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1년 7월 29일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

dariaofs 2021. 7. 29. 05:47

예수님과 각별히 친했던 베타니아의 세 남매, 마르타와 마리아와 라자로를 기념하는 오늘 미사의 말씀은 믿음과 사랑과 일치의 이야기입니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요한 11,21)
예수님은 라자로가 병을 앓고 있다는 전갈을 받으시고도 계신 곳에 이틀 더 머무르신 후에야 베타니아로 가십니다. 이미 라자로는 무덤에 묻힌 지 나흘이나 지난 상태였지요. 마르타가 예수님을 마중 나와서 안타까움과 상실감 가득한 슬픔을 토로합니다.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요한 11,23)
예수님은 당신이 하실 일을 이미 결정하셨습니다. 라자로의 병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요한 11,4)임을 알고 계셨기에 "내가 가서 그를 깨우겠다."(요한 11,11)고 하셨지요. 마르타 역시 아직 늦지 않았음을 믿습니다. 언제라도 예수님께서 청하시면 아버지께서 라자로의 생명을 돌려주시리라는 걸 마르타는 알고 있습니다.(요한 11,22 참조)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요한 11,27)
마르타는 자청하여 예수님을 자기 집에 맞아들여 음식을 대접하고 섬겼습니다. 동생 마리아는 누구보다 예수님을 사랑하여 그분 발치를 떠나지 않았고, 라자로 역시 예수님의 친구로 그분과 같은 상에서 음식을 먹는 관계지요.

이처럼 세 남매 모두 예수님을 신뢰했습니다. 유다교의 종교 제도가 배출하지 않은 분, 번듯한 출신도 타이틀도 없는데다 기존 종교기득권자들의 압박과 경계의 대상인 예수님을 환대하고 추종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자신들의 직관과 끌림에 충실했기 때문일 겁니다. 용기도 있었을 것이고요. 예수님도 기꺼이 그들의 섬김을 받으며 함께 마음을 나누셨습니다.

제1독서에서는 믿음이 사랑이 되고 일치에 이르는 길을 보여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에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합니다."(1요한 4,13-14)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다는 마르타의 신앙고백은 종교제도나 정치와 얽히지 않은, 온전히 성령에 의한 것입니다. 아버지의 영이 아니고서는 이스라엘의 단순하고 소박한 계층이었던 남매들이 예수님을 알아보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들이 예수님과 맺은 관계는 어떤 목적이나 의도를 깔지 않은 그저 순수한 신뢰와 사랑의 관계였지요.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머무릅니다."(1요한 4,15)
예수님을 믿고 그 믿는 바를 고백하는 이에게 하느님께서 오십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믿는다는 건 우리에 대한 그분의 사랑을 알아드렸다는 것이 되니까요. 그분은 당신 사랑을 깨달은 영혼 안에 거처를 정하시어 머무르고 쉬십니다. 당신을 알고 믿는 영혼 안에서 그분이 얼마나 편안하실지, 따사롭고 다정다감한 사랑 안에서 얼마나 행복하실지 관상합니다.

이 머무름은 상호적이라 하느님께서 그에게, 그가 하느님께 머무르는 일치로 이어집니다. 믿음이 사랑이 되고, 사랑이 일치로 흘러 하느님과 우리는 하나가 됩니다. 베타니아의 세 남매는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그처럼 맞아들여 서로에게 머무른 것이고, 또 그로써 하느님을 맞아들여 일치로 나아간 것입니다.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 믿고 고백하며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우리 모두를 축복합니다. 이 믿음과 사랑으로 우리를 이끄신 아버지의 영께 감사드리며, 주님 안에 머물러 그 사랑의 온기를 가득 누리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16)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