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영성’ 살아갈 때 우리는 당당해질 수 있습니다
야인으로 가난한 삶 살며
수행 이어간 세례자 요한
내적 가난은 영적 욕구 추구
소유욕·인정 욕구 넘어서
‘마음 부자’로 여유 누리는 것
■ 세례자 요한의 모습을 보면 광야에서 회개하라고 외칠 때부터 마지막까지 당당하게 살아간 것 같아 참 멋있고 부럽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어떻게 당당한 삶을 살 수 있었을까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너희는 주의 길을 닦고 그의 길을 고르게 하여라.’(루카 3,3 참조) 당당한 상남자 세례자 요한에 관한 기록입니다.
하고픈 말을 뒷전에서 수군대지 않고 전면에서 당당하게 외친 요한. 주님의 사촌형이기도 한 요한은 상남자 중의 상남자입니다. 그가 그렇게 당당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가난의 영성입니다. 복음을 보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두르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으며 살았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야인으로서 가난한 삶을 살면서 수행을 한 것입니다.
가난하게 사는 사제·수도자들을 부패한 권력자들은 가장 두려워합니다. 돈과 권력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현실의 부정부패를 당당하게 고발하는 기개가 넘치기 때문입니다.
가난의 영성은 사람들의 마음에 힘을 실어주고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할 말을 다하게 해줍니다. 그래서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 교회에서는 세례자 요한처럼 가난의 영성을 실천할 것을 권유해오고 있습니다.
가난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내적 가난과 외적 가난. 어느 것이 더 중요하냐고 비교하는 것은 무리이지만 굳이 우선순위를 따진다면 내적 가난이 우선입니다.
왜냐하면 외적 가난은 자칫 그것 자체가 자기과시 혹은 자기도취에 빠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다 떨어진 옷을 입고서 도사인 척 한다든가, 가난한 영성가인 양하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경이나 물질적 도움을 받으려고 하는 경우들이 적지 않습니다.
또한 외적 가난으로 자기 내면의 문제를 은폐하려고 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는 근거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내적 가난이 기반이 되지 않은 외적 가난은 허구적이거나 기만적이 되기 쉽기에 내적 가난이 우선시돼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적 가난이란 무엇인가? 가난하게 살자고 외치는 것이 내적 가난이 아닙니다. 또 가난이란 화두에 매달려 사는 것도 내적 가난이 아닙니다. 내적 가난이란 인간의 욕구 중에서 가장 상위욕구인 영적인 욕구를 갈구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구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됩니다. 가장 아래가 생리적 욕구, 소유욕을 기반으로 한 물질적인 욕구입니다. 이 욕구가 부족한 사람들은 무엇인가 가지려고 하고 외적으로 자신을 치장하려고 합니다.
그 위가 정서적 욕구,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구인데 이 단계에 머무는 사람들이 바로 가짜 가난, 외적 가난에 집착해서 누더기 같은 옷을 입고 다니면서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인정과 칭찬을 받고 싶어 합니다.
마지막 상위단계가 영적인 욕구의 단계인데 이 단계의 사람들은 소유 자체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의 집중도를 떨어뜨리기에 소유에 대한 생각을 줄이려고 가진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줍니다.
이처럼 영적 단계에 들어서면 소유욕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안쓰러워 보이고 세례자 요한처럼 당당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난의 영성은 마음의 궁핍함이 아니라 여유로운, 마음이 부자가 되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 루카 3,1-6
그 무렵에 세례자 요한이 나타나 유다 광야에서 이렇게 선포하였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요한은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바로 그 사람이다. 이사야는 이렇게 말하였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요한은 낙타 털로 된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둘렀다. 그의 음식은 메뚜기와 들꿀이었다.
그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요르단 부근 지방의 모든 사람이 그에게 나아가, 자기 죄를 고백하며 요르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
홍성남 마태오 신부(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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