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주님과 우리 사이에 소유와 내어드림이 어떤 의미인지 숙고하게 도와 주십니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를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마르 10,29-30)
예수님의 이 말씀은 먼저 우리에게 버림의 '지향점'을 주목하게 하십니다. 무언가를 봉헌하거나 나누거나 내어놓을 때 그것이 재물이든 자기 자신이든 시간이든 그 이유는 명백히 주님, 그리고 복음 때문이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되받을 요량으로 계산해서 하는 행위나 짐짓 관대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자기 영광이 목적이라면 마음을 보시는 주님께 별 소용이 없는 헛수고가 될 뿐입니다.
이어서 주목하게 하시는 말씀은 "박해"입니다. 소유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세상은 탐욕을 용인하고 과시에 열광하며 부의 축적에 면죄부를 남발하고 정당성까지 부여합니다. 철저히 물질적인 가치관에 찌든 세상은 욕망을 불의한 과정마저 허용되는 선인 것처럼 둔갑시키고, 가난은 마치 절대 악처럼 혐오합니다. 물질이 정신과 영혼의 가치마저 장악해 버린, 가치 전도의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이런 세상에서 자발적 버림과 비움, 떠남과 나눔이 이해받기 어려운 영성이 되어 버린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수순일 겁니다. 이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의 시대와 지금이 이천 년의 간극을 지니고 있음에도 적용에 전혀 무리가 없다는 게 놀라울 뿐입니다.
당시의 박해는 매우 직접적이고 위협적이기까지 했지요. 주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갈 정도였으니까요. 인권과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현대 사회에서 박해는 은근한 조롱과 무시, 혐오와 차별, 소외와 낙인찍기 등으로 표현됩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며 복음적으로 산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세상의 물살에 역행하는 고되고 험한 광야길에 비길 수 있을 겁니다.
"영원한 생명"
예수님께서 최종적으로 우리에게 건네시는 보상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현세에서 되받으리라는 물질적 축복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은총의 선물이지요. 어쩌면 원죄 이후 죽음을 제거 불가한 꼬리표로 달고 살아가는 인간 실존에 가장 위안이 되는 축복이 아닐까 합니다. 막막한 죽음 이후의 삶을 생명과 행복으로 보장해 주시니까요.
제1독서는 어떻게 내어드리고 비워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조언이 가득합니다.
"자선을 베푸는 것은 찬미의 제사를 바치는 것이다."(집회 35,3)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네게 주신 대로 바치고, 기꺼운 마음으로 능력껏 바쳐라."(집회 35,12)
주님은 물질의 양을 보시지 않고 마음을 보십니다. 문제는 많고 적음이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오는지에 달렸지요. 오늘의 독서 대목에 머물다 보면 "기꺼이, 즐겁게, 기쁘게" 내어드리는 이의 마음을 주님도 기꺼워하시고 반기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재물이든 능력이든 시간이든 존재 자체든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사실 주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채워 주신 것이지요. 이 선물이 우리 안에 고이고 쌓이면 물이 그러하듯 성품을 왜곡시키고 악취마저 풍겨 인간 본연의 선함을 훼손하게 됩니다. 물이 흘러흘러 땅을 적시고 생명을 싹 틔우듯, 주님께서 주신 것이 우리를 통해 제 길을 찾아 흘러나갈 때에야 비로소 유익이 되고 보물이 되어 이웃에게 도움이 되고 또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까지 이끌어 주게 됩니다.
사실 모든 것의 주인이신 주님이 무엇이 아쉬우셔서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시겠습니까. 우리가 주님께 바치는 모든 것은 주님께서 목숨 바쳐 사랑하시는 모든 피조물을 위한 것입니다. 또 우리가 가난한 이들에게 내미는 손길은 그들 안에 계신 주님께 드리는 것이지요. 주님은 가난한 이들과 분리될 수 없을 만큼 단단히 결속되어 계십니다. 그분의 거처가 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쩌면 비움과 나눔은 특별한 신분의 사람들만 실천하는 어떤 지고한 선택적 덕행이라기보다 주님과 함께 사는 이의 일상이 되어야 할 겁니다.
이미 벗님도 체험하고 계시겠지만, 비움과 나눔은 긍정적인 중독성이 있습니다. 실천한 만큼 기쁘고 행복하다보니, 자기 깜냥 안에서 더 바치고 싶어 '어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없나' 두리번거리게 되지요. 이 선량한 중독은 더 깊은 영적 행복을 추구하게 해 준다는 차원에서 이미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을 미리 맛보고 사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게다가 비움과 나눔의 행복은 물질과 소유와 과시가 절대 선인 것처럼 부추기는 세상의 교활한 목소리를 식별하게 해 줍니다. 물질과 소유와 과시의 끝은 결국 인간성 파괴임을 깨달았기에, 우리는 어둠으로 기울어져 가는 세상에서 미소하고 미약하나마 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애를 쓰며 주님과의 사랑을 지키고 복음을 살아가려고 투신하게 되지요. '주님 때문에, 복음 때문에' 말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부활 시기의 문을 닫고 일상에서 복음의 생명을 사는 연중 시기로 들어온 우리에게 오늘 말씀은 도전도 되고 위안도 됩니다. 각자의 삶에서 주님을 사랑하며 복음적으로 살고자 애쓰는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세상에서 비운 만큼, 나눈 만큼이 영원한 생명으로 쌓여갈 것이니 우리 모두는 행복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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