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앙 돋 보 기

[무너져가는 집을 복구하여라!] 12. 하느님의 구원경륜 ⑨- 환희의 신비 1

dariaofs 2022. 2. 26. 00:54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죄에서 벗어난 우리들

 


▲ 멜 깁슨 감독이 제작한 ‘그리스도의 수난’은 예수님이 얼마나 극심한 고통을 겪으셨는지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담았으며, 하느님의 사랑이 얼마나 심오한지 잘 드러내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DB



전레력으로 9월 15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부속가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어머니께 청하오니 내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교회는 성모님의 마음으로 예수님이 겪으신 ‘십자가의 신비’를 바라보도록 이끈다.

2004년 멜 깁슨이 제작한 영화 ‘그리스도의 수난’(Passion of Christ)이 상영되어 큰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다.

 

이 영화에서 예수님의 수난에 대한 장면이 이전의 그리스도 수난에 대한 영화들보다 훨씬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예수님이 얼마나 극심한 고통을 겪으셨는지 더 체감할 수 있게 했다.

 

더불어 이 영화는 수난당하시는 예수님 곁에서 함께 고통당하시는 성모님의 모습도 사실적으로 그렸다. 요컨대, 예수님의 십자가의 수난과 마찬가지로 심장과 숨이 멎고 옆구리와 정수리가 꿰뚫리시는 성모님의 아픔을 보여주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수난이 얼마나 포악하고 극악무도한지 성모님의 마음으로 되새길 때, 우리는 죄가 가져다주는 감미로운 유혹에서 벗어나 죄를 끊어 버릴 수 있는 은총을 받게 될 것이다.

예수님이 흘리신 피를 말없이 닦는 성모님


또한 이 영화는 예수 십자가 고통의 잔혹함 뿐 아니라 대속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이 얼마나 심오한지도 잘 드러내고 있다.

 

영화에서 예수님은 빌라도 법정 마당에서 살점에 찢겨나가는 끔찍한 편태를 당하신 후, 병사들이 예수님 머리에 가시관을 씌우기 위해 거의 혼절하신 예수님을 끌고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이때 예수님의 편태 장면을 목격한 성모님과 마리아 막달레나 그리고 빌라도의 부인이 넋을 잃은 모습으로 예수님이 매질 당했던 법정 마당 한가운데로 천천히 걸어 나온다.

 

그리고 빌라도 부인이 성모님과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다가가 어찌할 바를 모른 채, 가져온 수건을 두 분에게 건네준다. 수건을 건네받고, 성모님과 마리아 막달레나는 법정 마당에 앉아서 흥건하게 고인 예수님의 피를 말없이 닦는다.

 

이때, 영화는 마리아 막달레나가 과거의 한 사건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바뀐다. 바로 요한 복음 8장에 나오는 간음한 여인에 대한 장면이다. 영화에서 마리아 막달레나는 간음한 여인과 동일한 인물로 등장한다.

 

성난 군중들이 간음한 여인에게 돌을 던지려고 할 때, 예수님이 나타나자 율법학자는 예수님을 향해 질문을 던진다.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는데 모세의 율법에는 이런 여자를 돌로 쳐 죽이라고 했습니다.

 

선생님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예수님을 올가미를 씌어 고발하려는 계략이다. 이에 예수님께서 한참을 생각하시며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요한 8,7)고 말할 때, 나이가 많은 사람들부터 한사람씩 그 자리를 떠나고 마침내 예수님과 마리아 막달레나만 남게 된다.

이러한 영화의 장면을 통해 영화감독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피흘림과 형언할 수 없는 수난의 고통이 사람들의 죄를 ‘대속하는 사랑’임을 깨닫게 해준다.

 

어쩌면 마리아 막달레나는 당시 율법에 따라 자기가 범한 간음죄에 대한 대가를 자기 목숨으로 지불하려고 죽음을 각오했을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님 덕분에 살아났다고 생각했지만 어떤 과정을 통해 그렇게 되었는지 구체적으로 깨닫고 있지 못했다.

 

그러다가 빌라도 법정에서 예수님이 흘리신 피를 닦으면서, 자기 자신이 범한 죄에 대한 대가를 예수님이 대신 값을 치른 것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녀는 자기 죄에 대한 대가를 대신 치른 예수님의 헤아릴 수 없는 사랑에 주체할 수 없는 통회의 눈물을 흘린다.

 

더 나아가 마리아 막달레나는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 외아들을 내어주셨다”(요한 3,16)는 말씀의 의미, 즉 하느님 아버지의 혜량할 수 없는 심오한 사랑도 깊이 깨달아 새롭게 태어날 수 있었다.

그리스도 고통의 신비는 인간 구원의 사랑

죄를 범한 인간이 죄에 대한 대가로 십자가 형벌을 받는 것이 마땅한데, 오히려 하느님께서는 그 십자가의 자리에 당신의 외아들을 못 박게 하시고, 당신 외아들이 누려야 하는 자리를 우리 인간에게 내어주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의 심오함을 깨닫게 된 바오로 사도 역시 다음과 같이 외쳤다. “누가 감히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있겠습니까?(중략)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의 도움으로 이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도 남습니다.”(로마 8,35-36)

 

요컨대,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의 고통의 신비 안에서 펼쳐진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랑과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고 사도가 되었다.

그리스도의 고통의 신비, 십자가의 수난은 극악무도한 형태이지만 그 안에 흐르는 것은 인간에게 베풀어지는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의 사랑일 뿐 아니라, 인간을 죄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구원의 사랑이다.

 

이렇게 하느님의 구원경륜인 그리스도의 ‘고통의 신비’ 덕분에 우리는 죄에서 벗어나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 안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사랑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그 사랑에 힘입어 자신이 지은 죄를 깊이 성찰하고 통회하며 하느님께 돌아서는 회심이 필요하다.

 

나의 죄로 말미암아 하느님께 끼친 상심에 대해 눈물을 흘리는 것은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느님의 은총의 역사요, 우리의 어둠에 대한 하느님 자비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김평만 신부(가톨릭중앙의료원 영성구현실장 겸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