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9~1910, 축일 2월 7일
빈민과 고아 위해 한평생 헌신하며 말보다 삶으로 신앙 증거
가난한 이들에게 꾸준히 관심
신학생 때부터 수녀회 설립 꿈꿔
1878년 세례자 성 요한 수녀회 설
성 알폰소 마리아 푸스코 신부(St. Alfonso Maria Fusco, 1839~1910)는 평생을 한결같은 믿음으로 살며 ‘세례자 성 요한 수녀회’(Sisters of St. John the Baptist, 이하 수녀회)를 창립해 가난한 이들에게 모든 것을 바쳐 일한 성인이다.
1910년 선종 후 106년이 지난 2016년, 푸스코 신부는 그의 영웅적인 덕행으로 모든 사람에게 모범이 된다고 보편교회로부터 인정받으며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성됐다.
오늘을 사는 신자들에게 신앙의 진면모와 순종의 자세를 유산으로 남긴 푸스코 신부의 발자취와 영성을 알아본다.
오랜 기도로 얻은 아이
푸스코 신부는 1839년 3월 23일 이탈리아 앙그리에서 태어났다. 아래로 동생 넷이 있었던 그는 부모의 오랜 기도와 간절한 바람 끝에 태어나 부모에게 큰 기쁨을 안겨 줬다.
아버지 아니엘로 푸스코와 어머니 요세피네 쉬아보네는 1834년 1월 31일 결혼했지만 4년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아 미리 준비해 놓은 아기 침대가 텅 비어 있는 모습을 고통스럽게 바라보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러던 중 1838년, 앙그리 근처 파가니에 있는 구속주회 설립자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의 묘지에 기도하러 갔을 때, 부부는 구속주회 노 수도자인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페코렐리로부터 예언 같은 말을 듣는다.
“아들을 얻을 것이니 이름을 알폰소라고 지으시오. 아들은 사제가 돼서 복자 알폰소(당시 복자)의 삶을 살 것입니다.” 이렇게 1년 뒤 푸스코 신부는 태어나게 된다.
푸스코 신부의 부모는 농부로 일하면서 어릴 적부터 엄격한 신앙 원칙 아래 하느님을 경외하며 자라나 푸스코 신부와 그의 형제들도 신앙 안에서 양육했다.
일찍이 온유하고 다정한 성품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동정을 지녔던 어린 푸스코 신부는 7살에 첫 영성체를 하고 견진성사를 받았다.
11세 때인 1850년, 푸스코 신부는 부모님에게 사제가 되고 싶다는 뜻을 스스로 밝힌 뒤 그해 11월 5일 노체라교구 소신학교에 입학했다. 13년의 긴 신학교 생활을 마치고 1863년 5월 29일 살레르노대교구장 안토니오 살로모네 대주교에 의해 사제로 서품됐다.
푸스코 신부가 세례자 성 요한 수녀회를 설립한 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었다.
그는 열정적인 사제로서 성사 집전에 힘쓰면서, 특히 회개하는 이들에게 아버지의 마음으로 고해성사를 베풀었다.
단순하면서도 통찰력 있는 설교를 통해 선교에 헌신하는 매일의 생활을 하는 가운데 ‘오래된 꿈’을 잊지 않았다. 그 꿈은 수녀회를 설립하는 것이었다.
푸스코 신부의 오래된 꿈은 세례자 성 요한 수녀회 초대 총장이 되는 막달레나 카푸토를 만남으로써 빠르게 추진될 수 있었다. 카푸토 수녀는 수도생활을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지녔던 신자였다.
마침내 1878년 9월 26일 푸스코 신부는 카푸토 수녀 및 젊은 여성들 3명과 앙그리의 한 낡은 집에서 수녀회 설립미사를 봉헌했다.
수녀회에는 청원자들이 찾아왔고 1878년 10월 5일에는 첫 고아가 들어왔다.
수녀회의 기틀이 잡혀갈 때, 고난도 따라왔다. 수녀회는 1880년 7월 관할 주교의 공식 인준을 받고 첫 착복식을 했지만, 이 무렵 푸스코 신부를 반대하는 이들이 푸스코 신부를 시기하고 중상모략했다.
푸스코 신부가 남긴 문헌 기록은 많지 않다. 그는 말보다는 삶으로 그의 신앙을 증거했고 수녀들에게 “우리 예수님을 가까이 따라 성인이 되자”며 “가난과 정결과 순명의 삶을 산다면 하늘에서 별처럼 빛날 것”이라는 말을 반복해서 했다.
푸스코 신부의 영성은 수녀회 설립 목적에서 드러나듯이 가난한 이, 특별히 고아들에 대한 사랑에서 뚜렷이 발견된다. 푸스코 신부는 음식이 부족하거나 아예 없을 때도 고아들에게 만큼은 먹을 것을 주었다.
푸스코 신부에게 교육받은 고아들은 정직하고 깊은 소명의식을 지닌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했다.
푸스코 신부의 선종과 시복시성
수녀회를 설립하고 고아들과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일생을 바친 푸스코 신부는 1910년 2월 5일 밤 갑자기 쓰러졌다.
그는 2월 6일 아침 그의 주변에 서서 울고 있는 수녀들을 떨리는 손으로 축복하며 “주님, 감사드립니다. 저는 쓸모없는 종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수녀회의 오랜 노력으로 푸스코 신부는 1976년 2월 12일 성 바오로 6세 교황에 의해 가경자로 선포됐고, 2001년 10월 7일에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주례한 시복식을 통해 복자 반열에 올랐다.
푸스코 신부의 시복에는 말라리아에 걸려 의학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잠비아 소년 제솜 기즈마가 치유된 사례가 기적으로 인정됐다.
푸스코 신부의 시성에 요구되는 기적은 수녀회 소속 마리아 덜치스 미니엘로 수녀에게 일어났다.
박지순 기자(가톨릭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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