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향수 물리치고 ‘영혼의 본향’ 천국으로
베아트리체와 함께 승천해 영원한 천국의 신비를 누설
가기 어렵다는 좌절감 주고 뒤이어 독자들의 분발 자극
순수한 빛과 사랑의 하늘인 ‘지고천’으로 독자들을 초대
조반니 디 파올로의 ‘하늘로 오르는 단테와 베아트리체’.(1445년경)
베르길리우스는 「아이네이스」(1,33)에서 “로마 민족을 창건한다는 것은 그만큼 힘든 과업이었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가 그저 육신의 고향으로 귀향하는 것과는 다른, 정신의 고향인 ‘미래로의 귀향’이었기 때문이다. 이마미치 토모노부는 바로 이 점이 단테가 호메로스가 아닌 베르길리우스를 스승으로 공경한 특별한 이유였다고 말한다. 단테는 끝내 육신의 고향인 피렌체로 돌아가는 길과 타협하지 않았다.
그는 과거에의 향수를 과감히 물리치고 오히려 미래로의 향수 안에서 영혼의 본향인 천국으로 향했다. 그러나 우리가 보아왔듯이 단테는 ‘천국에 들어가기 위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사도 14,22)
우리는 모두 영원으로부터 시간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모래시계의 모래가 다 흘러내리면 다시 영원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영원에 관하여 무엇을 알고 있으며 또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영원은 신비다. 영원한 천국도 신비다. 그런데 단테는 성 바오로조차 사람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던(2코린 12,4) 천국의 신비를 이제부터 사람의 말로 누설하려는 것이다.
지옥 편은 일몰(日沒)과 함께 시작한다. 죽음의 세계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지옥은 유리창이 없는 어두운 절망의 백화점이다. 연옥 편은 부활 대축일 아침 일출(日出)과 함께 시작한다. 연옥에는 빛과 노래가 있다. 그리고 천국 편은 한낮에 시작한다. 베아트리체와 함께 승천하는 천국은 통유리창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눈부신 도서관이다.
모든 것을 움직이시는 분의 영광은
온 우주에 침투하지만 어떤 곳에는
많이 또 다른 곳에는 적게 비춘다. (천국 1,1-3)
천국 편의 시작은 천국 편의 마지막 행 ‘태양과 다른 별들을 움직이는 사랑’(33,145)에 정확히 대응하고 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빛(집회 42,16) 즉 영광과 사랑은 동의어이다. 천국 편 시작부터 단테는 독자들을 공격적인 도전으로 좌절케 한다.
오, 귀담아듣고 싶어서 작은 쪽배에
앉아, 노래하며 나아가는 나의 배를
뒤따르고 있는 그대들이여,
넓은 바다로 들어서지 말고 그대들의
해변으로 돌아가시오. 혹시라도
나를 잃고 헤맬 수도 있을 테니까.
내가 가는 바다는 아무도 가본 적이 없으니
미네르바가 바람을 일으키고 아폴론이 이끌며
아홉 무사이가 곰자리를 보여 준다오. (천국 2,1-9)
철학과 신학의 지식을 갖추고 ‘천사의 빵’(영원한 진리)을 찾아오는 몇 안 되는 독자들만이 천국 편을 따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곧 단테는 낙담시키는 듯이 보이는 전략을 뒤집어 독자들의 분발을 자극한다.
독자여, 생각해보시라. 여기서 내가 시작하여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부족한 것을
알고 싶어 그대는 얼마나 괴로워하겠는가. (천국 5,109-111)
단테는 「향연」(1,1,7-13)에서, 식탁에 앉아 천사의 빵을 먹는 소수의 사람들은 행복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자신은 “그 축복받은 식탁에 앉아있지는 않지만, 민중의 목초지에서 벗어나 식탁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발치에서 그들에게서 떨어지는 것을 주워 모으고 있다”고 말한다.
즉 자신은 전문적인 학자는 아니지만, 생계 때문에 진리에 굶주린 민중들을 위해 그들의 소화를 쉽게 해줄 빵의 향연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단테의 모습은 마귀 들린 자기 딸의 치유를 예수께 간곡히 부탁하던 가나안 여인의 모습과 흡사하다.
“자녀들이 먹을 빵을 강아지에게 던져주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그녀는 “주님,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마태 17,27)라고 대답했던 것이다. 이 낙담과 분발의 모순이 바로 천국 편의 어려움이자 매력이다.
아리스토텔레스-프톨레마이오스적 하늘 풍경에는 8개의 물질적 천구(天球)와 투명한 원동천(原動天) 너머 순수한 빛과 사랑의 하늘인 지고천(至高天, Empireo)이 있다. 지고천이야말로 하느님과 지복자(至福者)들이 사는 진정한 천국이다. 단테는 보이는 하늘들로부터 보이지 않는 이 지고의 하늘로 상승하면서 그 지복의 일별(一瞥) 내지 미리 맛봄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다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겠지만, 은총이 그런 경험을
허용해 주는 자에게는 이 예로 충분하리라.
(천국 1,70-72)
김산춘 신부 *예수회·서강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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