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1년 11월 15일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dariaofs 2021. 11. 15. 06:38

오늘 미사의 말씀은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려면 삶의 도전과 난관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보여 주십니다.

"앞서 가던 이들이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루카 18,39)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고 예리코의 눈 먼 이가 큰 소리로 자비를 청하자 사람들이 그를 꾸짖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그로서는 목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밖에 없는데 군중에게는 그저 소음처럼 들렸나 봅니다.

군중의 꾸짖음에도 그는 지치지 않고 움츠러들지 않고 계속 외칩니다. 자기 목소리가 예수님의 귀에 전달될 때까지, 자기의 절박함과 간절함이 예수님 마음에 닿을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겠다는 태세입니다.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루카 18,41)
예수님이 그를 데려오라고 하셔서 무엇을 바라는지 물으시자 그가 즉시 대답합니다. 한시도 잊은 적이 없는 갈망이었겠지요. 많은 경우 사람들은 뭔가를 바라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정확히 표현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바라는 바가 하느님의 뜻 안에서 제대로 내면화되지 못한 까닭입니다.

예리코의 눈 먼 이는 장애를 안고 구걸하며 살아가는 가운데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뜻이지요. 다시 보고 싶다는 바람, 원의, 갈망이 결정적인 때에 그의 뼛속을 뚫고 나와 예수님 앞에 펼쳐졌고 예수님은 즉시 그의 청을 들어 주십니다.

제1독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닥친 암울한 역사를 들려 줍니다.

"임금은 온 왕국에 칙령을 내려, 모두 한 백성이 되고 자기 민족만의 고유한 관습을 버리게 하였다."(1마카 1,41-42)
마카베오기는 선택된 민족 이스라엘이 헬레니즘 시대에 겪었던 고난의 역사를 들려줍니다. 당시 유다 지방에 그리스 문화를 강요하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후계자들과 그들에 맞선 민족적 항쟁이 줄거리지요.

이스라엘은 창조주이시며 유일하신 한 분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으로서 그분만을 섬기라고 불리운 신앙의 민족입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의해 점령당한 왕국들에게 모두 한 백성이 되라 하고 각 민족마의 고유한 관습을 버리도록 한 칙령은 그들에겐 날벼락과 같은 도전이었을 겁니다. 게다가 더욱 슬픈 일은 이를 찬성하고 자청하여 끌어들인 이들이 동족 안에서 나왔다는 점이었지요.

"그들은 음식으로 더렵혀지거나 거룩한 계약을 모독하느니 차라리 죽기로 작정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죽어갔다."(1마카 1,63)
오늘 독서의 대목에서도 드러나지만, 대부분의 전쟁사가 그렇듯 마카베오기 안에는 수월히 읽어나가기 어려울 정도의 격심한 전쟁과 잔인한 박해, 처절한 죽음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중요하고 또 소중한 이유는 민족적 정체성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배반하라고 시시각각 조여 오는 악의 폭력 앞에서 목숨을 던져 신의를 지킨 이들의 존재를 통해, 지금 이 세상의 흐름을 주도하는 권력과 재물의 드센 유혹에 맞서 하느님 백성인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 차라리 죽기로 작정하였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다종교사회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이스라엘의 이런 결의가 많이 생소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이스라엘에게 하느님과의 관계와 율법은 자기들이 누구인지 규정하는 생명이었지요. 민족의 생명인 정체성을 생명을 바쳐 지켜내는 것이 신앙의 정당한 표현이었을 겁니다.

이스라엘은 외세의 침략과 박해, 죽음의 시련을 겪으면서도 멈추지 않고, 지치지 않고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일어섭니다. 죽음도 그들을 막지 못했지요. 자신이 바라는 바를 정확히 알고 하느님의 뜻 안에서 내면화한 이는 어떠한 거센 저항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생명을 지키는 일이니까요.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신앙과 사랑을 고백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때때로 세상은 장애물과 걸림돌을 던집니다. 모두가 열광하고 추구하는 물질주의가 경쟁과 약육강식의 폭력을 부추기고, 서로 사랑하라는 하느님 말씀을 낡은 종교적 관념 안에 가두어 버리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하느님의 자녀로 신의를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마카베오 시대 못지않게 어렵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각자 희생과 결단을 마냥 미룰 수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벗님! 꾸짖음과 저지에도 자신의 갈망을 존중하고 에수님을 불렀던 예리코의 눈 먼 이나, 죽음의 위협 앞에서 신앙의 항쟁사를 이어간 순교자들처럼 충실함과 용기를 청하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우리가 하느님 뜻 안에서 바라는 바를 그분께서 반드시 이루어주실 것이라 믿고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