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주님과 우리의 관계를 물으십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루카 9,20)
예수님께서 군중이 당신을 누구라고 하는지 들으신 뒤에, 이번에는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세례자 요한, 엘리야, 옛 예언자... 그분을 먼 발치에서 보거나 그분에 대해 듣거나 치유나 구마 등을 통해 실제로 체험한 이들이 그렇게 여긴다면, 그렇다면 바로 곁에서 예수님과 동고동락하며 가르침을 받는 제자들은 누구라 여기는지 스스로 개별적인 답을 찾도록 하시는 겁니다.
군중이 예수님을 역사 안에 등장했던 뛰어난 예언자 정도로 인식한다면, 함께 지낸 제자들은 그보다 좀 더 깊이 들어가서 '하느님께서 기름부어 파견하신 메시아'로 알아봅니다.
이처럼 이 물음은 예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서 그분을 체험해야 진짜 답이 나올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시고 메시아시라는 교리나 강론을 자주 접했더라도, 실제 자기 존재에게 구원자요 메시아이심을 경험한 연후라야 비로소 이 내용이 온기와 핏기를 얻어 생생히 체득되지요.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루카 9,22)
당신에게 "하느님의 그리스도"라고 한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 바로 그 그리스도의 운명을 알려 주십니다. 어쩌면 제자들 입장에서는 폭로로 여겨질 만큼 충격적인 내용이지요.
물론 예수님에 대한 제자들의 체험은 아직 거기까지 이르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 무수한 참 예언자들이 고난과 배척의 운명을 살았다는 걸 모르지 않으면서도, 그 내용을 지금 여기의 자신과 연결하기는 쉽지 않은 까닭입니다.
제1독서에서는 성전 재건을 독려하시는 주님의 목소리가 드립니다.
"용기를 내어라. ...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니 일을 하여라."(하까 2,4)
유배에서 돌아와 고향에 다시 정착하느라 분투하는 이들이 실질적 어려움과 방해를 무릅쓰고 주님의 집을 짓는 일이 그리 녹록할 리 없습니다. 무수한 난관을 뚫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옛 예루살렘 성전의 영화에 대한 기억이나 구전에 더해서 주님 현존을 누리는 존재로서의 환희와 영광을 실제로 체험해야 합니다.
"나의 영이 너희 가운데에 머무를 터이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마라.(하까 2,5)
주님께서는 귀환한 이들이 개인적으로도 또 공동체적으로도 당신 현존의 은총을 깨닫길 바라시기에 그들 한가운데에 들어와 머무르십니다. 주님의 영과 하나 된 이라면 기쁨과 환희는 물론 고난과 업신여김, 배척과 죽음까지 그분과 하나의 길을 걷습니다. 게다가 끝이라 여겼던 생명의 막장에서 부활까지 체험하게 되면, 그분과 함께하는 쓴맛, 단맛을 가리지 않고 바라게 될 것입니다. 그래야 갈망이 일고 열정이 솟아, 반드시 주님을 모시겠다는 의지로 투혼을 발휘할 테니까요.
사랑하는 벗님! 주님께서 오늘 우리 각자에게 "그러면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물으십니다. "그래, 남들이 말하는 그건 됐고, 그러면 너에게 나는 누구니?" 하고 물으시는 겁니다. 교리나 강의에서 들었던 유려한 단어들의 조합보다, 우리 각자의 생애를 통해 직접 만나 업치락뒤치락 동행해 온 체험에 비추어 주님이 누구신지 응답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우리가 인식했건 인식하지 못했건 그분은 우리 한가운데 계셨고, 사실 우리는 주님을 알고 있답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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