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앙 돋 보 기

[무너져가는 집을 복구하여라!] 15. 하느님의 구원경륜⑫- 영광의 신비 1

dariaofs 2022. 3. 22. 00:39
 


죽음의 공포에 짓눌린 진시황의 묘지

예전에 중국 시안에 있는 ‘진시황릉’ 병마용 박물관을 관람한 적이 있다. 1974년 우물을 파던 농부가 우연히 병마용 파편을 발견하였는데, 이것으로 2200년 동안 미스터리로 남아 있던 ‘진시황릉’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병마용이 묻혀 있던 갱은 ‘진시황릉’에 딸린 180여 개 갱의 일부로 이들 병마용은 진시황의 사후 세계를 지키는 병사들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일부만 발굴된 ‘진시황릉’은 진시황이 자기 사후 세계를 위해 건축한 어마어마한 ‘네크로폴리스’(Necropolis :고대 도시의 묘지)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러 우리나라까지 사신단을 보냈다는 이야기나 거대한 ‘네크로폴리스’을 건축했던 사실은 그가 얼마나 죽음의 공포에 짓눌려 살았는지 가늠해 보게 한다.

 

진시황만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존재의 유한성인 죽음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스위스 출신의 정신과 의사이며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는 인간이 죽음 앞에서 어떤 상태에 놓이는지에 대해 연구하였다.

 

그녀는 죽음 앞에선 말기 환자 500명을 인터뷰하여 집필한 그의 저서 ‘죽음과 임종’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죽음을 수용하기까지 어떤 고뇌와 번민, 그리고 심리적인 압박과 공포를 겪게 되는지 잘 드러내고 있다.

 

우리 존재의 한계상황인 죽음의 공포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방될 수 있을까? 무엇이 우리를 ‘죽음의 독침’에서 벗어나게 할 것인가?

 

바로 하느님께서 이루신 ‘영광의 신비’, 곧 죽음을 물리치고 예수님을 부활시키신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바로 우리의 아버지라는 신앙을 확고하게 받아들일 때 가능하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의 기쁨

파스카 성야 미사 복음 말씀인 마태오 복음 28장에서 예수님 무덤에 온 여인들 앞에 천사가 나타나 기쁜 소식을 전한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찾는 줄을 나는 안다.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말씀하신 대로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마태 28,5-6) 요컨대 천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궁극적인 원수인 죽음을 이기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건너가셨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준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되살아나신 부활 신앙을 어렵지 않게 믿고 받아들이고 있지만,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처형되는 모습을 자신들의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을 뿐 아니라, 그로 말미암아 심각한 트라우마 상태에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 스승님께서 처참하게 죽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 뇌리에서 그 장면을 지울 수 없었다. 또한 예수님을 배반한 죄의식과 자책감으로 불면의 밤을 지새워야 했으며, 기대했던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 절망감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따라서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어떤 제자들은 희망을 잃고 자기 고향으로 뿔뿔이 흩어져(루카 24,13) 되돌아가고 있었고, 어떤 제자들은 자기들을 위협하는 유다인들을 피해서 방문을 닫아걸고 두려워 떨고 있었다.(요한 20,19)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 앞에 예기치 않게 나타나셨을 때, 처음에 그들은 자기들 눈을 의심하며 유령이 나타났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분과 부활하시어 자신들 앞에 나타나신 분이 ‘동일인’이라는 확신에 이르렀을 때, 주체할 수 없는 기쁨으로 모든 회한과 번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기쁨은 처참하게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 돌아오신 안도의 기쁨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차원의 하느님을 알게 된 복음의 기쁨이기도 하다.

 

요컨대 자기들이 따르던 분이 바로 사람들을 죄에서 구해내실 구원자이시며 동시에 ‘하느님의 친자’라는 확신을 얻게 된 것이다.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 20,28)이라 고백한 토마스 사도를 묵상할 때, 그 기쁨의 본질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

 

그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해가는 중에 하셨던 세 번의 ‘수난 예고’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이로써 그는 예수님을 온 만물의 주님으로 믿고 자기 인생의 굳건한 주춧돌로 삼았다.

예수님 부활의 신비는 우리도 예수님처럼 죽음에 머물지 않고 영원한 생명으로 되살아나는 궁극적인 희망을 갖게 한다. 바오로 사도는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건너가는 부활에 대한 확신으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우리는 썩어 없어질 것으로 묻히지만, 썩지 않을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비천한 것으로 묻히지만 영광스러운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약한 것으로 묻히지만 강한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나팔소리가 나면 죽은 이들이 썩지 않을 몸으로 되살아나고 우리는 변화할 것입니다.(1코린 15,44-52)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반드시 부활하리라는 확신에 이르게 되었다.

 

이 부활 신앙을 갖게 될 때, 우리는 더 이상 죽음의 공포에 짓눌려 살지 않으며, 사후세계를 대비하여 진시황처럼 거대한 ‘네크로폴리스’를 건설할 필요도 없다.

 

부활신앙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죽더라도 살 것이며(요한 11,25),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으로 죽음의 독침에서 해방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김평만 신부
(가톨릭중앙의료원 영성구현실장 겸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