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1년 11월 9일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dariaofs 2021. 11. 9. 06:54

오늘 미사의 말씀은 성전의 진정한 의미를 알려 주십니다.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요한 2,16)
예수님이 성전에서 사고파는 장사꾼들과 환전상들을 내쫓으시며 말씀하십니다. 제물로 바칠 짐승이나 돈을 성전 안에서 고르고 또 바꾸다 보니 장사치들의 존재는 일상적인 일이 되었지만, 예수님께서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신 겁니다.

"아버지의 집"
아버지의 집은 외적으로 성전 건물을 가리키지만, 내적으로는 아버지께서 머무르시며 당신 백성과 통교를 나누시는 자리를 의미합니다. 외적인 예식과 제물도 중요하지만 하느님과 인간이 나누는 사랑의 침묵과 머무름도 간과할 수 없는 본질이지요. 아버지께 제물을 들이대기 전에 먼저 고요히 존재 대 존재로 마주하는 것이 우선일 겁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요한 2,19)
이번에는 예수님께서 당신 몸을 성전이라 일컬으십니다. 사람들이 알아듣건 알아듣지 못하건, 죽으시고 사흘만에 살아나실 당신의 앞날을 이 말씀으로 계시하신 겁니다. 아버지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현존하시는 성전입니다.

제1독서에서 에제키엘 예언자는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환시로 봅니다.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 ... 이 물이 성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에제 47,9.12)
예언자는 천사에게 외적으로 이끌려 주님의 집 문지방 밑에서 물이 솟아 흐르는 장면을 봅니다. 그 물이 강으로 흘러가면서 온갖 생물을 살리고, 바다로 흘러가면 그 바닷물이 되살아납니다. 이 물이 지닌 힘은 그 원천인 성전의 생명력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해서 물과 피를 쏟으신 장면이 떠오릅니다. 성전이신 예수님의 몸에서 흘러나온 물과 피는 교회에 생명을 주는 성사입니다. 이 은총은 흘러가 닿는 곳마다 살리고 되살리며 거듭 생명을 줍니다.

또한 우리 자신도 예수님의 몸에서 흘러나와 세상에 보내어진 물이 아닐까 관상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말씀과 사랑을 가득 채워 우리를 세상으로 흘려보내시니까요. 주님의 생명력으로 충만해진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위는 아직도 죽음의 그늘 밑을 걷고 있는 이 세상에 은총의 도구가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파견되어 세상 구석구석으로 스며드는 물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그 물을 흘려보내는 또 다른 성전이기도 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도 성령께서 현존하시는 성전이니까요.

사랑하는 벗님! 성전 중의 성전인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을 지내며 또다른 성전인 우리 존재가 예수님의 바람과 기대에 맞게 잘 정돈되고 질서와 조화 가운데 주님을 모시고 있는지 살피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주님께서 머무르시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성전으로 세상 안에서 조용히 주님의 생명을 퍼뜨리는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