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1년 9월 25일 연중 제25주간 토요일

dariaofs 2021. 9. 25. 05:54

오늘 미사의 말씀에서는 반전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라워하는데 ...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루카 43-44)
예수님의 가르침과 구마, 치유의 기적들에 사람들이 놀라워하며 열광합니다. 의료적 혜택을 누리기 어려운 가난한 이들은 물론 민족적 자유와 해방에 목마른 이들이 그분의 존재와 행위에 희망을 갖게 되지요.

그런데 제자들은 스승에게 쏟아지는 이런 호평으로 으쓱할 새도 없이 엄청난 반전을 직면합니다. 당신이 바로 그 사람들 손에 넘겨질 것이라는 예수님 말씀이 충격에 가까울 터입니다.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조차 두려워하였다."(루카 9,45)
이 말씀이 두 번째 수난 예고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자들의 귀와 마음은 막혀 있습니다. 듣고 싶지 않은 것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고, 들었다 해도 쉽게 망각하는 법이니까요. 하지만 묻는 것조차 두려워했다니, 뭔가 불길한 예감마저 전혀 없었던 건 아닌 듯 보이지요.

사람들의 경탄과 사람들의 배척, 이 둘 사이의 거리는 사실 지척입니다. 그 사이가 아주 멀기를 바라는 건 그 명예와 영광에 기대어 한 자리 차지하고픈 욕망에 들썩이는 제자들 사정일 뿐이지요. 오히려 당사자 예수님에게서는 그 둘 사이에 경계가 보이지 않습니다. 당신을 떠받드는 영광에도 무심하고, 당신을 사정없이 내치는 공격에도 초연하시니까요.

제1독서에서는 예루살렘의 새로운 모습이 열립니다.

"예루살렘은 성벽 없이 넓게 자리 잡으리라. ... 내가 예루살렘을 둘러싼 불 벽이 되어 주고, 그 한가운데에 머무르는 영광이 되어 주리라."(즈카 2,13)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루살렘은 그들의 민족적 정통성과 이방인에 대한 배타성이 극명하게 표출되는 장소였지요. 그런데 유배 후 돌아와 다시 재건되는 예루살렘이 성벽 없이 넓게 자리 잡는다고 하니 이 또한 반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반전은 하느님께서 이 도성이 혈연과 할례, 율법으로 구분하는 경계를 넘어서는 만민의 성소가 되길 바라시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불 벽"
물리적 돌로 이루어진 성벽을 없애고 활활 타오르는 불로 도성을 둘러싸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인간적 생각으로야 불이 둘러싸면 더 접근이 어렵지 않나 오해할 수 있지만, 이 불은 영의 불길, 곧 성령의 불입니다. 성령은 구분하고 선 긋고 갈라내는 힘이 아니라, 잇고 일치하고 포용하는 기운이십니다. 주님께서 기대하시는 예루살렘은 누구나 서로 넘나들며 너나 할 것 없이 소통하고 연결되고 하나 되게 하는 영으로 둘러싸일 것이고, 주님께서 그 한가운데 머무르실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삶은 반전의 연속일 겁니다. 기쁨과 슬픔, 행운과 사고, 만남과 이별, 희망와 실패 등등 늘 좋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늘 힘들기만 하지도 않은 게 우리네 삶이겠지요. 그 경계를 넘나들며 우리는 무너지기도 하고 실의에 빠지기도 하지만 이내 일어나 성장하며 단단해져가는 중입니다.

자신이 구분해 놓은 좋은 것과 나쁜 것 사이에 성벽처럼 경계를 만들고 묶이게 되면, 어차피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 그 파도에 시달려 일희일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중심에 주님께서 계시고 구분의 성벽이 영의 불길로 바뀌면 많은 게 달라질 겁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이 규정해 놓는 성공과 실패, 기쁨과 슬픔, 건강과 질병 등의 결과론적 구분이 성령 안에서 새로이 질서잡힐 테니까요.

주님의 영광과 그분의 수난을 함께 사랑하고 껴안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동시에 우리가 누리는 행복과 고통을 함께 받아안을 힘 또한 얻으시길 바랍니다. 성령께서 구분하고 차별하는 우리의 편견과 선입견을 태워 없애 주시고, 주님 안에서 하나로 아우를 내공을 주실 겁니다.

"기뻐하며 즐거워하여라. 정녕 내가 가서, 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즈카 2,14)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