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에게 육의 시력을 넘어 영의 눈을 뜨라고 촉구합니다.
"어찌하여 율법 학자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하느냐?"(마르 12,35)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라는 믿음은 하느님께서 "너의 집안과 너의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2사무 7,16) 하고 예언자 나탄을 통해 다윗에게 전하신 축복에 기인합니다.
"그곳에서 내가 다윗의 뿔을 돋게 하고 나의 기름부음받은이에게 등불을 갖추어 주리라."(시편 132,17)
이처럼 다윗의 후손에서 기름부음받은이, 곧 메시아가 나오리라는 대목은 말씀 곳곳에 등장하지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성경을 연구하는 이들이 가르치는 대로 자신들이 겪는 외세의 압제와 가난, 고통에서 자신들을 구해 줄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임금, 정치적인 메시아가 다윗 집안에서 나오길 고대하며 그 희망으로 연명했습니다.
"다윗 스스로 메시아를 주님이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 되느냐?"(마르 12,37)
예수님께서 엄청난 반전을 제시하십니다. 시편 다른 곳에서 다윗이 메시아를 주님이라 고백하였음을 들어 그 고정관념에 균열을 일으키시는 겁니다.
예수님은 율법에 나온 대로 다윗 가문의 족보 안에 당신을 두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인간적 계보로 세상의 질서 안으로 들어오셨으나 강생하신 하느님으로서 육적인 질서를 초월하는 분이시지요. 문제는 육적인 시야에 고착되어 구원자를 알아보지 못하는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제1독서에서는 토빗이 눈을 뜨는 극적인 장면을 보여줍니다.
"물고기 쓸개를 손에 든 토비야는 아버지를 붙들고 그 눈에 입김을 불고 나서, '아버지, 용기를 내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이어서 그 약을 아버지에게 바르고서는 ..."(토빗 11,11)
가바엘에게 맡겨 두었던 돈도 찾고 친족 누이인 사라를 아내로 맞아들이기까지 한 토비야가 긴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아버지 앞에 섭니다. 그리고 라파엘이 가르쳐준 대로 물고기 쓸개로 아버지를 치유하지요.
토비야의 모습을 찬찬히 관상합니다. 누가 떠오르십니까? 도움이 필요한 상대를 따뜻이 어루만지고, 입김(성령)을 불어 넣어 주며, 말씀으로 위로와 격려를 건네고 또 친히 치료의 행위를 하는 모습에서 누가 보이시나요?
하느님께서 인간 토비야를 통해 당신 뜻을 행하시고 이루십니다. 우리가 토비야에게서 숨으로 생명을 불어넣으시고 말씀으로 기를 살리시며 구체적으로 돌보시는 예수님을 보고, 또 아버지를 본다면, 우리는 영의 눈을 뜬 사람입니다.
"얘야, 네가 보이는구나, 내 눈에 빛인 네가!"(토빗 11,14)
토빗은 아들을 통해 움직이신 하느님의 힘으로 빛을 얻어 자기 아들이 '내 눈에 빛'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의 눈이 열리면 우리에게 다가와 주님의 뜻을 행하는 모든 형제 자매 이웃에게서 주님의 빛을 볼 것이고, 그가 곧 빛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토빗 11,14)
토비야는 눈을 뜨자 곧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하느님을 경외하는 그는 아들이 일으킨 이 기적이 하느님의 권능이고 능력임을 즉각 알아차리지요 그리고 그분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얘야, 잘 왔다. 얘야, 너를 우리에게 인도하여 주신 너의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빈다."(토빗 11,17)
이처럼 타인을 환대하는 모습은 현상에 매여 경계하고 불신하고 탐욕하는 육의 눈을 넘어 영의 눈이 열린 이의 전형입니다. 나에게, 우리에게 오는 상대방이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또 하나의 우주이며, 그를 인도하신 분 또한 하느님이심을 알기에 함께 더불어 찬미를 드리고자 합니다.
아들 토빗을 통해 하느님의 손길과 구원을 깨달은 토빗처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사람의 아들 예수님에게서 하느님의 현존, 권능, 힘을 깨닫고, 그분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삶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곧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신 하느님께서 지금 여기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지요.
관습과 고정관념 안에서 메뉴얼대로 살아가는 삶은 쉽고 편할지 몰라도 본질을 제대로 보기 어렵습니다. 빛을 각성하기란 더욱 요원하지요. 영의 눈을 뜨려면 그동안 스스로 눈먼 이였음을 인정하고 답답함을 느끼며 봄을 갈망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우리 모두는 이렇게 초대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벗님! 말씀과 전례에서, 사람과 사건에서, 관계와 존재에서 하느님을 볼 수 있는 영의 눈이 뜨이길 간절히 청합시다. 그렇게 열린 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 속에서 주님께 찬미와 영광과 흠숭을 올려드리는 오늘 되시길 축원합니다. 주님과 우리가 서로를 알아보며 환성을 올리고 기쁨을 나누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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