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1년 7월 5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dariaofs 2021. 7. 5. 05:56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의 탄생 200주년 희년을 지내는 가운데 맞이하는 축일인 오늘, 미사의 말씀은 증거자의 소명을 우리에게 제시하십니다.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마태 10,18)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당신을 따르려면 박해를 각오하라고 이르십니다. 그들이 스승을 만나 들어선 길이 꽃길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기존 체제의 한계를 뚫고 열린 새로운 길은 반감과 배척을 숙명처럼 넘어야 하지요. 열광 만큼이나 모질고 사나운 기득권자들의 저항을 온전히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마태 10,20)
사실 적대세력 앞에 서는 순간은 복음을 증거할 기회가 됩니다. 그래서 두려움으로 자지러져 있을 수만은 없지요. 복음을 선포하는 이는 기회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호의적인 이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나 칼날 앞에 섰을 때나 한 목소리로 이야기합니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자신이 아니라 바로 아버지의 영이십니다.

예언자는 주님의 목소리입니다.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부족한 자신을 통해 말씀하시는 주님의 뜻입니다. 예언자가 자신의 소명을 완수하게 되면 그만 침묵합니다. 말보다 더욱 진한 피로써 주님을 증거하고 소리의 역할을 끝마친 뒤 구원의 길에 들어서는 것이지요.

제1독서는 "하느님의 영에 사로잡힌" 즈카르야의 순교를 보여 줍니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주님의 계명을 어기느냐? 그렇게 해서는 잘될 리 없다. 너희가 주님을 저버렸으니 주님도 너희를 저버렸다.'"(2역대 24,20)
당시 임금인 요아스는 여호야다 사제가 아탈야의 유다 왕족 살육에서 건져내어 7세까지 숨겨서 기른 뒤 왕위를 되찾아주고 보필해 준 인물입니다. 그런 그가 여호야다 사제가 죽은 뒤 하느님을 배척하고 우상에게 돌아섰지요.

즈카르야는 바로 그 여호야다 사제의 아들입니다. 그가 전한 이 말씀은 그의 말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이지요. 하느님은 그들이 다시 당신께로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셨기에 요아스 임금에게 누구보다 충성스러웠던 사제의 아들 즈카르야의 입에 당신 말씀을 담아 보내셨지요.

"요아스 임금은 이렇게 즈카르야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자기에게 바친 충성을 기억하지 않고, 그의 아들을 죽였다."(2역대 24,32)
하지만 우상에게 꽂힌 임금은 하느님을 배반하고 한 인간의 고귀했던 충정조차 외면합니다. 이렇게 즈카르야는 마지막 순간까지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구원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 못지않게 "환난" 역시 자랑거리라고 이야기합니다.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로마 5,4-5)
스스로 주님의 새로운 길을 박해하던 자였던 사도는 주님의 제자가 된 뒤, 자신에게 닥치는 환난들을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아울러 믿음의 동료들에게도 '환난이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인내와 수양을 키워 결국 희망을 낳는다'는 것을 힘주어 증언합니다. 결국 이 희망이 구원과 이어지리라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 10,22)
예수님께서 구원을 위해 견디라고 하십니다. 이 "끝"에 다다르기까지 실제적인 고통과 어려움들을 겪어야 하지요. 어쩌면 이 "끝"이 구원으로 들어가는 문이기에 희망일 겁니다.

사랑하는 벗님! 우리 믿음의 조상들이 명예와 욕망과 목숨까지 바쳐 다다른 "끝"은 그토록 그리던 아버지와 누리게 될 영원한 생명과 연결되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예로서 지금 이 "끝"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에게 구원은 머나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서 앞당겨 누리는 진복의 삶으로 허락됩니다. 이런 까닭에 구원을 향해 나아가는 이는 환난 중에서도 기쁘고 고통 중에서도 충만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는 그분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직이 주어졌습니다. 이 소명은 주님을 따르는 길이 마냥 '좋은 게 좋은 거'로 희희낙락할 수만은 없다는 걸 실감하게 해 줍니다. 그래도 예언자는 인간적 걱정과 두려움을 내려놓고, 설령 반대받는 표적이 되더라도 자기 안에 계신 아버지의 영께서 말씀하시도록 믿음을 부여잡고 견디며, 주님과의 일치의 기쁨을 누리는 존재입니다. 이미 지금 여기서 구원을 누리고 있기에 예언직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요.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이 자라도록 목숨을 바쳐 양분이 되어 주신 김대건 신부님께 한국 교회의 모든 신자들, 특히 모든 사제들을 맡겨 드리며, 우리 모두가 주님의 예언직을 충실히 수행하는 증거자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