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기도가 무엇인지 알려 주십니다.
"우리는 성령을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네."(복음 환호송)
기도는 우리 안에 머무르시는 성령께서 아버지와 주고받으시는 사랑의 호흡이고 내용입니다. 그 성령께서 우리의 모든 사정을 아시지요. 성령 덕분에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된 우리는 성령과 하나의 호흡, 하나의 숨, 하나의 바람으로 아버지와 연결됩니다.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마태 6,8)
우리를 지으시고 눈길조차 떼지 않고 돌보시는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우리의 기쁨과 행복, 눈물과 절망, 갈망과 욕망뿐 아니라 어둠과 죄악까지 그분께 감추어진 것은 하나도 없지요. 이런 구체적 실존들을 내용으로 기도한다고 하면서, 우리는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허공을 붙잡으려 빈말로 허우적 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제1독서에서는 사도 바오로의 격앙된 음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아십니다!"(2코린 11,11)
사도 바오로는 열정을 다해 섬긴 코린토 교회 신도들이 다른 예수님, 다른 성령, 다른 복음에 쉽게 넘어가는 것을 통탄하며 조목조목 따지다가 결국 모든 안타까움을 실어 이렇게 외칩니다. 결코 자신을 자랑하려거나 생색 내려는 말이 아닙니다. 자신의 지향과 노력과 사랑은 하느님께서 다 아시니 그저 그분께 맡길 뿐이지요.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마태 6,9)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주님의 기도로 돌아갑니다. 우리가 하루에도 여러 번 바치는 이 기도 안에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바람이 들어 있습니다. 시간을 두고 깊이 머물러 한 구절 한 구절 진심을 다해 바치다 보면, 이 기도 말고 다른 무엇이 더 필요할지 새삼 의문이 들 정도지요.
아버지의 이름, 그분의 나라, 그분의 뜻이 이 세상을 채우면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묵사 21,3-4) 하는 새 하늘 새 땅의 모습이 펼쳐질 것입니다.
"용서하면 ... 용서하실 것이다."(마태 6,14)
그런데 예수님께서 일용할 양식, 용서, 유혹과 악에서의 보호를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뒤, "용서"를 콕 짚어 다시 한 번 언급하시지요.
사실 주님의 기도 안의 청원들은 하느님께서 주도권을 가지고 행사하실 영역이지요. 그런데 "용서"는 우리에게도 하느님과 마찬가지로 나름의 주도권이 주어져 있습니다. 하느님과 사람 사이만큼 사람 사이에도 절실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용서는 보잘것없는 피조물에 불과한 우리가 가장 빨리 그리고 가장 확실히 하느님을 닮게 해 주는 속성 월반 코스일 것 같습니다. 어쩌면 하느님과 우리의 '이인삼각' 동반 달리기랑 비슷할 것 같기도 하네요. 그분과 한 호흡으로 그분 전공인 용서의 보폭에 맞추어 뛰다 보면 우리도 어느새 용서의 사람이 되어가고 있을 테니까요.
사랑하는 벗님! 정성을 다해 주님의 기도를 바치며 그 안에 깃든 아버지의 마음을 관상하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이 기도밖에 우리가 더 바랄 것이 무엇인지 여러분도 반문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기도를 통해 꿈꾸는 세상이 어서 완성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러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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