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문’이신 그리스도 드러내는 표징
▲ 성당 문은 구원의 문이신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거룩한 표징이다. 사진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5년 12월 8일 자비의 희년 개막일에 ‘거룩한 문’(porta sancta)을 열고 성 베드로 대성전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CNS 자료 사진】 |
문(門)은 다른 공간으로 이끄는 경계이다. 성경에서도 문은 안과 밖, 어제와 오늘, 거룩함과 속됨, 생명과 죽음의 갈림목을 가리키는 뜻으로 사용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경뿐 아니라 단테의 「신곡」과 같은 문학 작품의 영향을 받아 천국과 지옥에도 문이 있다고 상상하며 베드로 사도를 천국의 수문장으로, 루시퍼를 지옥의 우두머리로 소개하며 해학이 가득한 이야기들을 생산해 낸다.
창세기는 ‘야곱의 꿈’을 통해 하늘과 땅의 경계에 문이 있다고 한다.(창세 28,10-22 참조) 잠에서 깨어난 야곱은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이곳은 다름 아닌 하느님의 집이다.
여기가 바로 하늘의 문이로구나”(28,17)라며 머리에 베었던 돌로 기념 기둥으로 세우고 그 꼭대기에 기름을 부었다.
그러면서 그곳을 ‘베텔’이라 했다. 히브리말 ‘베텔’은 우리말로 ‘하느님의 집’이라는 뜻이다.
야곱이 기념 기둥을 세우고 기름을 둘러 축복한 것은 ‘자신과 후손을 보호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기 위한 행동이었다.
요한 묵시록은 새로 완성된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에 12개의 성문이 있다고 한다.
“그 도성은 하느님의 영광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그 광채는 매우 값진 보석 같았고 수정처럼 맑은 벽옥 같았습니다. 그 도성에는 크고 높은 성벽과 열두 성문이 있었습니다.
그 열두 성문에는 열두 천사가 지키고 있는데, 이스라엘 자손들의 열두 지파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동쪽에 성문이 셋, 북쪽에 성문이 셋, 남쪽에 성문이 셋, 서쪽에 성문이 셋 있었습니다.
그 도성의 성벽에는 열두 초석이 있는데, 그 위에는 어린양의 열두 사도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묵시 21,11-14)
주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당신을 ‘구원의 문’이라고 했다.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요한 10,9)
또 주님께서는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승리하는 사람은, 내가 승리한 뒤에 내 아버지의 어좌에 그분과 함께 앉은 것처럼, 내 어좌에 나와 함께 앉게 해 주겠다”라고 계시하셨다.(묵시 3,20-21)
가톨릭교회는 구원의 문이신 주님께 대해 이렇게 고백한다. “사람은 제아무리 거룩한 사람이라도, 모든 사람의 죄를 스스로 짊어지고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자신을 제물로 바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현존하는 하느님 아들의 신적 위격은 모든 사람을 초월하면서 동시에 모든 사람을 품으며, 그리스도를 온 인류의 머리가 되게 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희생은 모든 사람을 위한 제사가 된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에서 나온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주셨기’(1요한 4,10)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셨다.(2코린 5,19)”(「가톨릭교회 교리서」 616-620) 이처럼 그리스도만이 죽음에서, 그리고 사람들을 멸망시키려는 모든 것에서 구해 주신다.
이에 교회도 주님께서 당신 스스로 밝히신 것처럼 주님을 ‘구원의 문’이라고 신앙 고백을 한다.
성당은 전례를 거행하는 거룩한 공간이다. 여타의 공간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무엇보다 이 공간에서 성찬례를 통해 하느님의 현존을 명백하게 드러내기 때문에 성당은 하느님의 집이며 인간의 집으로 불린다.
이 거룩한 공간과 세속을 구분하는 경계가 바로 ‘성당 문’이다. 이 문은 ‘구원의 문이신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거룩한 표징이다.
그래서 미사를 봉헌할 때 성당의 가운데 문으로는 전례 집전자인 성직자들만 출입한다. 그리스도의 대리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회중들은 항상 성당을 드나들 때 가운데 문이 아닌 옆문을 이용한다.
성당에 들어가기 위해선 속된 것을 떨쳐내고 하느님을 경배할 수 있는 정화의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무심히 성당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신앙인으로서 바람직한 자세는 아니다.
‘새 성당 문 축복 기도’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성당에 들어가야 하는지 잘 새겨준다.
“주님 간구하오니, 이 문을 통과하는 당신의 신자들이 당신의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같은 성령 안에서 성부께로 나아가며,
당신 교회에 함께 모여 교회의 신앙을 통하여 신뢰하는 마음으로 사도들의 가르침을 항구히 따르며, 같이 성체성사를 나누어 모시며, 기도에 항구함으로써 나날이 천상 예루살렘 건설에 힘쓰게 하소서.”
성당 문은 항상 열려 있다. 누구든지 구원의 문이신 주님께 청할 수 있고, 우리를 찾아오시는 주님을 마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열린 교회 안에서 모든 이는 하느님의 현존을 경험한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는 소음 가득한 거리나 TV와 컴퓨터가 켜진 집보다 고요함과 침묵이 깔린 성당 안에서 더 쉽게 하느님의 귀에 전달된다.
리길재 기자(가톨릭평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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