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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세상의 빛] 98. 아멘 (「가톨릭 교회 교리서」 1061~1065항)

dariaofs 2020. 12. 17. 01:44

‘아멘!’은 구원자에게 문을 열어드리는 소리

‘믿다’와 같은 어원서 나온 ‘아멘’
자신을 버리고 하느님께 의탁
주님을 새 주인으로 받아들임
믿는 이들이 지닌 구원의 열쇠

 

‘아멘’은 자신을 버리고 주님을 맞아들이는 한 마디이며, 자신의 힘만으로는 인생이 행복할 수도, 의미 있을 수도, 영원할 수도 없음을 절실히 깨달은 이들이 가진 구원의 열쇠이다.가톨릭신문 자료사진

 

구원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면 누구나 구원을 받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인간이 선택할 자유를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묵시 3,20)라고 말씀하시듯이 문밖에서 우리가 문을 열어주기만을 기다리십니다.

그런데 주님을 받아들임은 곧 나의 죽음을 받아들임과 같습니다. 옛 주인이 죽어야 새 주인이 그 집을 차지합니다. 예수님은 지금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힘든 이 집을 새 주인이 되시어 생명의 집으로 만들려고 오십니다.

리지외의 성녀 데레사의 「빈손」 서문에 이런 메시지가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많든 적든 간에 자기 자신의 힘으로 사랑을 얻으려고 최대한의 노력을 한 뒤에 자기의 무력함을 싫도록 체험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이 무력이야말로 우리를 정화시켜 그분의 자애 깊으신 계획의 실현을 위해 ‘당신 뜻에 맞는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켜주시고 또 그 일을 할 힘을 주시는’(필리 2,13) 하느님께의 의탁에로 인도한다. 한스 포트만은 이렇게 쓰고 있다. ‘가장 숭고한 삶은 자아를 버리는 것, 그것도 나약해서가 아니라 분명하게 의식하면서 쥔 것을 풀어주고 비우는 것이다.’”

자신을 비우지 않으면 예수님으로 채워질 수 없습니다. 자신을 버리고 주님을 맞아들이는 한 마디가 ‘아멘!’입니다. ‘아멘’은 자신의 힘만으로는 인생이 행복할 수도 없고 의미 있을 수도 없고 영원할 수도 없음을 절실히 깨달은 이들이 가진 구원의 열쇠입니다. 이 열쇠로 문을 열면 구원자께서 그 안으로 들어와 그 집이 생명의 집이 되게 하십니다.

이 땅은 성모 마리아의 “아멘!”(Fiat)이 있기 전까지는 하늘에 잠긴 문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의 말씀에 ‘아멘’하지 못하고 불순종했기에 이 세상은 주님께 문을 닫아걸고 만 것입니다. ‘아멘’은 ‘믿다’라는 말과 같은 어원에서 나왔습니다.(1062 참조) 믿는 것이 받아들임입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믿으셨고 순종하셔서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닫힌 문을 여셨습니다. 그렇게 구원이 세상이라는 곳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구원이 들어온 곳은 또한 누군가를 함께 구원할 수 있는 ‘피난처’가 됩니다.

성모 마리아 호칭 중에 ‘죄인들의 피난처’가 있습니다. 피난처란 위험한 순간에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곳입니다. 모세의 법 중에는 ‘도피 성읍’이 있었습니다. “몇몇 성읍을 선정하여 도피 성읍으로 삼아, 실수로 사람을 쳐 죽인 살인자가 그곳으로 피신할 수 있게”(민수 35,11)하는 제도입니다. 일단 그곳에 들어가면 비록 살인을 저질렀더라도 공동체 앞에서 재판을 받기 전까지 안전할 수 있습니다.

현재 ‘죄인들의 피난처’, 혹은 ‘도피 성읍’은 ‘교회’입니다. 교회가 죄인들의 피난처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르 2,17)라고 하시는 것처럼, 바리사이들이나 율법학자들처럼 스스로 의롭다고 자처하는 이들은 교회 안에 들 수 없습니다.

“교회는 노아의 방주를 세례를 통한 구원의 예표”(1219)입니다. 노아의 방주에 도피한 모든 동물과 인간 여덟 명은 세례라는 홍수의 심판을 통해서 살아남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상징합니다. 만약 노아가 하느님의 말씀에 “아멘!”하지 못하여 방주를 만들 수 없었다면 누구도 그 홍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아버지 앞에서의 영원한 ‘아멘’(묵시 3,14)이십니다.(1065 참조) 하느님은 당신께 “아멘!” 하는 이들에게 “아멘의 하느님”(1063)이 되어주십니다. 지금까지 하나하나 살펴본 ‘신경’(Symbolum)은 “믿나이다”(credo)로 시작하고 “믿나이다”(Amen)로 끝납니다.(1064 참조)

 

주님께서 이 신경의 믿을 교리로 우리 각자의 집 문 앞에 서 계신 것입니다. 저희가 이 가르침에 “아멘” 하면 “내가 곧 간다”(묵시 22,20)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아멘!” 해야 그분도 “아멘!” 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 교회의 가르침, 믿을 교리 앞에서의 우리의 자세가 아담과 하와의 운명을 선택할 것인지, 예수님과 성모님의 운명을 선택할 것인지 결정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도 그분을 통해서 ‘아멘!’ 합시다.”(2코린 1,20)

 

전삼용 신부 (수원교구 죽산성지 전담 겸 영성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