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인들 곁에서 43년… ‘영원한 친구’ 유의배 신부
한센인을 위해 43년간 봉사한 공로로 지난 2월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은 유의배(루이스 마리아 우리베, 작은형제회) 신부. 그는 김대중 대통령 표창장, 아산사회복지재단 사회복지상, 이태석 봉사상, 적십자 인도장 금상 등 수많은 상을 받았다.
하지만 유 신부 사무실 진열장에는 상과 메달 대신 한센인들 사진으로 가득 차 있다. 그에게 한센인은 사목 대상이라기보다 가족이고 형제였다. 하느님의 자비 주일을 맞아 푸른 눈의 영원한 한센인 친구, 유의배 신부를 경상남도 산청 성심원에서 만났다.
영원한 한센인의 친구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에요!”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유 신부의 목소리가 성심원을 가득 메운다. 만나는 사람마다 반갑게 인사하며 포옹하고 어루만진다. 성심원 식구들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유 신부 품에 안긴다.
“신부님은 그냥 성인이세요. 저희는 신부님 발끝도 못 따라갑니다.” 유 신부를 보며 성심원 직원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다. 정작 그는 “그저 함께 사는 것뿐인데 민망하다”고 겸손함을 내비쳤다.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가 운영하는 경상남도 산청에 자리한 성심원. 국내에서는 소록도 다음으로 한센인이 많이 사는 복지시설이다. ‘나병’, ‘문둥병’으로 불렸던 한센병은 일그러진 외모와 전염병이라는 오해로 강을 건너야만 갈 수 있는, 마을과 분리된 산골에 자리 잡았다.
유 신부가 성심원 소임을 맡을 당시 1980년만 해도 한센인이 550명이나 살고 있었다. 계속 인원이 늘어나다 지금은 대부분 선종해 60여 명만이 가정사에서 살고 있다. 이후 중증 장애인을 받기 시작해 시설은 ‘성심인애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유 신부는 아침 일찍 성심원을 돌며 인사하고, 잠들기 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수많은 한센인의 선종을 지켜봐 온 습관이 남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국가에서 금하고 있어 못 하지만 한센인이 선종했을 때 직접 염을 하기도 했다.
유 신부의 손길을 거쳐 간 임종자들은 현재 성심원 내 납골묘원에 안치돼 있다. 그는 아침 인사 후 묘원을 방문해 한센인들과 함께했던 시간을 회상했다. 그는 말 그대로 한센인들의 영원한 친구였다.
푸른 눈의 프란치스칸
유 신부의 고향은 스페인 소도시 게르니카이다. 피카소의 역작 ‘게르니카’의 배경이 된 곳으로 내전의 아픔을 겪은 곳이기도 하다.
유 신부는 전쟁의 잔혹함을 부모에게서 들었고, 어린시절 우연히 라디오로 6ㆍ25 전쟁을 접하게 됐다. 그는 “그때 막연히 한국으로 선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프란치스코 재속3회원이었던 부모와 작은형제회 신부였던 작은아버지 영향으로 소신학교 졸업 후 한국 나이로 17세에 작은형제회에 입회했다.
“고향 앞에 바닷가가 있었는데 거기에 기찻길이 생겼어요. 기차 타는 걸 무척 좋아했죠. 부모님이 수도회 들어가면 기차를 공짜로 탈 수 있다고 하더군요.”
농담 삼아 얘기했지만, 그에게 수도 성소는 이처럼 자연스러운 인생의 한 부분이었다. 유 신부는 “하느님 목소리를 들은 적도 없고, 어떤 계시를 받은 것도 아니다”라며 “돌아보니 하느님 이끄심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는 어린 나이부터 자연스레 프란치스칸 영성을 몸에 익혔다. 25살에 사제품을 받고는 온 세상에 복음을 전했던 프란치스코를 따라 선교사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전쟁의 아픔을 겪은 한국을 선교지로 정한 그는 본인의 요청과 장상의 허락으로 마침내 1976년 한국 땅을 밟았다.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수도원에 머물며 한국어를 배웠고 몇몇 소임을 거친 후 1980년 잠시 사목을 도와달라는 요청에 성심원으로 내려갔다.
“잠시라고 했는데 40년이 넘었네요.” 유 신부는 성심원에 처음 왔을 때부터 이질감이 전혀 없었다고 했다. 한센인을 통해 하느님을 체험한 프란치스코 성인을 따르고자 하는 열망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명 한 명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몰라요. 단 한 번도 그들 외모 때문에 거부감이 들었던 적이 없습니다.”
시행착오도 많았다. 초기에는 경상도 사투리를 알아듣지 못해 대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럼에도 그는 “굳이 대화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며 “표정과 몸짓을 통해 같이 놀고 기도하고 식사하면서 정을 쌓아갔다”고 말했다.
“하느님 사랑과 자비도 언어로만 전달되는 게 아니듯,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큰 위로를 줄 수 있습니다.”
인내하고 사랑하며
“수도생활은 기분에 따라 좌지우지돼서는 안 됩니다. 신앙 역시 인내가 필요하지요. 저도 지금껏 하느님을 본 적도 그분 목소리를 들은 적도 없습니다. 희망하며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걸 한센인들에게서 배웠습니다.”
유 신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지는 법을 한센인에게서 배웠다고 전했다. 평생 상처를 안고 살지만, 희망을 간직하며 기쁘게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서다.
그는 “인사를 하면 연신 ‘감사하다’고 하는데, 오히려 내가 그들에게서 위로를 받을 때가 많다”고 말했다. 특히 한센인 자녀들의 순수함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일그러진 부모 손을 잡고 자랑스럽게 ‘우리 엄마’라고 말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가족의 참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한센인은 나에게 가족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더 끈끈해지는 걸 느낍니다. 앞을 볼 수 없는 이들과는 촉감으로, 말하고 들을 수 없는 이들과는 표정으로 하나가 됩니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도 선교사로서 사제로서 수도자로서 한센인들 곁에서 하느님 뜻에 순명하며 살 것을 약속했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하느님은 절대 직접 알려주시지 않잖아요. 그저 흘러가는 대로 순명하며 살아가는 것이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하느님이 부르시는 날까지 그렇게 인내하고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박민규 기자(가톨릭평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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