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삶 보여주는 거룩한 표징 ‘미사’
▲ 미사가 처음 재개됐던 4월 23일, 마스크를 쓴 신자들이 1~2m 간격을 두고 명동대성당 회중석에 자리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
조언해: 요즘 가까운 사람들을 만날 수 없어 너무 불행해요. 친구는 물론, 주일학교 교사인데도 올해 아이들을 한 번도 만날 수가 없었어요. 전염병 예방도 중요하지만 만남과 소통이 있어야 사람 사는 사회가 될 것 같아요.
나처음: 코로나 방역이 이젠 일상이 되었어요. 마스크를 하지 않은 사람을 보면 눈살을 찌푸리게 되고, 사람 많은 곳은 아예 가려 하지 않으려 하니까요.
라파엘 신부: 20세기 저명한 신학자인 예수회 칼 라너 신부님은 “일상을 일상으로 두라”고 말씀하셨지. 가장 사소한 일에도 하느님의 숨은 은혜와 인간다운 삶의 참다운 본질이 내포돼 있다는 말씀이지. 참으로 인간다운 삶이란 더없이 진지한 자유 안에서 하느님을 향한 믿음과 희망, 사랑으로 드러나는 영원한 하느님의 무게를 지닌 삶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게 중요해.
조언해: 주일 미사 참여가 예전처럼 일상이 되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라파엘 신부: 나도 그러길 바란단다. 일상사가 짜증을 내게 하는 것은 우리가 짜증스럽게 받아들이기 때문이야. 일상이 우리를 무디게 만드는 것 또한 단지 우리가 일상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야. 우리가 주일 미사에 참여하는 것도 우리 힘이 아닌 하느님의 은혜로 우리를 준비시켜 준 것임을 깨달을 때 우리의 일상이 훨씬 소중해지는 것이지.
나처음: 결국, 항상 하느님을 인지하고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라파엘 신부: 우리가 주님의 가르침대로 살지 못하고, 현실이 그러하지 못하더라도 하느님의 은총으로 우리의 일상이 거룩해질 수 있다는 것이지. 그것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일상적 형태인 인내의 태도, 성실과 공평, 책임감의 태도, 사랑이 깃드는 몰아의 태도야.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전염병이 창궐할 때 사회의 방역 지침을 철저히 지킬 뿐 아니라 근원적으로 하느님이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인가 깊이 고민하고, 교회 안에서 교회를 통해 시대의 징표를 읽고 공동선을 위한 삶을 살아가야 해요. 미사가 바로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삶과 일상을 보여주는 가장 ‘거룩한 표징’이지.
나처음: 미사가 그리스도인 일상의 표징이라는 건 억지 아닌가요?
라파엘 신부: 사람은 몸을 보고 영혼을 알고, 지상에서 행해지는 것을 보고 영적이고 숨겨진 것을 깨닫지. 하느님을 믿고 주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안 보이는 것을 은혜로 보고’, ‘거룩한 표징’을 깨치고 받아들여 체현하는 생활을 우선으로 익혀야 해. 이를 교회는 ‘성사’라고 표현한단다.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사와 같다. 교회는 곧 하느님과 이루는 깊은 결합과 온 인류가 이루는 일치의 표징이며 도구이다. 인간과 하느님의 깊은 일치를 이루는 성사가 되는 것, 이것이 교회의 첫 번째 목적”(775항)이라고 설명하고 있지.
조언해: 교회 안에선 ‘신비’라는 말도 쓰는데 성사와 신비는 다른 뜻인가요.
라파엘 신부: 초기 교회 신학자들이 사용했던 헬라어 ‘μυστηριον’(미스테리온)은 ‘신비’(mysterium)와 ‘성사’(sacramentum)라는 두 가지 말로 번역된단다.
신학자들은 ‘성사’는 ‘신비’가 가리키는 구원의 감추어진 실재에 대한 표징을 더 눈에 보이도록 표현한다고 설명하지.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신비’를 눈으로 볼 수 있는 표징으로 드러내는 것이 바로 ‘성사’라고 할 수 있지.
그래서 성체, 세례, 견진, 고해, 성품, 혼인, 병자 등 교회의 일곱 가지 성사는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 그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은총을 펼치시는 표지이며 도구라고 교회는 고백하고 있단다.
나처음: 어머니가 자녀들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세세히 가르쳐주는 것처럼 교회도 성사를 통해 보이지 않는 하느님과 그 신비를 가르쳐 준다는 것이군요.
라파엘 신부: 바로 그거야. 우리의 인생에는 위대한 신비가 담겨 있단다. 그것이 가장 평범하고 가장 일상적인 행위라 해도 깊은 뜻을 품고 있다고 했지. 우리가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셨다는 현실을 더는 파악할 줄 모르면 어떻게 될까? 아무런 뜻도 없는 말을 하고, 그 뜻을 깨치지 못하는 몸짓만 하게 된다면 우리 인생은 어떻게 될까?
하느님, 은총, 그리스도, 교회, 신앙 이런 말을 하면서 우리가 그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니. 그래서 어머니가 자녀에게 삶의 지혜를 일깨워 주듯이, 거룩한 표징인 성사를 통해서 하느님과 일치하는 길을 제시해 주는 거란다.
나처음: 그러면 미사는 하느님의 어떤 거룩한 표징을 드러내는 성사인가요?
라파엘 신부: 주님의 수난과 부활을 기념하는 ‘성체성사’이지. 주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수난 전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하신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성체성사를 세우셨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이 성체성사를 거행할 것을 사도들에게 명하셨지.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세우실 때 하신 말씀은 성경에 잘 기록돼 있단다.
마태오ㆍ마르코ㆍ루카 세 권의 공관 복음서와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에서 우리에게 성체성사의 제정에 관한 주님의 말씀을 전해주고 있지. 그중 루카 복음의 내용을 들려주마. “예수님께서는 또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사도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루카 22,19-20) 주님께서 행하신 이 예식은 오늘도 우리가 미사를 거행할 때 이루어지고 있단다.
조언해: 신부님, 좀 전에 미사에 참여하는 것도 우리 힘이 아닌 하느님의 은혜로 우리를 준비시켜 준 것이라고 하신 것처럼 성사에 참여하려면 우리 스스로도 그에 합당한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라파엘 신부: 아주 중요한 말을 해 주었구나. 성사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려면 몸과 마음의 준비를 잘 갖추어야 한단다. 너희도 입학, 졸업식 때나 데이트를 할 때 가장 예쁘게 꾸미지 않니! 그런데 하느님을 만나러 주님의 집에 가는데 아무렇게나 하고 가면 예의가 아니겠지.
또 우리가 공연이나 전시장을 갈 때도 프로그램을 꼼꼼히 살피는 것처럼, 미사도 마찬가지야. 그 날의 독서와 복음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어떤 지향으로 미사에 참여할 것인지 미리 준비해 가는 것이 중요하단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사에 참여하기 전에 우리 각자의 허물을 살펴 뉘우치고 하느님께 고백하고 이웃과 화해하는 회심의 마음을 갖추어야 한단다. 우리의 마음을 하느님과 이웃을 향해 활짝 여는 겸손의 자세를 갖추어야 해.
우리 몸은 그 전체가 영혼의 도구이며 표현이야. 영혼은 제집에 들어앉아 있는 사람처럼 그저 몸 안에 머물고만 있는 게 아니라 지체 하나하나에서 속속들이 작용해. 영혼은 몸의 모든 선과 자태와 움직임에서 드러나. 그러므로 우리가, 즉 우리의 몸과 영혼이 하느님 앞에서 환희와 감사로 기뻐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선 우리의 몸가짐과 마음가짐이 중요해요.
리길재 기자(가톨릭평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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