25


오늘의 말씀은 계명 이야기입니다.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 5,17).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동이 기존 종교 질서와 마찰을 빚자,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마치 체제 파괴자처럼 불편하게 여깁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시각의 전환을 유도합니다. 얼핏 율법을 어기는 것으로 보여도 실상 본질을 찾아 완성하는 이는 "오히려" 예수님이고, 겉으로는 율법을 수호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 본질에서 퇴행하는 이들은 "오히려" 너희라는 뜻입니다.

"완성"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하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율법 조항의 정점이고 포괄이며 요약인 "사랑"을 죽음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지키고 그렇게 가르치심으로써 율법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계명 가운데 첫째 가는 계명이며(마태 22,37-39 참조), 또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로마 13,10 참조).

이어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계명들 가운데 몇 가지를 들어, 그 정신과 본질을 사는 길을 일러주십니다. 그런데 더 어려운 길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우리는 살인까지는 안 해도 종종 미움에 빠지고 성도 내며 비난을 하기도 합니다. 행동까지 옮기지 않지만 못된 생각을 하기도 하고 자기 정당성을 위해 하느님 이름을 들먹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예수님은 지금 또다른 계명의 세부 조항을 만들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모두를 아우르는 하나의 길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오늘 복음 대목에 "사랑"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지만, 결국은 "더 사랑하면 된다"고 이르시는 겁니다.

제1독서에서는 계명을 지키는 주체를 명확히 합니다.

"네가 원하기만 하면 ... 네 뜻에 달려 있다"(집회 15,15).
"원하는 대로 선택하여라"(집회 15,16).
"바라는 대로 받으리라"(집회 15,17).

계명을 따름은 억지로 끌려가는 길도 아니고, 그냥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원하고 바라고 뜻해야 합니다.


그래서 화답송은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이들의 행복을 노래하면서, "저는 끝까지 그 길을 따르오리다"(화답송)라고 계명의 길을 걷은 이의 의지를 강하게 표명합니다.

제2독서에서는 지혜를 이야기합니다.

"하느님의 신비롭고 감추어져 있던 지혜"(1코린 2,7).

이 지혜가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야말로 "하느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1코린 2,9) 두신 지혜이시며 성령께서 통찰하시는 "하느님의 깊은 비밀"(1코린 2,10)이십니다.

아버지의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느님이 모세를 통해 주셨던 계명을 그 지혜로써 완성하십니다. 그 지혜가 곧 사랑입니다. 계명은 사랑으로 완성되어 구원으로 연결됩니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마태 5,20).

예수님 덕분에 "사랑"이 모든 계명의 뿌리이고 지향점이며 핵심이라는 걸 알아버린 우리에게 이제 옛 율법으로 되돌아갈 수 없습니다. 퇴로가 차단되었다고 보아도 좋습니다.


주님의 제자라면, 미처 거기까지 깨닫지 못한 이들의 오류는 그렇다 치고, 그들이 못 얻은 깨달음을 사는 길로 박차고 나아가야 합니다. 의무를 능가하는 사랑만이 길잡이가 되어 줄 것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우리가 지켜야 할 계명들 하나 하나에 점수를 매겨가며 살아가야 한다면 참 숨막히겠지요? 그런데 반대로, 생각과 행동을 "사랑"에 고정하고 살아간다면 우리 존재 안에서 계명들이 질서와 조화를 잡아나간다는 걸 체험하게 될 겁니다.

계명이 따분하고 억압적인 굴레가 아니라, 우리와 더 깊이 관계 맺고 싶어하시는 하느님의 선물인 동시에, 그 관계 안에 뜨겁게 머물기를 원하는 우리의 바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부족하지만 우리의 사랑이 완성을 향해 나아갈수록 계명 또한 사랑이 되어갑니다. "사랑"이라는 해류를 따라 함께 흐르니까요.


오늘 사랑의 파도에 우리 존재를 맡기고 함께 출렁이며 하느님의 바다에 몸을 맡겨 봅시다. 내가 계명이 되고, 계명이 사랑이 되고, 사랑이 내가 되는 기막힌 신비 안에 머무르시길 축원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