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리아 막달레나 성녀의 축일인 오늘, 미사 말씀은 뜨겁고 열렬한 기도의 여정을 보여 주십니다.
"무덤에 가서 보니"(요한 20,1)
"달려가서 말하였다."(요한 20,2)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요한 20,11)
"제자들에게 가서 ... 말씀을 전하였다."(요한 20,18)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아침, 가장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이는 마리아입니다. 그녀는 왜 그토록 바쁘게 여기저기 다니며 부지런히 움직일까요? 그건 그녀가 사랑해 마지않는 예수님을 만나려는 마음에서입니다. 그분의 몸이 있어야 할 장소에서 보이지 않자 더욱 분주해집니다. 제자들에게 달려가 알리고, 제자들과 다시 무덤가로 돌아와서는 현장을 확인한 제자들이 떠난 뒤에도 빈무덤 근처를 울며 서성입니다.
가고, 오고, 달리고, 서고 하는 모든 움직임은 바로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이 그녀를 움직이게 합니다. 그녀의 움직임은 모두 사랑하는 이를 찾는 여정입니다. 그분을 만나 하나 되려는 사랑의 본능이 그녀를 다그치고 끌어당기기 때문입니다.
"나 일어나 성읍을 돌아다니리라. 거리와 광장마다 돌아다니며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으리라."(아가 3,2)
제1독서인 아가에서 여인은 사랑하는 이를 찾아 안락한 잠자리, 안전한 집을 박차고 나섭니다. 그것도 밤에! 이렇게 위험한 도심을 헤맬 수 있는 힘 또한 사랑입니다. 기도란 우리 영혼이 사랑하는 이를 절박하고 열렬히 찾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요한 20,15)
마리아는 사실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알아보지 못했지요.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누구를 찾는지 물으십니다. 이 질문은 마리아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참으로 중요합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를, 무엇을 찾아 헤맨 적이 있습니까? 사랑 때문에 애간장이 끊어질 듯 울면서 절박한 마음으로 간절히 찾는 대상이 있나요?
사실 모든 인간은 인생 여정 안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바라고 기대합니다. 과거야 이미 지나갔고 현재는 뻔하지만 미래는 뭔가 꿈꾸어 볼 만할지도 모르니까요. 미래의 불확실성이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동전의 양면처럼 희망의 불을 지피게도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대개 재물과 권력, 지위와 명예, 인맥과 건강을 추구합니다. 인간은 하느님 모상을 지닌 피조물로서 원래 존재의 근원이신 하느님과의 일치를 향해 나아오도록 프로그래밍되었지만, 이를 깨닫지 못했기에 헤매는 겁니다. 뭔가 끌리기는 해서 찾기는 찾는데 그 대상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고, 겉만 그럴싸해 보이는 껍데기를 죽어라고 쫓아다니는 형국입니다.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도 누구를, 무엇을 찾아야 할지 모르니 기도의 주제 역시 비신앙인과 다를 바 없이 재물과 권력, 지위와 명예, 건강과 인맥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주님과의 사랑의 일치는 일찌감치 기도 밖으로 밀려나고 기복적인 요구만 주술처럼 읊기 일쑤지요. 그런 우리에게 마리아 막달레나의 주님을 향한 열렬한 추구와 지고한 사랑은 커다란 울림이 됩니다.
"그들이 지나치자마자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았네."(아가 3,4)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야경꾼들이 행여 연인의 행방을 알까 싶어 물어보아도 성과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야경꾼을 연인으로 착각하지도 않았고 그대로 포기하지도 않습니다. 이 간절한 사랑이 아가의 여인에게 사랑하는 이를 데려다 줍니다. 그녀는 비로소 사랑하는 이를 찾습니다!
오늘 독서 대목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바로 뒤에 "나 그이를 붙잡고 놓지 않았네."(아가 3,4)라는 여인의 외침이 이어집니다. 사랑하는 이, 주님을 찾은 영혼은 다시는 주님을 놓치지 않으려고 꼭 붙잡습니다. 헤어짐의 아픔과 상실의 공허가 너무 컸던 탓입니다. 기도하는 영혼은 영혼의 어둔밤을 지나면서 사랑을 향한 갈망이 더,더,더 짙어지고 깊어지기 때문입니다.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요한 20,17)
자기 이름을 부르신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고 그분을 알아본 마리아에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지금 마리아의 심정으로 보자면, 당장 주님을 껴안고 꼭 붙들고 싶었을 테지요. 주님은 이를 모르시지 않으시면서 붙들지 말라고 하십니다.
"가서 ... 전하여라."(요한 20,17)
사랑하는 영혼은 사랑하는 이를 소유한 순간에 고착되어 버리면 안 됩니다. 그저 머물고만 싶고 그대로 시간이 멈추었으면 싶은 찰나일지라도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주님께 머무르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주님을 만나 일치하는 영혼에게 머무름은 물리적 시간도, 정동의 구분도 뛰어넘습니다. 그녀가 사랑 중에 있으면서 그토록 분주히 움직일 수 있는 이유입니다. 주님과 뜨겁게 일치하는 영혼은 사랑으로 기도하고 기도로써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벗님! 우리 각자에게 허락하신 인생 여정 안에서 주님을 더욱 열렬히 찾고 사랑하고 일치할 수 있는 은총을 구하며, 마리아 막달레나 성녀에게 전구를 청하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우리 모두 사랑하고 기도하는 영혼이 되길 축복합니다.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치니 그냥 이쯤에서 멈출 수 없습니다.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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