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을 찾 아 서

[서종빈 평화칼럼] 참모가 대통령을 만든다

dariaofs 2023. 9. 17. 00:21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의 국정 운영은 대부분 만기친람(萬機親覽) 형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대통령이 모든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대통령이 국소적인 일에 얽매이다 보면 큰 걸 놓치고 일은 열심히 하는데 결국엔 남는 게 없게 된다.

역사적으로 만기친람의 대표 군주인 청나라 황제 옹정제는 매일 올라오는 수백 건의 보고서에 일일이 빨간 글씨로 지적 사항을 써서 내려보냈다. 주비유지(朱批諭旨)이다.

 

또 비밀경찰을 동원해 신하들을 끊임없이 감시했다. 옥좌 뒤에 “군주 노릇 하기 어렵다”라고 써서 걸어 놓았다.

 

그러나 신하들은 “신하 노릇도 쉽지 않다”고 푸념했다. 결국, 옹정제는 과로 끝에 56세로 세상을 떠났다. 열심히 일했지만 오래 살지 못했고 역대 군주보다 업적도 한참 뒤진다.

대통령이 국정을 모두 일일이 챙길 수는 없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대통령은 국정의 최종 결재권자이며 최고 책임자다. 따라서 총리, 장관, 참모와 비서의 무능과 실정, 무책임에 대해서는 명확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역대 대통령들이 실패하고 무능한 대통령으로 전락한 이유를 보면 대부분 아첨하고 눈치만 보는 참모들에게 둘러싸여 그들의 말만 들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참모에게 책임을 잘 묻지 않는다. 10ㆍ29 참사, 해병대 고 채수근 상병 사망 사건에 대한 외압 의혹,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부실 운영 논란에도 대통령은 책임자 문책에 인색했다.

 

진상 규명에 소홀하고 책임도 묻지 않으니 참모들은 ‘남 탓 공방’만 하면서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린다.

지난해 8월. 윤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으로 참모진에 대한 문책론이 불거지자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이 대통령에게 이렇게 건의했다. “참모들은 바둑알이다. 필요할 때 버릴 줄 아는 기자쟁선(棄子爭先)을 하셔야 한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참모진 교체 없이 대통령 비서실의 기능을 추가하고 보강하는 데 그쳤다. 정권 출범 초창기여서 업무 성과를 펼칠 시간이 없었다는 대통령의 말에 국민들은 어느 정도 공감했다.

그러나 집권 1년 3개월을 넘어서고 있지만 올곧은 참모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내년 4월 총선 공천을 받기 위해 대통령에게 눈도장을 찍으려는 충성심 경쟁자만 보인다.

그렇다면 지금 윤 대통령에게는 어떤 참모가 필요할까? 대통령을 보좌하는 본연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할 참모다.

 

사안에 따라 대통령에게 사과와 해명을 적극적으로 권유하고 국민의 여론에 반하는 일방적인 정책에 대해서는 “이러시면 아니 되옵니다”라고 충언할 수 있는 참모가 있어야 한다.

가톨릭교회에는 이른바 ‘악마의 변호인’으로 불리는 직책이 있다. 고의로 반대 의견을 제기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엄격하기로 유명한 가톨릭교회의 시복시성 재판 과정에서 후보자에 대한 의문점을 찾아내고 안건의 약점을 밝히는 사람이다.

 

병자호란 당시 전세가 기울자 주화파로 실리를 택한 최명길은 항복문서를 만들어 인조의 재가를 받았지만, 척화파로 명분을 내세운 김상헌이 이 문서를 찢자 최명길은 이렇게 말했다.

 

“조정에는 이 문서를 찢는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또한 나 같은 사람도 없어서는 안 된다.”

지금 윤 대통령에게는 단소리보다는 쓴소리를 마다치 않는 참모가 필요하다. 참모는 대통령의 국정 방향과 의지를 받들어 이를 보좌하고 실행하는 사람이다.

 

대통령의 의중을 확인하지 않고 지레짐작해 자신이 마치 행위의 주체인 양 자신의 언어로 말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 대통령은 국민은 포용하되 참모에겐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 잘못된 행위에 대해 성찰의 기회는 주되, 반복되는 실책과 미성과자에 대해선 단호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래야 관료사회의 나태와 무사안일 풍조에 경종을 울리고 공직 기강이 확립돼 성과도 내고 국민의 신뢰도 함께 받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