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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영일기] 참호 안에는 무신론자가 없다

dariaofs 2023. 10. 12. 00:15
2학년 생도 시절 하기군사훈련을 받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흐르는 여름, 저를 포함한 모든 교육생은 이미 저 멀리 보이는 고지를 여러 번 오르고 내려오기를 반복한 탓에 피로와 땀에 젖어 있었습니다.
 
당일 훈련을 분석해서 검토하는 사후검토(After Action Review, AAR) 시간을 주관하시던 교관님은 생도들이 고쳐야 할 전술적 과오를 짚어 주시고 나서 남은 시간에 군생활 도중 만날 어려움을 설명해 주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생도들은 군생활을 해 나가면서 수많은 난관을 만날 것이다. 그러면 그럴 때마다 주위 선배들의 도움을 구하라. 그래도 해결이 안 되면 교관이 말한다. 하느님을 믿어라!”

벌써 20년 전의 일이지만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하느님께 의지하라’는 그 교관님과 그분의 말씀이 잊히지 않아 제가 하느님을 믿게 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참호 안에는 무신론자가 없다’(There are no atheists in foxholes)라는 말이 있습니다.
 
전쟁이나 감당하기 힘든 두려움과 극도의 스트레스를 겪는 등 극한에 내몰리면 한없이 나약할 수밖에 없는 인간에 대해 초점을 맞춘 이 유명한 문장을 누가 처음 사용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일각에서는 1942년 미국이 일본과 필리핀 바탄반도에서 전투하던 중 군종장교였던 윌리엄 커밍스가 말했다는 설, 커밍스와 같은 부대에서 근무하던 윌리엄 케이시 중령이 했다는 설 등이 있지만 확실치는 않습니다.
 
어쨌든 이 유명한 문장은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 등 유명인의 연설에서도 나올 만큼 널리 인용되고 있는 어구입니다.

저는 중요한 일을 앞두고 마음속으로 기도를 한 후 일을 시작하고, 끝나고 나서 간단한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교우들이라면 뜻하지 않는 일이나 내 힘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일을 만나면 저처럼 ‘하느님, 도와주세요’라고 하느님께 의지하실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을 만나면 초월적 존재나 신을 찾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 순간 인간의 나약함을 절감할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코로나19에 대항한 전쟁, 근무, 학업, 자녀 진학 문제 등 일터며 가정 구분 없이 모두 자신만의 고민과 함께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우크라이나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 모두 전장에서 같은 분께 기도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누군가 저에게 감당하기 힘든 일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해보고 나머지는 20년 전 교관님이 제게 말씀하신 것처럼 ‘하느님께 의지하라’고 답해 주겠습니다.

 

 

육군본부 문상준(가브리엘) 중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