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 천호산(天壺山)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천호(天呼) 성지는
그 이름처럼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백성들이 교우촌을 이루고 170여 년 동안 ‘하느님을 부르며’ 살아온 신앙의 터전이다.
천호 성지는 호남 지역이 자랑하는 대표적 사적지로
병인박해의 모진 회오리가 불어 닥치던 1866년 12월 13일(음력)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한 여섯 성인 중 성 이명서(베드로), 성 손선지(베드로),
성 정문호(바르톨로메오), 성 한재권(요셉)과 같은 해 8월 28일(음력)
충청도 공주에서 순교한 김영오(아우구스티노), 1868년 여산에서 순교한 열 명의 무명 순교자들이 묻혀 있다.
그 밖에도 1868년 여산에서 순교한 많은 순교자들이 이곳 천호산에 종적을 감춘 채 묻혀 있다.
전주에서 북서쪽으로 불과 30킬로미터 남짓한 천호 성지는 인근의 숲정이, 여산, 나바위 등
호남 지역의 유명한 성지와 사적지를 지척에 두고 있어 순례 길에 이들 성지들을 함께 둘러볼 수도 있다.
게다가 1시간 거리 안에 대둔산, 모악산, 마이산, 계룡산, 대아리 호수, 옥정 호수 등
빼어난 명산과 경관이 수려한 호수들이 자리하고 있어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데에도 부족함이 없다.
천호 성지까지 승용차를 이용하려면
호남 고속도로 익산 인터체인지에서 천호 성지로 가는 방법이 가장 빠르고 손쉬운 길이다.
익산 인터체인지에서 성지까지는 대략 10킬로미터 정도로 약 10분 정도가 소요된다.
천호산 기슭에 들어서면 먼저 아담하게 자리 잡은 천호 공소와 교우촌 천호 마을이 반긴다.
천호 마을은 박해 시대 때 ‘다리실(月谷)’, ‘용추네’로 불리던 곳으로
교우촌이 형성되면서부터 후대에 행정명이 천호로 변했다.
교우촌이 형성된 것은 1839년경 기해박해를 전후해 주로
충청도 지방의 신자들이 이곳 산골짜기로 숨어 들어와 신앙 공동체를 이룸으로써 비롯된 것으로 전해진다.
아직도 천호산 깊은 골짜기에 남아 있는 한 평 남짓한 밭자리와 가을엔 도토리묵을 쑤어 먹는 식생활,
밤마다 같이 모여 두서너 시간씩 바치는 만과(저녁 기도)를 통해 옛 신자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 천호 마을은 자녀들에게 박해 시대
교우촌의 입지적 조건과 특성을 실제로 보여 주는 교육장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한 곳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1984년 설립되어 호남 지역 교회사 연구의 산실인
‘호남 교회사연구소’가 자리 잡고 있어 호남 교회의 역사에 관해 상세히 공부하고 돌아올 수도 있다.
마을을 들어서기 전 입구 우측으로 1킬로미터 정도 산길을 차로 올라가면 드디어 ‘천호 성지’에 이른다.
본래 순교자들의 묘가 있는 땅과 그 주변의 산은 조선시대 고흥 유씨가 하사받은 땅이었다.
이 때문에 그곳에 사는 신자들은 언제든지 쫓겨날 처지였고, 순교자들의 무덤도 이장해야 할 형편이었다.
그런데 1909년 뜻하지 않게 되재 본당(현 고산 본당)의
베르몽(Bermond) 신부와 12명의 신자들이 45만 평 정도의 산을 매입할 수 있어
신자들의 생활 터전을 마련하고 순교자들의 묘소를 보존할 수 있었다.
그 후 1941년경 베르몽 신부와 신자들은 45만 평 중에서 순교자들의 묘와
종적을 알 수 없는 순교자들이 묻혀 있을 곳으로 예상되는 땅 23만 평을 교회에 봉헌하여 비로소 성지로 조성할 수 있게 되었다.
1983년까지만 해도 천호 성지는 제대로 조성되지 않았으며, 천호 공소와 고산 본당 신자들에 의해 보존 관리되었다.
게다가 손선지의 묘 외에 다른 순교자들의 묘는 구체적으로 확인도 되지 않았었다.
1983년 5월 호남 교회사연구소 주관으로 순교자들의 유해를 발굴하여
12월 18일 복자 정문호, 한재권, 손선지와 10명의 무명 순교자 천묘식을 거행하였다.
전주교구는 순교 복자들에 대한 시성식이 끝난 1984년 10월부터
천호 성지 개발에 본격적으로 착수하여
1985년 11월 30일 자치 교구 설정 50주년 기념 선포일에 맞추어 새롭게 단장한 순교자 묘역을 축성하였다.
또한 1988년 9월 30일 고산 본당 수청리 공소와 석장리 공소 중간 길가에 있던
병인박해 순교자 김영오의 묘를 천호 성지로 이장하였고,
그 다음날인 10월 1일 이명서 성인의 유해 일부를 절두산에서 가져와 순교자 묘역에 모셨다.
1992년 3월 31일 성모상을 제작하여 성지에 설치하였고,
1993년 9월 15일에는 이춘만 조각가의 십자가의 길 14처를 제작하여 설치하였다.
또한 자치 교구 설정 50주년을 맞아 선조들의 순교 정신을 이어받기 위한 신앙의 수련장으로 피정의 집을 1987년 8월 31일 완공하였다.
그리고 2006년 5월 20일 기존의 협소한 피정의 집 성당을 대신할 새 성당 신축 기공식을 갖고
1년 후인 2007년 5월 19일 천호 부활성당을 완공해 봉헌식을 거행했다.
연면적 521평, 지하 1층, 지상 1층의 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지하 1층은 성인과 순교자들의 유해를 모시고
산 이와 죽은 이들이 통공하는 봉안경당으로 마련했고, 지상 1층은 500여 석의 성당으로 건축되었다.
이어 2008년 5월 17일에는 경당과 사제관 두 채로 이루어진
천호 공소 새 경당을 전통 한옥 구조로 지어 축복식을 가졌다.
천호 공소는 박해가 끝난 후 1913년 기와로 된 공소 강당과 사제 숙소를 마련한데 이어
1953년 공소 건물을 다시 지었으나, 세월이 흘러 건물이 낡아 사용할 수 없게 되자 2005년 공소 건물을 철거한 후 새 경당을 지었다.
천호 성지가 갖는 또 하나의 장점은 최적의 도보 순례 코스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성지에 안장돼 있는 선조들이 순교한 여산 성지에서 천호 성지까지 8킬로미터 남짓한 코스가 그 하나이다.
또 천호 성지에서 천호산 자락을 타고 문수사 옆길로 해서 여산 성지로 넘어가는 코스도 색다른 맛을 갖는다.
그리고 2009년 10월 31일 천주교를 비롯해 불교, 원불교, 개신교 등
전북 지역 4대 종교 성지를 걸어서 여행할 수 있는 ‘아름다운 순례길’도 마련되었다.
천주교의 나바위 성지와 천호 성지, 불교의 송광사와 미륵사지 석탑,
원불교의 만덕산과 원불교 수련원, 개신교의 서문 교회 등 전주와 완주, 익산 지역에 있는 4대 종교의 성지 180km를 연결한 것이다.
아름다운 순례길은 문화재청으로부터 ‘이야기가 있는 문화유산 길’로 선정되기도 했다.
천호 성지 피정의 집에서는 다양한 위탁 피정과
순례자들을 위한 영성 피정을 연중 실시하고 있어 잠시 세파를 떠나 고요함을 맛볼 수 있다.
특히 숲 속에 위치한 특성을 살려 자연 친화적인 순례 장소로도 인기가 높다.
개인이나 소규모의 피정을 원하는 순례자를 위해서는 피정의 집 부속으로
성지 내에 김성첨 토마스 순교자의 5대손인 김경애(골룸바)가 봉헌한 ‘토마스 쉼터’가 있어 보다 다양한 피정이 가능해졌다.
[출처 : 주평국, 하늘에서 땅 끝까지 - 향내나는 그분들의 발자국을 따라서, 가톨릭출판사, 1996, 내용 일부 수정 및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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