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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엽 신부가 만난 사람들] (33) 해금 연주자 정겨운 가타리나

dariaofs 2022. 8. 29. 00:28

기도와 함께하는 해금 연주, 사람들 마음에 한 줄기 위로 됐으면

 

                                                         ▲ 해금 연주자 정겨운씨.


해금 연주자 정겨운(가타리나)씨를 처음 만난 것은 그녀가 청년성서모임 연수에서 봉사자로 활동할 때였다. 그 후 가타리나 자매가 악기를 메고 명동 사무실로 방문했다.

 

그때만 해도 그녀가 해금 연주자인 것을 몰랐다. 내가 연주를 부탁하자 1인 관중(?)을 앞에 놓고 해금을 꺼내 연주를 시작했다. 처음 보는 악기에 처음 들어보는 소리는 신비롭기까지 했다.

 

해금은 가르치는 곳도 찾기 어렵다는 그녀의 말에, 한번 홍보국 문화프로그램으로 해금을 가르쳐보라고 권유했다. 청년 신자들의 반응은 예상보다 뜨거웠고, 학기 마지막 날에는 항상 명동대성당 입구에서 해금 연주 버스킹을 했다.

 

코로나19로 모임이 규제받기 전까진 수강생들이 꾸준히 늘어났다. 내친김에 해금 연주단을 만들어보라 했는데 가능할 것 같다.

 

그녀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을 수료한 재원이다.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 전수자이기도 한 그녀는 한동안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상임 단원을 역임하기도 했다.

 

현재는 국립외교원, 서울대 평생교육원, 선화예술고등학교, 국립국악중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그녀는 밴드와 공연을 하고,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국악 연주를 하기도 하며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언제 어떻게 신자가 되었나요?

열심이신 부모님 덕분에 엄마 태중에서부터 성당에 다녔어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제가 어렸을 때는 주일 아침에 디즈니 만화 동산을 포기하고 성당에 가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웃음) 매주 억지로 등 떠밀려 미사를 드리러 갔대요.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하루에 세 끼를 챙기는 것처럼, 주일 미사 참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조기 교육해주신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학창 시절엔 어떤 학생이었나요?

저는 세 자매 중 막내인데, 언니들은 소위 ‘천상 여자’들이지만 저는 망아지 같아 유난히 키우기 힘드셨대요. 초등학교 때 헌금하라고 용돈을 받으면 100~200원씩 따로 챙겨놨다가 미사 끝나고 오락실에 갔어요.

 

그 덕분에 오락실에서 주최한 펌프 대회에서 1등을 할 정도였어요. 그때 경품으로 엄청나게 큰 가정용 펌프를 받아왔었는데 그제야 전말을 알게 된 어머니께 엄청 혼이 났어요. 지금은 단아해 보이는 해금 연주자가 되어있지만 어렸을 때는 정말 못 말리는 딸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 하는 일을 조금 자세하게 설명해주세요.

큰 언니는 한국무용을 전공했고 작은언니는 해금을 전공했다가 거문고로 전과를 했어요. 해금이 한 대 남아 있어 제가 자연스럽게 연주하게 되었어요. 막상 사회에 나와보니 해금과 아쟁을 구분하지 못하는 분들도 많았어요.

 

우리나라의 악기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모른다는 게 아주 속상하더라고요. 그래서 해금으로 대중들과 가깝게 소통할 수 있는 음악을 직접 만들게 되면서 작곡도 하게 되었어요.

 

조금 고생스럽더라도 공연장에 관객을 초청하는 연주 형식보다는 제가 직접 찾아가서 연주하거나 야외에서의 버스킹 하는 걸 좀 더 선호해요.

 

해금을 알고, 좋아하게 되고, 직접 배우기도 하는 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저도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다 보니 더 행복하기도 하고요.



                       ▲ 정겨운(왼쪽)씨는 2017년 9월 한국 천주교 230주년 기념 로마 전시회에서 국악공연을 했다.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탈렌트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제 연주를 듣고 위로와 힘을 얻었다고 해주시는 고마운 분들이 계시는데요. 그럴 때마다 이건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하셨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의 음악이 다른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가만히 토닥여줄 수 있었다는 것은 제가 감히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것 같아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요즘같이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추구하기 어렵지만 ‘꾸준함’, ‘성실함’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저는 나약하고 부족하기 때문에 수없이 흔들리고 넘어지지만 좌절하지 않고 성실하게 앞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해요.

 

하느님께서는 성실하신 분이시라는 믿음만 있으면 인간사의 흥망성쇠는 크게 방해되지 않는 것 같아요.

▶삶에서 가장 큰 시련을 겪을 때는 언제였나요?


제가 제일 좋아하고 또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 해금인데요. 몇 년 전에 꼬리뼈 쪽 신경을 꽉 채울 정도의 큰 낭종이 생겨서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께 ‘바닥에 앉지 마라’는 조언을 들었어요.

 

수술도 불가능해 좌절했어요, 전통음악을 연주할 때는 무조건 바닥에 앉아 연주해야 하기 때문에 해금을 그만두라는 말처럼 들렸어요.

 

요즘은 귀 쪽에도 낭종이 생겨서 두통으로 고생해요. 치료도 안 되고, 나아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어서 답답해요. 진통제를 먹으면서 의자에 앉거나 서서 연주를 계속하고 있어요. 언제 해금을 그만둘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하느님께 모든 것을 의탁해요.

▶삶의 길잡이가 되어준 성경 말씀은?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필리 4,13)라는 말씀을 제일 좋아해요.

 

이 말씀을 떠올리면 정말 모든 일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힘을 얻기도 하고, 또 내가 모든 일을 해낼 수는 없어도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이 내 안에 계시니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위안도 들어요.

▶성서 모임에서는 어떤 것이 제일 기억에 남았나요?

모든 성서공부와 연수가 좋았어요. 하나만 꼽으라면 청년성서모임에서 탈출기 연수 봉사를 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 당시엔 경제적으로도 어렵고 미래가 불안해 음악을 그만두고 다른 길을 찾아볼까 고민하던 시기였거든요.

 

탈출기 봉사지도 사제 허영엽 신부님께서 “하느님께서 주신 탈렌트를 발견해내고 그것을 다른 이를 위해 쓰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며

 

또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다”라는 말씀을 듣고 망치로 한 대 맞은 듯 다시 정신이 번쩍 들어 마음을 다잡았어요. 당시에 신부님을 통해 하느님의 목소리라고 확신이 들었거든요.

▶언제 가장 기도를 열심히 하나요?

연주할 때마다 늘 속으로 기도를 해요. 해금이라는 악기는 워낙 예민하고 정해진 음정이 없어서 왼손의 미세한 힘으로 음정을 조절해야 해요. 명주실을 꼬아서 만든 현이라 온도와 습도에 약해서 조율해놨던 음정과 많이 달라져요.

 

농담으로 ‘해금은 정말 기도가 필요한 악기’라고 하거든요. 저는 ‘듣는 분들이 분심이 들 정도로 안 틀리게만 해주세요’라고 기도를 하기도 해요.

 

보통은 ‘한 음도 허투루 놓치지 않고 그 안에 하느님의 마음을 담아서 연주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면 다른 기도는 몰라도 이 기도는 꼭 들어주시더라고요.

정겨운씨는 작년 말부터 서울 목동성당에 소그룹을 만들어 2주에 한 번씩 기도 모임과 해금 수업을 하고, 거동이 불편해서 문화생활이 어려우신 장애인들께는 직접 찾아가 연주를 하는 등 다양하게 봉사하고 있다.

 

그녀는 나중에 여건이 된다면 공부를 좀 더 해서 음악 치료적인 방법으로 접근하고 싶은 계획이 있다고 한다. 현실적으로 주변에 좀 더 도움이 되는 봉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다.

 

자신의 재능을 너무나 잘 사용하고 있는 그녀는 자신이 필요하다는 곳에는 가능하면 마다치 않고 달려간다. 그녀가 건강하게 오랫동안 기도와 함께하는 해금 연주를 들었으면 좋겠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