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에서 예수님은 영적 삶의 리듬을 보여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루카 6,12)
복음의 대목은 크게 세 부분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 열두 사도의 부르심, 백성과의 만남이지요. 장소적 배경은 산에서 평지로 이어집니다.
하느님 현존 장소인 "산"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깊이 머물 수 있는 "밤"에, 예수님께서 하느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십니다. 복음사가는 이를 "기도하셨다"고 표현하지요. 이로써 우리는 "기도"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단 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설명이지만, 이 행위는 후에 이어지는 모든 활동들의 도화선이고 근간이며 핵심입니다.
하느님과 깊은 일치에서 오는 바로 그 힘으로 예수님께서 협력자들을 부르십니다. 열두 사도는 예수님께서 앞으로 펼쳐나가실 하느님 나라 운동의 주춧돌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열두 명은 신앙과 사랑의 엘리트들이라기보다 부족하고 나약하며 악하기까지 한 온갖 인간 군상의 집약판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를 이미 알고 복음을 읽는 우리와 달리, 예수님은 기대와 희망을 버리지 않고 모두를 끌어안고 나아가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루카 6,17)
산과 평지, 이 두 장소는 하강과 확장이라는 변화를 동시에 보여 줍니다. 높으신 하느님의 현존 장소인 "높은 산"에서 하느님과 일치를 나누고, "낮은 평지"로 내려와 세상 한가운데 계시는 하느님을 만나는 동선이 펼쳐지고 있지요. 그야말로 장터에 계시는 하느님, 삶의 질곡의 현장에서 움직이시는 하느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이제 당신 백성과의 만남과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목자로서의 활동이 이어집니다. 병들고 마귀에 시달리며 가르침과 말씀에 목마른 이들이 예수님을 에워쌉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쓰고 예수님은 그들을 돌보아 주시려고 애를 쓰십니다.
밤에 산에서 하느님과 만나 충만히 채우신 사랑의 기운이 세상의 장터에서 한량없이 터져나옵니다.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고쳐" 주지요. 이 힘은 기술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신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 줍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였으니 그분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가르침을 받은 대로, 그분 안에 뿌리를 내려 자신을 굳건히 세우고 믿음 안에 튼튼히 자리를 잡으십시오. 그리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십시오."(콜로 2,6-7)
사도는 먼저 예수님 안에 머무르길 권고합니다. 그분 안에 뿌리를 내려 그 사랑의 양분으로 충만해져야 그분께서 쓰실 사랑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당장 먼저 해야할 것처럼 시급해 보이는 눈앞의 현안들이 유혹해도, 하느님의 자녀에게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우선입니다. 먼저 그 샘의 원천에 닿아야 샘물을 길어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십시오."
그 다음은 감사입니다. 복음 선포와 치유와 구마 등의 모든 활동은 이 감사의 표현입니다. 제아무리 많은 걸 누리는 사람이라도 불평불만과 험담과 자기 자랑에 중독된 이들은 감사를 모릅니다. 감사하지 않는 영혼에게서는 하느님과의 관계성이 감지되지 않지요. 감사는 하느님 안에 머물러 그분과 통교하는 사람의 습성이니까요.
영적 삶은 하느님과 함께 고요와 역동, 정과 동의 리듬 안에서 출렁이며 나아가는 파도타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주님 안에 깊이 머무르고, 그 사랑의 힘으로 형제를 만나, 받은 사랑과 은총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고, 다시 주님께 돌아와 더 깊어진 사랑을 고백하고, 또다시 나가... 이렇게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모든 것이 사랑으로 통합되어 굳이 기도와 활동을 나눌 이유조차 없는 경지까지 이르게 되겠지요.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고요히 주님 안에 머물러 그분을 차지하고, 그 사랑으로 도움이 필요한 형제를 보살피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주님과 함께 사랑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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