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1년 6월 15일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dariaofs 2021. 6. 15. 06:04

오늘 미사의 말씀은 아버지를 닮는 길을 알려 주십니다.

"원수를 사랑하여라. ...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마태 5,44)
예수님께서 본능이나 감정만으로는 실천하기 어려운 요구를 하십니다. 구약 시대에는 원수에 대한 복수나 박해자에 대한 저주가 율법이나 관습으로 용인 내지는 묵인되어 왔으니 예수님의 이 가르침은 상당히 큰 도전이 될 것입니다.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마태 5,46)
아버지는 선인도 악인도, 의인도 불의한 이도 가리지 않고 해와 비를 보여 주십니다. 그분께는 누구도 제외되지 않지요. 그분의 사랑이 반응의 일환이거나 대가성 응답이 아닌 까닭입니다. 그분 사랑은 계산하지 않고 기대하지 않는 순수의 사랑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완전함입니다. 완전한 사랑은 예외를 두지 않습니다. 자기 사랑에서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지요. 모든 사랑은 아버지의 이 완전함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사랑이라 부르면서 그 사랑을 닮지 않았다면 자기 욕정의 만족을 위한 거래일 공산이 큽니다.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모금을 독려합니다.

"그들은 힘이 닿는 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기꺼이 내놓았습니다."(2코린 8,3)
사도는 마케도니아 교회에 베푸신 하느님의 은총을 이야기하면서, 그들이 환난과 시련과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기쁨이 충만하여 후한 인심을 베풀었다고 전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이 무언가를 많이 받고 누리는 부유함보다, 오히려 베풀고 나눌 수 있는 비움의 덕으로 증명된다는 것을 배웁니다.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여러분이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셨습니다."(2코린8,9)
예수님께서 우리의 가난을 떠안으시고 우리를 충만하게 하셨습니다. 그분이 죄인의 자리에서 모든 불의를 떠안으시면서 우리를 의롭게 해 주신 교환의 신비가 가장 큰 구원의 선물, 곧 은총이지요.

죄인일 수 없는 분이 죄인이 되시고 의로울 수 없는 우리가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 가난하실 수 없는 분이 가난하게 되시고 부유할 수 없는 우리가 부유하게 된 신비가 바로 은총입니다.

이 은총은 "우리"라는 울타리, "형제"의 경계를 넓히게 해 줍니다. 우리의 부유함이 예수님께서 가난하게 되신 대가이니 그분 마음이 아파하시는 이들과 나누는 것이 마땅합니다. 은총으로 받은 모든 것은 원래 주님의 것이었으니까요.

가난으로 고통받는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해 어려움 중에서도 팔을 걷어부치고 손을 내밀게 만드는 사랑은 나와 너, 우리와 너희, 형제와 원수, 이웃과 이방인의 경계를 허무는 데서 시작합니다. 모든 인간, 모든 피조물이 완전하신 아버지의 한 자녀이고 한 형제라는 의식에서 출발된 사랑은 차츰 확장되어 원수에게까지, 박해자에게까지 가닿을 수 있습니다. 원수, 박해자에게서 시작하려면 한없이 어렵지만, 모두가 "우리"라는 의식에서 시작하면 사랑도 가능하지요.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떠오르는 사람 있을 수 있습니다. 특정인일 수도 있고 어떤 부류의 소수자나 집단일 수도 있지요. 내가 형제와 이웃의 담정 밖으로 밀어낸 이들, "우리" 안에 끼워주길 꺼리는 이들은 철천지 원수부터 나와 다른 이들까지 다양할 겁니다.

혹 그런 이들이 떠오른다면, 아주 조금씩 마음의 울타리를 넓히려는 결심부터 시작하는 것이 오늘의 말씀을 실천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노력이 내가 은총을 받은 사람이라는 증거이고, 그러다보면 원수도 박해자도 제외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아버지의 완전함을 닮아가려 오늘도 서툴고 미숙한 사랑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그 과정에서 바친 인내와 희생이 은총의 열매로 영롱히 맺힐 것이니, 힘내십시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