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영원한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을 가리키십니다.
제1독서 대목은 엘리사의 기적 이야기입니다.
"이 군중이 먹도록 나누어 주어라. 주님께서 이들이 먹고도 남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2열왕 4,43)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는 어떤 사람이 봉헌한 보리 빵 스무 개와 햇곡식 이삭 한 자루를 백 명의 사람들에게 먹이라고 내어 줍니다. 하지만 사람 수에 비해 양이 터무니없이 적다보니 분부를 받은 시종은 사실 믿지 못했지요. 엘리사라고 산수를 못 하겠습니까만, 그가 주님의 말씀을 믿었기에 모두가 먹고도 남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복음은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이야깁니다.
"마침 유다인들의 축제인 파스카가 가까운 때였다."(요한 6,4)
복음사가는 도입부에 유다인의 파스카 축제를 언급함으로써 복선을 깔아 놓습니다. 앞으로 이어질 놀라운 빵의 기적은 예수님께서 완성하실 희생제사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하시려는 일을 이미 잘 알고 계셨다."(요한 6,6)
많은 군중이 다가오자 예수님은 그들을 먹이실 생각부터 하십니다. 길고 험한 타향살이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자녀들을 먼 발치에서 발견한 모든 어머니들의 마음에 본능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이 바로 이렇겠지요.
"당신이 하시려는 일"
예수님은 먼저 군중에게 빵을 실제로 먹이려 하십니다. 육신의 허기를 채워 힘과 생명력을 북돋아주시려는 겁니다. 아울러 당신 스스로, 죄와 죽음으로 고통 받는 인류를 되살리실 희생 제물, 무죄한 어린양이 되시려는 계획도 들어 있습니다.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요한 6,9)
군중 안에 끼어 있던 아이들 중 한 명이 마침 먹거리를 지니고 따라왔나 봅니다. 모르긴 해도 이 먹거리는 자신과 몇몇 일행을 위해 준비한 것이겠지요. 이 소박한 양식이 모든 이를 위한 마중물이 될 수도 있지만, 그러려면 먼저 아이가 관대히 자기 것을 내어놓아야 합니다.
황량한 광야에서 달리 양식을 구할 곳이 없고 그나마 수중의 돈마저 간당간당하다면 지금 지니고 있는 일용할 양식이 퍽 요긴할 텐데, 아이는 긴 생각 하지 않고 자기 음식을 내어놓습니다. 비록 어린 아이지만 예수님을 믿었고 허기 진 군중을 염려하시는 그분 마음을 헤아리기 때문이겠지요.
여분의 빵을 뒷주머니에 예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가진 것 전부를 내놓는 행위는 바로 생명을 나누는 것과 같습니다. 이 아이의 봉헌은 미소하나마 파스카의 완성이신 예수님의 온전한 자기 봉헌을 떠올려 줍니다.
"남은 조각으로 열두 광주리가 가득 찼다."(요한 6,13)
예수님의 감사 기도를 통해 아이의 빵과 물고기는 오천 명을 먹이고도 남을 양식이 됩니다. 모두 배불리 먹고도 남은 조각이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차다고 하지요. 더 보탤 필요 없이 넉넉하고 충만한 생명의 양식이 우리 가운데 계심을 가리킵니다. 열둘이라는 완전한 수로 남은 빵은 온 인류를 살리고도 남을 주님의 몸입니다.
제2독서에서는 그렇게 인류를 위해 내어 주신 주님의 몸이 하나임을 강조합니다.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에페 4,4)
예수님은 당신의 몸을 생명의 양식으로 남기셨습니다. 이천 년을 이어오면서 인류가 받아 먹었고 지금 우리도 모시는 성체는 한 분 그리스도의 한 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고 그분의 몸을 받아 모시는 우리 모두는 하나입니다.
적은 양에서 오천 명을 먹일 양으로 늘어난 기적의 빵은 당신 몸을 내어 주신 생명의 양식으로 이어집니다. 생명의 빵은 같은 빵을 나누어 먹는 우리 온 인류를 한 몸으로 아우르고, 이 빵을 먹는 우리 모두는 한 몸이신 그리스도를 이루는 겁니다.
사랑하는 벗님! 우리 모두는 인종, 국적, 성별, 나이, 빈부를 넘어 같은 몸을 받아먹는 한 식구지요. 우리가 누리는 영육의 모든 것이 서로 한 몸을 이루라고 안배하신 주님의 선물임을 깨닫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생명의 빵을 모시는 우리가 생명의 빵이 될 때 복음 속 빵의 기적이 비로소 지금 여기, 세상 곳곳에서 완성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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