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핵심·자기이해

[단테의 신곡 제대로 배워봅시다] (20) 에우노에 강에서의 부활

dariaofs 2021. 10. 22. 00:47

베아트리체의 부탁으로 단테를 강으로 이끈 마텔다 악을 잊게 하는 레테 강과 선 상기시키는 에우노에 강 강물을 마시며 영혼 정화

 

                      이탈리아에서 제작된 사본, ‘레테와 에우노에의 샘’(14세기 후반).

 

“하느님, 이방인들이 당신 소유의 땅으로 쳐들어와, 당신의 거룩한 궁전을 더럽히고, 예루살렘을 폐허로 만들었습니다.”(시편 79,1) 향주 삼덕과 사추덕의 여인들이 교회의 타락한 현실을 보고는 눈물을 흘리며 교대로 성가를 부른다.

베아트리체는 십자가 아래의 성모 마리아처럼 비통한 표정으로 교회의 황폐를 슬퍼한다. 그리고는 교황청의 아비뇽 천도와 그 이후 로마로의 귀환을 예언한다.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조금 더 있으면 나를 보게 될 것이다.”(요한 16,16) “열 걸음 정도 옮겼다”(연옥 33,17)는 것은 9년 이상의 세월이 지났다는 것을 암시한다. 즉 1305년 프랑스 왕 필립 4세의 사주를 받은 클레멘스 5세 교황이 교황청을 아비뇽으로 옮긴 해와 1314년 그 두 사람이 모두 죽은 해 사이를 말한다.

그러기에 베아트리체는 “뱀이 부서뜨린 그릇은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다”(동 33,34-35)고 말한다. 이는 성경에서 “네가 본 그 짐승은 전에는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묵시 17,8)고 한 대로이다. 이제 물질적인 교회는 타락함으로써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시야 밖으로 끌려갔다.(연옥 32,157-160)

때가 오면 하느님께서 보낸 오백, 열 그리고 다섯이

저 도둑년을 죽일 것이오.

그년과 더불어 죄를 지은 저 거인도 함께. (연옥 33, 43-45)


베아트리체는 하느님의 대행자인 ‘515’가 파견되어 타락한 교회와 프랑스 왕을 벨 것이라고 말하며, 이를 예언으로 현세에 전하라고 단테에게 명령한다.


그대는 내가 말한 대로 기억에다 쓰시오.

그리고 죽음을 향한 달리기에 불과한 삶을

살아가는 산 사람들에게 전하시오. (연옥 33, 52-54)


‘사냥개’(지옥 1,102)와 동일시되는 ‘515’(DXV)는 철자 바꾸기 놀이(anagram)에 의하면 DUX(지도자, 우두머리)를 의미한다. 만일 1312년경이라면 하인리히 7세 황제를, 1316년 이후라면 베로나의 영주이자 황제 대행인 칸그란데 델라 스칼라(Cangrande della Scala)를 가리킬지 모른다.

이는 곧 세상을 바로잡을 인물의 출현을 가리킨다. 여하간 단테는 마지막까지 대변혁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가 교회와 이탈리아 정치를 재생시킬 제국의 부활을 꿈꾸었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베아트리체는 또 다시 단테에게 자기의 말을 잘 기억해 두었다가 세상에 돌아가면 전하라고 말한다.

다시 한번 바라니, 글이 아니라면 적어도 그림으로라도

그것을 지니고 돌아가길 바라오.

순례자가 지팡이에 종려 잎을 말아 가져가듯이. (연옥 33, 76-78)


일행은 어떤 샘에 도착한다. 그 샘으로부터는 악을 잊게 하는 힘을 지닌 레테 강과 선을 상기시키는 힘을 지닌 에우노에 강이 흘러나온다. 마텔다는 베아트리체의 부탁을 받고 단테가 에우노에 강물을 마시도록 데려간다.


하지만 저곳에서 흘러나오는 에우노에를 보아요.

그리고 그대가 늘 하는 대로 그를 그곳으로 데려가

마비된 그의 능력을 되살려 주세요. (연옥 33, 127-129)


단테는 그 물결 이랑에서 새로운 잎사귀를 단 어린나무처럼 청신하고 생생한 모습이 되어 돌아온다.


나는 지극히 성스러운 물결 이랑으로부터 돌아왔다.

새로운 잎으로 새로워진 나무처럼

순수하게 다시 태어나

별들로 오를 준비가 되어있었다. (연옥 33, 142-145)


연옥 편의 마지막 주제는 처음 주제와 동등하다. 쇄신과 재생이다. “죽었던 시가 여기 되살아나는 것”(연옥 1,7)이다. 연옥 편 역시 지옥 편이나 천국 편처럼 ‘별들’(stelle)이란 말로 끝난다.

김산춘 신부 (예수회·서강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