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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 (43)1860년 9월 3일 죽림에서 쓴 열아홉 번째 서한②

dariaofs 2022. 11. 24. 00:25

벼랑 끝에 놓인 양들의 가련한 처지 애통해하다

동정 지킨 이들을 능욕하는 일도 벌어져
여성 신자들에게 더욱 가혹한 상처 남겨
은밀히 수행되는 서양 선교사들의 포교
조선인들에게는 음흉한 행동으로 여겨져
프랑스에 대한 경멸이 박해로 이어져

 

박해의 칼날은 납치와 능욕의 위험으로 여성 신자들에게 더욱 가혹한 상처를 남겼다. 사진은 해미순교성지에 설치된 밧줄에 묶인 순교자 조각상.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이것이 저의 마지막 하직 인사가 될 듯합니다.… 이 불쌍하고 가련한 우리 포교지를 여러 신부님들의 끈질긴 염려와 지칠 줄 모르는 애덕에 거듭거듭 맡깁니다.”

경신박해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서있던 당시 최양업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 좌절했다. 포졸들의 포위망이 점점 좁혀오는 긴박한 상황. 언제 붙잡혀 죽임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최양업은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가련한 포교지를 맡아달라”고 당부한다. 자신의 미래를 예견한 듯 하직 인사를 전했던 이 편지는 최양업의 마지막 편지가 됐다.

■ 구원의 피난처 잃은 여성 신자들의 좌절

박해의 칼날은 여성 신자들에게 더욱 가혹한 상처를 남겼다. 동정을 지킨 이들을 능욕하는 일들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스물네 살쯤 된 동정녀와 열일곱, 열여덟인 처녀를 붙잡은 포졸들은 이들을 관가로 데려가지 않고 농락하거나 다른 데 팔아먹으려 했습니다.

 

포졸들의 속셈을 알아차린 세 처녀는 자기들을 놓아달라고 애걸했습니다. 하느님께서 포졸들의 짐승 같은 욕정을 진정시키셔서 무사히 풀려났습니다.”

또한 어린 과부나 처녀들은 납치의 위험에 쉽게 노출됐다.

“남편이 감옥에 갇힌 젊은 부인 한 명과 처녀 한 명도 납치를 당했습니다. 어떤 부모들은 교우 처녀들을 어쩔 수 없이 외인들에게 정혼시켜 버렸습니다.

 

모든 희망을 잃고 이미 외인들과 정혼한 처녀도 많습니다. 납치와 능욕의 위험이 너무나 절박하기 때문입니다.”

정신적, 물질적 수탈로 모든 것을 잃었지만 신앙을 지킨 신자들은 크게 한탄하거나 원통해 하지 않았다. 가슴 속에는 하느님이 함께 했기 때문이다.

 

최양업은 “집에서 쫓겨나면서 모든 것을 빼앗기고 친구들에게 구걸하며 살아가면서도 저 예비신자들은 크게 원통해 하지 않습니다”라며 “저들이 박해의 북새통에 아직 세례받지 못한 것만이 유일한 고통이랍니다”라고 전했다.

■ 프랑스에 대한 적개심, 신자들을 향하다

1836년 모방 신부의 입국 이후, 조선에서 끊임없이 선교하며 신앙의 자유를 위해 힘썼던 서양 선교사들.

 

그들이 조선에서 선교한 역사는 30년을 앞두고 있었지만 여전히 조선인들에게 서양 선교사는 베일에 쌓인 존재였다. 서양선교사에 대한 조선인의 인식을 최양업은 이같이 설명한다.

“조선 조정과 온 백성들은 천주교 신자나 선교사들이 우리 나라를 상대로 무슨 음모나 꾸미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합니다.

 

저들은 ‘자기네 종교가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좋은 종교이고, 또 천주교의 외양은 그럴듯하고 멋있게 보이는데 그 외양 아래 흉측한 음모가 숨어있지 않다면 왜 비밀리에 전도하는가?

 

특히 선교사들이 남의 나라에 몰래 들어와 은밀하게 교리를 전파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추리합니다.”

몰래 입국해 모든 것을 비밀리에 수행하고 있는 서양 선교사들의 태도가 조선 조정과 백성들에게는 음흉한 행동들로 여겨졌던 것이다.

 

이는 프랑스 정부가 합법적으로 나서지 않은 이유가 컸다. 이 때문에 최양업은 신앙의 자유를 위해 프랑스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끊임없이 편지를 통해 피력해 왔다.

프랑스 정부의 행동을 상징하는 것은 프랑스 함대였다. 1846년 세실 함장이 군함을 이끌고 조선 원정을 단행한 이후로 종종 조선에 모습을 드러낸 프랑스 군함.

 

그러나 그들의 목적은 조선에 대한 무력 침략과 식민지화였고, 종교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는 점차 퇴색했다.

이러한 이유로 서양 함선에 대한 경멸과 적개심이 조선 사회에서 확산되고 있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서양 함선들을 무서워했고 그 함선들에 굉장한 무엇이 있는 줄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여러 해 전부터 서양 함선이 자주 나타나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서 이제는 해적으로 여깁니다.

 

조선 백성들은 ‘저 큰 함선들은 틀림없이 해적선이거나 범죄자들의 선박이다. 만일 그 함선들이 합법적인 어떤 국가에 속한다면 어떻게 공공권위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이유 없이 남의 나라에 이렇게 자주 침범할 수 있는가?’라고 수군거립니다.”

프랑스에 대한 적개심이 천주교 신자들로 향한 상황. 벼랑 끝에 놓인 가련한 신자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최양업은 “주여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고, 저희를 재난에서 구원하소서”라는 기도로 편지를 마친다.

민경화 기자(가톨릭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