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1년 8월 13일 연중 제19주간 금요일

dariaofs 2021. 8. 13. 05:57

오늘 미사의 말씀은 인간 행위와 사건의 주인이 누구이신지 일깨워 주십니다.

제1독서는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 분배를 마치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소집하여 유언과 더불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장면입니다.

"나는 ... 아브라함을 ... 데려다가"(여호 24,3)
"나는 모세와 아론을 보내어 ... 너희를 이끌어 내었다."(여호 24,5)
"나는 그들도 너희 손에 넘겨 주었다."(여호 24,11)
"나는 너희에게 ... 성읍들을 주었다."(여호 24,13)

여호수아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은 이스라엘 구원 역사의 골자입니다. 가나안 정복을 마친 뒤 여호수아는 백성에게 '하느님께서 어떻게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셨으며 어떻게 완성하셨는지' 간결하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전달함으로써 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깊이 인식하도록 합니다.

여러 문장으로 이루어진 문장들의 주어는 한결같이 "나는, 내가, 주님이"입니다. 역사를 이끌어가는 주체가 곧 하느님이심을 알 수 있지요. 이쯤 되면 이스라엘 역사가 아니라 주님의 역사가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 그중에 작고 미약하고 보잘것없는 단 한 사람의 역사에도 주님의 개입은 분명합니다. 자신이 의식을 하건 하지 못하건 개인과 사회와 인류의 역사를 끌고 가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복음은 이혼 논쟁의 대목입니다.

"무엇이든지 이유만 있으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마태 19,3)
사사건건 예수님에게서 율법과의 불화 지점을 찾아내려는 바리사이들이 이번에는 이혼 건을 들고와 묻습니다. 모세는 이유만 있다면 아내를 버려도 된다고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느냐는 거지요.

그들이 이렇게 묻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약자를 보호하고 사람을 두루 사랑하며 정의를 추구하는 성정의 소유자이심을 그들이 일찌감치 간파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들은 율법이 정하는 이스라엘의 이혼 관습이 예수님에게 올가미가 될 수 있다고 보고 그걸 노린 것이지요.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태 19,6)
예수님께서 가장 근분적이고 원론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혼인은 물론이거니와 모든 만남과 인연은 하느님께서 주도하시는 섭리니까요. 사람은 단지 자기 이익이나 감정, 취향을 빌미로 타인을 함부로 대해서도 안 되고 그를 버리거나 궁지에 몰아넣어서도 안 됩니다.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 허락하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마태 19,8)
문제는 마음의 완고함입니다. 여기서 죄악이 시작된 것이지요. 자신과 세상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느님을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가 마치 모든 것의 주인인 양 착각할 때, 대화의 주어는 온통 자기 자신이 되어 버립니다. 생각과 감정이 자기중심적으로 흐르면 변덕과 이기심이 주도하여, 배우자와 가족, 이웃의 존엄성이나 인격보다 자신을 더 중히 여기게 되지요. 그렇게 점점 더 완고해지다 보면 어느새 악이 더 편해지고 가까워지는 겁니다. 이 자기중심적 완고함이 하느님께서 보호하시는 혼인 관계마저 치우친 저울로 만들어 버린 것이지요.

"아내에 대한 남편의 처지가 그러하다면 혼인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마태 19,10)
하느님 중심의 공정한 혼인 관계가 제자들에게도 불편했는지 그들마저 혼인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토로합니다. 그들 역시 예수님을 만나기 전부터 당시 관습의 수혜자로 형성되었고, 숙고하여 깨닫지 못하면 그저 답습자가 될 수 밖에 없으니까요.

"허락된 이들만 받아들일 수 있다."(마태 19,11)
하지만 예수님은 혼인하지 않는 삶이 아무나에게 허락되지 않음을 밝히십니다. 이 또한 하느님께서 주도권을 가지고 계신 중대한 섭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의 역사는 하느님께서 친히 "내가..., 나는..."으로 이끌어 가시는 그분의 역사입니다. 우리 삶과 역사의 주체가 누구인지 깨닫게 되면,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사건들, 특히 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많은 일들에 대해 하느님 중심으로 균형을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사랑하는 벗님! 지나온 우리 각자의 삶을 돌아보며 자신의 구원 역사를 관상하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어떤 만남과 인연도 우연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소중히 여겨 감사하고, 행여 풀어주신 것이 있다면 그에 대해서도 그분의 섭리를 겸허히 받아들여 감사하면 좋겠지요. 어떤 처지에 있건 하느님과 함께 구원의 역사를 엮어가는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