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 나라에서 형제로 거듭나기 위한 ‘화해의 여정’ 이어오다
한일 양국 간 역사 인식 간극 좁혀
그리스도인으로 일치하기 위한 노력
신자들 간 교류로도 이어져 큰 의미
성소 부족 어려움 겪는 일본교회에
한국교회 사제 파견은 ‘화해의 징표’
제25회 한일주교교류모임이 11월 14~16일 일본 도쿄대교구에서 열렸다. 2018년 이후 5년 만에 열린 이번 행사에서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마티아) 주교를 비롯한 한국 주교 23명과 일본 주교회의 의장 기쿠치 이사오 대주교 등 일본 주교 16명은 ‘한일주교교류모임 25주년을 맞아: 어제와 오늘’을 대주제로 워크숍과 심포지엄을 열고 기념미사를 봉헌했다.
2박3일간 열린 한일주교교류모임을 화보로 전한다. 아울러 1996년 첫 모임부터 참석한 한국의 강우일 주교(베드로·전 제주교구장)와 1999년 5회 모임부터 참석해 온 일본 나고야교구장 마쓰우라 고로 주교가 14일 워크숍에서 발표한 내용을 토대로, 사반세기 동안 이어져 온 한일주교교류모임(이하 교류모임)의 역사와 성과를 살펴본다.
양국 ‘응어리’ 뛰어넘어 하나 된 그리스도인으로 더 가깝게
1995년 1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제6차 정기총회에 참석한 고(故) 이문희(바울로) 대주교와 고(故) 하마오 후미오 추기경(당시 주교)의 만남에서 한일 주교단 교류의 씨앗이 뿌려졌다.
두 주교는 가장 가까운 한일 교회가 정치적, 민족적 응어리를 뛰어넘어 그리스도인으로 더 가깝게 만날 필요성과 의향을 공유했고, 양국 주교 간 대화를 시작해보자고 제안했다.
첫 모임은 이듬해 곧바로 성사됐다. 1996년 일본 도쿄에서 한국 주교 3명과 일본 주교 2명이 만나 ‘한·일 교과서 문제 간담회’를 연 것이 한일주교교류모임의 역사적인 시작이다.
1996년 12월에는 서울에서 두 번째 모임이 열렸다. 이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만남이 불가능해지기 직전인 2018년까지 매년 11월 둘째 주간 양국 주교들은 정례 만남을 이어갔다.
강우일 주교는 “처음에는 양국 간 역사 인식의 간극을 좁히려는 의도로 출발했으나 만남을 거듭하고 주교들 간 인간적인 친분과 이해가 깊어지며 주교들만의 교류가 아니라 양국 교회의 더 폭넓은 교류로 확대돼 갔다”고 전했다.
강 주교의 언급처럼 교류모임 주제는 역사 문제뿐만 아니라 선교사목 문제, 교회의 소명과 자살 문제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됐다.
개최지도 서울과 도쿄라는 수도 교구에서 벗어나 각 지역 교구로 확대됐다. 마쓰우라 고로 주교는 “제6회 교류모임부터 지역 교구를 방문하고 그곳의 문화와 사람들의 생활까지 접할 수 있어 한일을 ‘가장 가까운 나라’로 만들어 가는 풍요로운 기회가 됐다”고 전했다.
교류모임의 형태도 회를 거듭할수록 발전해 갔다. 서울대교구와 수원교구 소공동체 모임을 탐방한 제8회 교류모임에서는 신자들도 처음 미사를 함께 봉헌했다.
한국교회의 파견 사제는 ‘화해의 징표’이자 양국 간 ‘가교’
고(故) 경갑룡 주교(전 대전교구장)의 제안으로 시작된 한국교회의 사제(신학생) 파견도 교류모임이 맺은 대표적인 성과다.
강 주교는 “이때 2명의 대전교구 신학생이 후쿠오카 신학교에서 2년의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사제로 서품돼 오이타교구에서 사제생활을 시작했다”며 “이를 계기로 양국의 다른 교구에서도 성소의 나눔이 차츰 증가했으며, 이 에피소드는 교류모임 25년 역사가 맺은 하나의 작은 열매”라고 전했다.
마쓰우라 고로 주교도 “경 주교님께서 일본의 상황을 존중해 주시고 무엇보다도 사제 파견을 ‘화해의 징표’로 제안해 주셨다는 사실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올해 1월 진행한 수품 5년 전후 사제 양성 과정에 참가한 22명의 사제 중 3분의 1인 7명이 한국인 사제였으며, 함께 일한다는 것을 통해 각자가 깨닫고 배우면서 양국의 가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전했다.
“주교들은 화해의 여정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한일 양국의 주교들은 과거의 아픈 기억을 딛고 미래를 향한 화해와 일치의 여정을 시작할 용기를 낼 수 있었다.”(강우일 주교, 한일주교교류모임 25주년 기념 자료집 중)
용기를 내어 시작한 교류모임은 사반세기 동안 친교와 일치의 여정으로 자리매김해왔다. 한일 주교들은 이를 발판으로 화해의 길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야말로 분열 상태에 있는 세계 속에서 화해의 길을, ‘인류 일치의 표징이자 도구’라는 교회의 사명을 다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마쓰우라 고로 주교는 “양국 간 정치적, 사회적 문제가 일어나고 반드시 역사 문제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화해’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그때야말로 한일 양국 주교들은 ‘화해의 여정을 계속하고 있음’을 교회 안팎에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이승환 기자(가톨릭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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