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기억과 믿음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 6,4-5)
신명기의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중요한 전통 신앙 고백입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유일하신 하느님께서 친히 선택하신 민족이라는 정체성과 자부심이 이스라엘 민족 정신의 근간을 이룹니다.
하느님의 백성은 자기들을 뽑으신 하느님이 유일하신 분이심을 믿는데 그치지 않고 그분을 사랑해야 합니다. 저마다 두려움과 필요로 매달리는 신들이 있었던 고대 부족 사회에서 자기의 신을 "사랑하라"는 명제는 어쩌면 획기적이었을 것 같습니다. 이전에는 그 누구도 사람과 친밀히 관계를 맺는 인격신을 체험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신명기는 이스라엘이 노예살이에서 광야를 거쳐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모세가 백성에게 들려주는 가르침들로 구성되었습니다. 모세는 백성이 가나안 땅의 풍요에 취해 자기들을 이끌어 주신 하느님을 잊을까 염려하여 여러 기억의 방법들을 제시하지요.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문장을 외우고 기억하면서, 마음에 새기고 눈에 보이는 데 써서 붙여 놓고 자자손손 거듭 반복해 들려주어야 합니다.
"거기에서 너희가 마음껏 먹게 될 때,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내신 주님을 잊지 않도록 조심하여라."(신명 6,13)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해 가나안 땅에 살던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바로 그곳에 이스라엘을 심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풍요가 일상이 될 때를 조심해야 하지요. 자신이 뿌리지 않은 열매로 풍족해지면 어떤 이는 감사하고 더욱 삼가지만 어떤 이는 더 탐욕하며 만용을 부리고 신을 잊어버리니까요.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파스카 대장정을 시작부터 끝까지 이끌고 계신 하느님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분을 경외하고 섬기고 사랑함으로써 하느님의 현존을 이 세상에서 이어가야 합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에서 시작해 온 인류와 관계를 맺고 싶어하시는 인격신이십니다.
복음에서는 한 절박한 아버지가 등장합니다.
"주님, 제 아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마태 17,15)
질병으로 고통받는 아들을 위해 그의 아버지가 예수님 앞에 무릎을 끓습니다. 이미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아들을 데려갔지만 효과를 보지 못한 터입니다.
용하다고 소문난 의사나 마술사에게 데려갔다면 자비를 청하지 않을 겁니다. 그저 기술과 지식으로 고쳐달라고 요청을 했겠지요. 그는 예수님이 보통의 의사나 마술사와는 다른 존재임을 직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느님의 자비를 이 세상에 베풀어 주실 수 있는 분이심을 감지하고 있는 겁니다.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마태 17,20)
그 아들은 예수님의 호통으로 마귀가 떨어져 나가, "바로 그 시간에" 낫게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실패 이유를 "믿음"이라 짚어 주십니다.
이 기적이 일어난 시점은 이미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들을 치유하시고 거룩한 변모와 수난 예고도 이루어진 즈음입니다. 물론 제자들도 따로 선교 여행까지 완수했고요. 이쯤되면 제자들이 당신의 신원에 대해 확고히 믿으며 당신의 이름으로 아버지의 일을 해내기를 예수님은 바라셨던 것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아직 제자들의 체험과 기억이 믿음까지 가닿지 못한 걸까요? 사실 영적인 삶은 체험 따로, 기억 따로, 믿음 따로의 여정이 아닙니다. 체험과 기억과 믿음은 하나로 이어져야 합니다. 이 모두를 관통하는 힘이 바로 "사랑"이지요.
이스라엘 백성이나 제자들처럼 우리 역시도 믿음을 얻기 위해 또 다른 체험을 요구하거나 기적을 바랄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주님께서 우리 삶의 구체적 현실 안에 개입하고 이끄신 체험과 기억들이 우리 안에 차고 넘치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깨달은 체험, 사랑으로 남은 기억, 사랑으로 견고해진 믿음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마태 17,20)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우리에게 희망을 던지십니다. 제자들과 우리의 여정이 당장의 부족하고 나약한 믿음으로 맥없이 끝나버리지 않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우리 삶 안에 깃든 주님 사랑의 자취들은 하나하나 떠올리며 사랑의 끈으로 꿰어 보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사랑으로 관통된 체험들, 기억들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 믿음이 되어 우리를 지탱해 줄 것입니다. 삶이 아무리 불합리하고 고단하고 버거워도 그분께 우리를 던질 수 있는 힘은 믿음이랍니다. 이 믿음으로 "우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강 론 말 씀 '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21년 8월 9일 연중 제19주간 월요일 (0) | 2021.08.09 |
|---|---|
| 2021년 8월 8일 연중 제19주일 (0) | 2021.08.08 |
| 2021년 8월 6일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0) | 2021.08.06 |
| 2021년 8월 5일 연중 제18주간 목요일 (0) | 2021.08.05 |
| 2021년 8월 4일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 (0) | 2021.08.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