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딸이 어렸을 때 강아지를 키우자고 졸랐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집 안에 식구를 들인다는 것이 책임이 뒤따르는 일임을 부담스러워한 아내로 인해 딸아이의 동생 만들기는 무산되었습니다.
개 혹은 고양이와 사람 사이의 관계 이상의 감정을 나누며 사는 많은 분을 보면서 집 가까운 동물을 대하는 바른 태도는 어때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인간은 자신이 동물보다 우월한 이유로 사고능력, 언어능력, 감각능력 등을 들어왔지만, 사람의 의도를 파악하고 눈동자를 맞추는 반려견을 보면 그 말이 사실일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동물도 인간처럼 쾌락과 고통을 느끼고 감정을 교류하며, 식물마저도 서로 소통하는 방식이 있다는 것을 속속 알게 되면서, 인간이 절대적으로 우월한 존재라는 생각은 설 자리를 잃어 갑니다.
인권의 연장선상에서 ‘동물권’이 거론되곤 합니다. 그런데 동물권이란 인간이 주체가 되어 영문도 모르는 동물에게 시혜를 베푸는 듯한, 또 다른 인간 중심의 생각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동물과의 친교를 권리라는 측면에서 이해하기에는 그 이전에 근본적인 어떤 것이 빠진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성경의 노아 이야기(창세 6―9장)를 살펴보면, 방주에 온갖 생명이 종류대로 짝지어 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에 의해 타락한 세상을 새롭게 하시려는 하느님의 뜻은 노아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를 향하고 있었고, 노아에게는 그들을 챙겨 방주에 태우는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온갖 동물을 구하신 것은 하느님이 인간에게 먹이와 반려동물을 챙겨주시려 하신 것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인간과 동물이 먹이사슬도 없이 함께하는 구원 공동체였던 노아의 방주를 묵상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뭇 생명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과 관련된 하느님의 뜻을 생각해 봅니다.
창세기는 창조의 엿샛날 들짐승, 집짐승과 함께 인간을 창조하시고 축복하셨음을 알려줍니다. 인간과 동물은 같은 날에 동일한 조건으로 하나의 근원에서 창조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참새를 자매로, 늑대를 형제로 불렀던 프란치스코 성인의 영성은 창조의 신비를 일상의 삶에서 자연스럽고 정답게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창조 세계에서 인간과 동물은 서로 동일한 삶의 배경을 갖고 문화를 교류하며 살아온 가까운 친척입니다.
꼭 인간이 동물을 돌보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봉화에 살던 농부 최 노인과 그와 함께 30년을 살아온 소 누렁이의 실제 이야기를 담았던 독립영화 ‘워낭소리’가 떠오릅니다.
노인은 장에서 잠든 자신을 달구지로 집까지 데려온 소가 한없이 대견스럽기만 하고, 인간의 나이로는 100살을 넘긴 늙은 소를 위해 할아버지는 지게를 지고 꼴을 베러 산을 오릅니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누렁이의 죽음 앞에서 애끓는 마음으로 탄식하고 땅에 묻어 장사지내는 노인의 모습은 영락없는 동반자의 모습입니다.
남편과 사별하고 오랫동안 강아지와 살아온 할머니 한 분은, 15년 가까이 외로움을 달래주며 함께 했던 반려견이 무지개다리를 건너자 천국에서 만나기를 기도하며 꼭 장례 미사를 드려주고 싶었습니다.
신부님이 미사 대신 기도와 축복을 해 주셨지만, 인간이 아니라서 장례 미사를 못 드린 것을 몹시 아쉬워했습니다. 반려동물이 많아지지만, 아직 여러 상황에 대한 인간 쪽의 준비가 덜 된 것이 많아 보입니다.
강아지를 키우자던 딸의 요청에, 그 생명과 끝까지 함께할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있다고 거절한 아내의 마음이 이해됩니다.
한편으론, 삶을 같이한 반려견의 죽음을 맞아 애통한 마음으로 신부님께 장례 미사를 부탁하시는 할머니의 마음 또한 부쩍 공감하게 됩니다.
홍태희(스테파노) 하늘땅물벗 반석벗(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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