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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자 수녀의 하느님의 자취 안에서] 30. 희망이 있는 이들의 삶의 밝기

dariaofs 2022. 2. 27. 00:58

우리나라의 밤은 정말 밝다. 숲을 이룬 거대 빌딩과 네온사인이 가득한 거리는 저 위의 밤하늘과 대조적으로 빛난다. 쉴 새 없이, 잠잘 새 없이 밝은 빛이 보기에 좋지만은 않게 여겨진다.

몇 년 전 수녀회의 일로 로마에 갈 일이 있었다. 비행기 푯값이 조금이라도 저렴한 것을 선택하니, 밤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비행기가 이륙했을 때, 정말 아름다운 야경을 볼 수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돌아올 때에도 밤 비행기를 타고 왔다. 비행기가 이륙했을 때, 이탈리아 상공의 밤을 보니 놀랍게도 드문드문 켜져 있는 불빛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열두 시간 만에 우리나라에 가까이 온 것을 한눈에 차릴 수 있었는데 바로 불빛 때문이었다. 나는 상공에서 본 우리나라를 보며 깜짝 놀랐었다.

 

어떻게 이렇게 빈틈없이 밝을 수 있을까?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우리나라인지 굳이 경계를 만들지 않더라도 아주 선명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가까워질수록 마치 화산 폭발로 용암이 흘러넘치는 것으로 보였다. 나의 옆자리들에서는 사람들이 출국할 때의 나처럼 “너무 아름답다!”라고 탄성하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 장면과 쓰나미가 몰려오는 현장이나 허리케인 현장에서 웃는 얼굴로 인증사진을 찍고 있는 장면과 다르지 않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나는 금요일 저녁마다 남대문과 서울역 광장에서 노숙하고 계신 분들에게 국밥을 나눠드리는 수녀님을 찾아가 봉사를 하고 있다. 한 번은 버스 정류장을 착각해서 남대문에 이르기 전역에 위치한 한 백화점 앞에 내리게 되었다.

 

그런데 정말 많은 사람이 휴대폰을 들고 어딘가를 향해 있었다. 사람들이 향한 곳을 보니, 백화점 건물 외벽이 온통 불빛을 내며, 네온사인 쇼를 구성해 사람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안 보고 지나칠 수 없도록 한껏 치장한 그 건물 앞에서 카메라를 들고 수많은 사람이 서 있는데, 만감이 교차했다.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표현하는 우리 시대의 기후위기나 코로나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지 묻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 정말 몰라서 묻는 것일까? 우리는 이 시급한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다.

 

다만 극복하기 위한 선택을 하기보다 현세의 달콤함을 선택하기를 더 좋아하는 듯해 보인다. 우리가 품고 있는 희망이 당장 화려함과 달콤함에 있는 것이다.

나는 베드로 1서 3장 15절을 아주 자주 되뇌곤 한다. “여러분이 지닌 희망에 관하여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해 두십시오.” 이 성경 구절에서 베드로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구성원들 모두가 무엇을 희망해야 할지를 알고 준비하도록 한다.

 

‘나는 무엇을 희망하고 있는가?’ 답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희망인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기꺼이 한다. ‘예수님이라면’ 무엇을 선택하셨을까를 깊이 헤아리며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편리하고 화려하고 번쩍이지만 죽음에 이르는 길을 걷게 될지, 불편하고 소박하고 좀 어둡지만, 생명에 이르는 길을 걷게 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제 신앙을 가진 우리에게 희망을 물을 때, 말로 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들의 삶을 본다. 우리의 행동을 보고 희망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희망이 오로지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에 있었기에 우리는 그분을 보면서 아버지의 사랑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지니신 희망이 무엇인지를 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개인과 가정, 교회와 기업, 정부와 국가들끼리도 지금 당장 안락함을 희망하기보다 저 높은 데서 멀리 바라보는 ‘희망’을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하게 된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눈앞에서 겪게 되는 이 위기 속에서 희망을 품은 그리스도인들이 많다면 서울의 밤이 이렇게 밝아서는 안 될 것 같다.


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