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대한 하느님 사랑 담긴 ‘삼위일체의 신비’
▲ 러시아 이콘 화가 안드레이 루블료프(1360~1430)가 1410년경에 그린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이 성화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세 사람의 모습으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장면(창세 18,1-15)을 묘사한 것으로 왼쪽부터 성부, 성자, 성령을 나타낸다. |
나처음: 십자성호의 의미는 알겠는데 그래도 삼위일체 하느님의 존재를 선뜻 이해할 수 없어요. 어떻게 한 분이 성부, 성자, 성령으로 활동하실 수 있죠?
조언해: 처음아, 하느님을 무조건 맹목적으로 믿으라는 게 아니야. 성경을 보면 성부, 성자, 성령이 우리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한 분의 하느님이시라고 증언하고 있어.
나처음: 그러면 자꾸 성경에 있다고 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설명해줄래.
조언해: 성부, 즉 아버지 하느님은 넘치는 사랑으로 인간과 만물을 창조하시고 돌보시는 분이셔. ‘창조주 하느님’이라고 하지.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넘치는 자비와 사랑을 베푸시지만, 인간은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 거듭 거역과 배신으로 응답하고 있지.
첫 번째 인간인 아담과 하와부터 시작해 하느님께 선택된 백성인 이스라엘조차 하느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며 타락의 길을 걸었어. 너도 나랑 같이 영화 ‘엑소더스’를 봤으니 잘 알 거야. 그러나 아버지 하느님은 인간을 완전히 내치지 않으시고 거듭 용서와 자비를 베풀어 주시지.
나처음: 그래! 홍해를 갈라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고 이집트 군대를 몰살시킨 거 잘 알지.
조언해: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마침내 때가 되자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당신의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셔. 그분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이시지. 성자 예수님은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세상에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4-15)라고 선포하셨지.
하지만 인간은 예수님과 그분이 전하신 복음을 거절해. 그래서 성자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속량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죽음으로 당신 자신을 성부께 바치셨어.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어린양이 되신 것이지. 하지만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십자가에서 자신을 온전히 바치신 성자를 다시 살리셨지. 예수님이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거야.
나처음: 잘 알아. 신자가 아니라도 아마 세상 모든 사람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는 알걸?
조언해: 그래. 바로 그분이 우리가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성자 하느님이셔. 부활을 통해 구원사업을 완수하신 성자 예수님은 아버지 하느님께 돌아가시지만, 아버지 하느님은 우리를 홀로 내버려 두지 않고 성령을 보내 주셨지. 성령은 교회와 하느님의 백성들이 성자 예수님을 굳건히 믿고,
그분 안에서 활기차게 살아가면서 주님을 세상에 용감하게 선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단다. 그래서 성령을 ‘보호자’ ‘협력자’이신 하느님이라고 하지. 이렇게 성경은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우리를 돌보고 구원으로 인도해 주신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지.
나처음: 언해의 설명을 들으니 삼위일체 하느님에 관해 약간은 이해가 되네. 성경을 꼭 한 번 읽어봐야겠구나.
라파엘 신부: 언해가 참 설명을 잘해주었구나. 언해의 말처럼 삼위일체 하느님께서는 구원의 역사를 통해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사랑으로 인간을 돌보고 늘 인도해 주신단다. 그리스도인들은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그분의 무한한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야.
나처음: 그리스도교가 사랑의 종교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군요.
라파엘 신부: 그렇지. 사랑은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요소야.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베푸시는 사랑은 무조건이고 헌신적인 사랑이야. 상황과 기분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하지 않는 항구한 사랑이 바로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사랑이야.
조언해: 교리 시간에 그리스도교 신앙은 완전한 사랑에 대한 신앙이며, 그 사랑의 결정적인 힘, 곧 세상을 변모시키며 시간을 비추어 주는 사랑의 능력에 대한 신앙이라고 신부님께서 가르치신 것이 기억나요.
라파엘 신부: 그래서 성경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1요한 4,16)라고 고백하고 있지.
나처음: 삼위일체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굳게 믿는 신앙인들은 절망에 빠지지 않겠네요.
라파엘 신부: 그리스도인들은 십자성호를 그으면서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생활하지. 설사 죄에 떨어지고 실패를 거듭하더라도 하느님은 당신 사랑을 거두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삼위일체 하느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살아간단다.
조언해: 신앙은 그저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보시듯이 그분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배웠어요.
라파엘 신부: 맞아. 그리스도인의 삶은 예수님께서 세상을 바라보시는 방식에 참여하는 것이란다. 삶의 여러 분야에서 우리는 우리보다 더 잘 아는 다른 이들은 신뢰하지. 우리의 집을 짓는 건축가, 치료 약을 주는 약사,
법정에서 우리를 대변해 줄 변호사를 우리는 신뢰하는 것처럼 하느님과 관련된 일에서도 믿을 만하고 식견 있는 누군가가 필요해.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느님을 알려 주신 분이셔(요한 1,18 참조)
조언해: 우리가 하느님을 알고 맞아들이고 따를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신 것이죠.
라파엘 신부: 그렇지.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하느님이 참인간이 되셨다는 것과 그 참하느님이시며 참인간이신 구세주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으며, 우리 인간의 역사 안으로 들어오실 만큼 우리와 가까우신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지. 그래서 가톨릭 신앙의 중심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셔.
나처음: 그리스도의 강생과 부활로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인간의 삶 전체를 끌어안으셨고, 지금은 성령을 통해 우리 마음 안에 머무신다. 이게 삼위일체 하느님께 대한 신앙이다. 이 말씀이죠?
라파엘 신부: 바로 그거야. 처음이가 삼위일체 하느님께 대해 확실히 이해했구나. 여기서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것이 있는데 신앙은 필연적으로 교회의 모습을 띠게 되고, 믿는 이들 사이의 실제적인 친교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고백 되어야 한다는 것이야.
조언해: 예수님께서 모든 믿는 이를 당신께 모아들이시어 당신의 몸을 이루게 하셨기 때문이죠.
라파엘 신부: 맞아. 교회를 떠나서는 신앙은 그 기준을 잃고, 더 이상 균형을 잡지 못하지. 신앙이 지탱되는 데 필요한 공간을 찾지 못하면 신앙은 사적인 것이 되고 개인주의적인 개념이나 주관적인 견해로 추락하게 돼. 그래서 우리의 신앙은 항상 교회를 통해 올바르게 진리로서 선포되는 것이야. 그 핵심적인 공간과 예식이 바로 ‘미사’란다.
나처음: 그래서 지난번 신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미사를 시작할 때 십자성호를 그으며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군요.
라파엘 신부: 그렇지.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육친의 부모는 각기 다르지만, 신앙상으로는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한가족이야. 하느님을 가정으로 모시는 신앙의 형제자매는 마땅히 서로 협력하고 사랑하며 지내야 하지. 조금 전에 말한 것처럼 예수님의 눈으로 세상살이를 해야 해.
그러려면 예수님을 닮아야 하지. 미사는 우리가 예수님을 닮는 마음을 넓히게 해줘. 무엇보다 영성체 즉 성체성사를 통해 하느님을 섬기고 이웃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랑의 삶을 사는 구체적인 방법을 일깨워주지.
이제 지난번에 이어 십자성호를 통해 삼위일체 하느님의 존재를 이해했으니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미사에 관해 설명하마. 처음이가 아직 교회에 관해 모르니 지금처럼 미사의 의무를 가톨릭 교리와 연관 지어 알려주마.
리길재 기자(가톨릭평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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