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회 교리서」 1066~1075항
전례가 마술이 아닌 실재가 되려면: 신비 교리의 필요성
전례의 근본적인 목적은 믿음의 열매를 맺도록 하는 것
상징하는 것의 실재 알아야 그리스도 신비 이해할 수 있어
굳게 닫혀있던 루마니아의 대형 고아원 ‘요람’이 1990년 개방되었을 때, 사진기자 ‘윌리엄 스나이더’는 그곳에 수용된 아이들의 상태를 찍어 세상에 알렸습니다. 그는 요람을 ‘인간 창고’라 불렀습니다. 많은 아이가 몸을 앞뒤로 흔들거나 머리를 벽에 쿵쿵 들이받고 이상하게 얼굴을 찡그리며 사람이 다가가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영혼이 없는 상태로 자라고 있었습니다. 학대도 당한 적이 없고 굶주린 적도 없었지만, 아이들은 사회에서 필요한 소통 능력을 전혀 갖추지 못한 채 자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문제가 무엇이었을까요? 보모들이 주는 음식이 그들에게 꼭 필요한 ‘믿음’을 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녀는 부모가 필요합니다. 부모를 모르면 제대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보통은 음식을 주는 이가 부모입니다. 그러나 요람에는 일손이 부족하여 보모 한 명이 20~30명의 아기를 맡아야 했습니다. 보모가 하는 일은 음식을 배급해 주는 것뿐, 아이와의 따듯한 접촉이나 별다른 보살핌은 줄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음식을 먹어 몸은 생존할 수 있었지만, 부모라 믿을 수 있는 누구도 찾지 못하여 올바로 성장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믿음’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모든 전례도 이와 같을 수 있습니다. 전례의 근본적 목적은 하느님을 아버지로 믿게 하여 하느님 자녀답게 살 수 있게 만드는 은총을 베푸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례를 통해 아무리 성체를 영해도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면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할머니가 아기에게 아무리 성체를 쪼개어 먹여주어도 아기는 거룩해지지 않습니다. 성체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지난 8월 9일 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 수도회 고성수도원 성당에서 유덕현 아빠스(가운데)가 미사 중 성혈이 담긴 잔을 들어 보이고 있다. 전례를 위한 교리교육은 상징에서 상징하는 실재로 진행하여 그리스도의 신비로 인도하는 것이 목표다.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전례는 마술이 아닙니다. 전례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실재입니다. 전례가 실재가 되려면 어느 정도 전례의 의미를 알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전례를 위한 교리교육이 필요합니다.(1075 참조) 전례는 여러 ‘상징’으로 이뤄져 있는데, 교육이 없다면 성체는 그저 밀떡이고, 세례는 물을 붓는 행위에 불과하게 됩니다.
전례를 위한 교리교육은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 상징에서 상징하는 실재로, ‘성사’에서 ‘신비’로 진행하여 그리스도의 신비로 인도하는 것이 그 목표”(1075)입니다. 이를 위해 초대교회 때부터 세례 직후의 신자들에게 ‘전례와 관련된 교리교육’을 하였는데, 이를 “신비 교육”(mystagogia)이라 칭했습니다.
신비 교육은 전례 안에서 사용되는 상징의 보이지 않는 실재를 배우고 알아서 믿게 만드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런 전례라야 하느님께 대한 참 믿음이 생기고, 말 그대로 “교회의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1074)이 됩니다.
신비 교육이 필요한 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만약 ‘신비 교육’이 안 된 상태로 성탄을 맞는다면, 성탄 트리는 그 사람 영혼 구원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성탄 트리에서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1068)를 찾아야 합니다. 모든 전례의 힘은 바로 파스카 신비에서 나옵니다. “십자가에서 잠드신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온 교회의 놀라운 성사가 솟아 나왔기 때문입니다.”(1067)
성탄 트리가 상징하는 파스카 신비는 무엇일까요? 성탄 트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상징합니다. 한 마디로 ‘성체 성혈’입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면 그 사람은 영원히 삽니다. 에덴동산에 있어서 먹으면 영원히 살게 하는 나무인 ‘생명 나무’와 같습니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아담과 하와는 생명 나무를 먹을 수 있는 자격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피로 우리의 죄를 씻으시고 다시 생명 나무를 먹을 자격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죄가 사해진 그리스도인은 12월 25일에 세상에 오신 생명 나무를 먹고 영원히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성탄 트리가 그리스도임을 알게 하려고 둥근 모양의 밀떡을 나무에 붙였었습니다. 현재 트리에 달린 구슬들이 바로 성체이신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또 어둠의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표현하기 위해 촛불로 나무 주위를 밝혔었습니다.
지금은 나무에 전구를 두르고 생명 나무인 그리스도께서 빛 자체이심을 드러냅니다. 또한, 꼭대기에 다윗의 별을 달아 생명 나무인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후손임을 바라보게 합니다. 이것을 이해하면 이제부터는 성탄 트리가 예수 그리스도요, 생명 나무로 보이게 될 것이고 그 감격 때문에 눈물이 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신비 교육을 꼭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열매를 맺는 살아 있는 전례에 참여하기 위해, 이제부터 신비 교육 차원으로 「가톨릭 교회 교리서」 두 번째 부분인 ‘전례의 신비 교리’를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전삼용 신부 (수원교구 죽산성지 전담 겸 영성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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