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 가톨릭엔 어떤 뉴노멀이 나올까
▲ 마스크를 쓴 신자들이 지난달 22일 프랑스 북부 캉브레에 있는 은총의 성모대성당 앞에서 ‘우리는 미사를 원한다’고 쓴 현수막을 들고 종교집회 금지를 포함한 정부의 2차 봉쇄 조치에 항의하고 있다. 【CNS】 |
전염병 대유행이나 큰 전쟁 등이 일어나면 세상의 질서가 바뀝니다. 그리고 새로운 규범, 새로운 기준이 도출됩니다. 이것이 바로 뉴노멀(New Normal)입니다. 종교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새로운 교리해석과 새로운 전례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지요. 역사적 경험이 이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흑사병, 산업혁명, 세계대전…
14세기 중엽 흑사병이 유럽 전체를 송두리째 뒤집어 놓았습니다. 부모와 형제가 속절없이 죽어가고, 마을 전체가 무덤이 되어버렸으니, 죽음의 공포가 어떠했겠습니까. 그러나 흑사병은 인간의 존엄성을 새삼 깨닫게 했습니다. 문화적으로는 르네상스(인본주의)를 꽃피우게 했고, 종교적으로는 성모 신심에 불을 붙였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흑사병을 하느님이 내린 벌로 인식했습니다. 하느님께는 가까이 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하느님 곁에 가장 가까이 계신 성모님을 찾았습니다. 성모님은 사랑으로 신자들을 따뜻하게 위로해 주셨고 많은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이 성모님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가장 거룩한 여인으로, 가장 사랑하는 여인으로 묘사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요. 성모 신심 강화와 함께 성모님에 대한 교리가 풍성해진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습니다.
산업혁명에 따른 자본주의 발달도 세상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자본주의는 자본가에게 막대한 부를 안겨 줬지만, 노동자 대중을 빈곤의 늪에 빠뜨리는 모순을 드러냈습니다. 노사갈등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하면서 공산주의가 발흥했습니다. 가톨릭이 더는 노동문제를 외면할 수 없었지요. 레오 13세 교황은 1891년 회칙 「새로운 사태」를 반포하여 노동운동을 가톨릭 교리 안으로 끌어안았습니다.
20세기 들어 연이어 터진 제1차 세계대전과 2차 대전도 세상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습니다. 자유와 평등에 대한 욕구가 세계 곳곳에서 용암처럼 분출했습니다. 세계 질서가 급변하면서 기존의 권위가 뿌리째 흔들렸습니다. 어느 누가, 어떤 세력이 이 도도한 흐름을 거스를 수 있었겠습니까. 성 요한 23세 교황은 1958년 10월 취임 후 곧바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준비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공의회는 현대 가톨릭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정도로 수많은 뉴노멀을 도출했습니다. 교회 안에서의 사제, 수도자, 평신도 간의 관계가 과거에는 피라미드식 수직적 구조로 이해되는 경향이 강했지만, 공의회 이후에는 저마다 부르심을 받은 수평적 관계로 바뀐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비대면 시대
대혼란일까, 대전환일까.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1년 가까이 순례자들과 정상적인 대면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 베드로 광장의 일반알현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대신 사도궁 접견실에서 ‘비대면’으로 온라인 일반알현을 하거나 사도궁 앞 다마소 광장에서 제한된 인원을 초대하여 거리두기 일반알현을 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를 안고 축복해주는 장면도, 장애인과 볼키스를 하는 장면도 볼 수 없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세상이 뒤집어졌습니다. 20세기 대면 시대와 차별화된 21세기 비대면 시대가 이제야 비로소 시작된 것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새로운 규범과 새로운 기준이 도출되고 있습니다. 비대면 시대의 뉴노멀입니다.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몸부림이지요. 아무리 생경한 뉴노멀이라도 그것이 일반화하여 습관이 되면 공동체의 질서가 달라집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다양한 뉴노멀이 나오고 있습니다. 뉴노멀이 계속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것도 눈여겨볼 현상입니다. 그 끝이 어디일지 모를 정도입니다. 종교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맞는 뉴노멀을 창출하지 못할 경우 자연도태는 불문가지입니다.
새로운 사회환경에 대응하는 선교
가톨릭에 어떤 뉴노멀이 나올까.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때마침 새 교황령 「복음을 선포하여라」를 통해 개혁조치를 예고해 놓고 있습니다. 지금 막판 조율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팬데믹을 예상하여 준비한 것은 아니었지만, 개혁의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비대면 시대가 요구하는 뉴노멀을 자연스럽게 수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황청의 개혁은 정보기술(IT) 발달 등으로 인한 새로운 사회환경 변화에 대응한 선교를 주제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뉴노멀에는 시대 정신이 담겨야 합니다.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추진되고 있는 교황청의 개혁조치가 가톨릭의 뉴노멀로 발전, 승화하길 기도합니다.
이백만(요셉,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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