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기쁨 배우는 학생들 “편견 껍질 깨고 희망 날개 펼쳐요”
장애 극복·사회 적응 목표로
기본 생활 습관 형성 돕고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 도입
역도 등 다양한 체육활동
사회성·도전의식 증진 효과
얼마 전, 임신한 아기가 다운증후군 진단을 받자 34주된 태아를 제왕절개하고 방치해 숨지게 한 사건이 보도됐다. 친모는 “아이가 살면서 주변에서 받을 고통과 평생 책임지고 지켜야 하는 게 자신이 없었다”고 밝혔다.
“장애인이 있는 가정은 비극과 불행만 존재할 뿐”이라는 댓글들은 우리 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반영하고 있었다.
무거운 마음을 뒤로 하고 방문한 정서장애 특수학교인 청주성신학교(교장 오경옥 스텔라 수녀). 자리에서 차분히 그림을 그리고,
친구와 자동차 놀이를 하고, 걸그룹 춤을 빼어나게 따라 추고, 처음 보는 손님에게 환하게 미소지으며 손을 흔드는 학생들을 그곳에서 만났다.
소통하지 못하고 자기 안에 갇혀 있었던 학생들은 교사에게 눈을 맞추고 웃는 법을 배우며 삶의 아름다움을 알게 된 것이다.
정서장애 학생들이 모여 있는 학교의 풍경은 비극이 아닌 희극이었다. 청주성신학교에서 천국이 떠오른 이유는 교사와 학생들의 얼굴에서 진정한 행복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모두가 존엄한 그리스도의 정신 깃들다
정서장애는 타인에 대한 반응과 감정이 결핍돼 있으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형성을 하는 것이 어려운 장애를 말한다. 불러도 반응이 없거나, 눈맞춤이나 미소, 포옹 같은 감정을 표현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잦은 도전행동도 문제가 된다. 자신을 때리거나 소리를 지르고, 우는 등 파괴적인 양상을 보이기 때문에 보호자는 도전행동이 발생하는 양상을 파악해 이를 줄일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교육해야 한다.
청주성신학교는 자폐성 장애를 비롯한 지체장애, 지적장애, 정서행동장애, 의사소통장애 등 다양한 정서장애를 갖고 있는 학생 222명을 교육하고 있다.
1988년 설립된 학교는 2001년부터 청주교구가 운영을 맡고 있다. 모든 인간을 존엄한 존재로 창조하신 그리스도의 정신을 바탕으로 장애를 극복하고 사회에 적응하는 사람으로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아울러 함께 성장하고, 나누는 사람으로 키워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학생들 대부분은 자폐성 장애나 지적장애를 갖고 있다. 여러 장애가 함께 있는 중도·중복 학생들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변화에 취약한 정서장애 학생들에게 효과적인 교육방법은 일관되게 지도하는 것이다.
따라서 청주성신학교는 기본 일상생활 습관 형성을 돕는 지속적인 교육과 의사소통 능력 신장을 위한 개별화 교육 프로그램에 주력하고 있다. 아울러 사회 적응을 위해 다양한 체험활동을 실시하고 신체 활동을 활성화할 수 있는 교육도 펼치고 있다.
■ 사회에 적응하는 사람
청주성신학교의 점심시간, 학생들은 식사 후 체육관에서 걷거나 활동실에서 배드민턴을 치고 역도실에서 역도 연습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쉬는 시간에 교사가 학생들을 돌봐야 한다고 정해진 규칙은 없지만 학생들 옆에는 줄곧 교사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식당에 가지 않으려는 학생을 위해 교실로 밥을 가져와 함께 먹거나 식판 앞에 엎드린 학생에게 밥 한 숟갈을 내미는 교사의 마음은 사랑이었다.
교사가 없는 세상에서 홀로 서기 위해 규칙과 생활습관을 지속적으로 교육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해를 하거나 밥을 입에도 대지 않는 학생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가도 꾸준한 노력으로 어느새 혼자 밥을 먹거나 선생님의 눈을 보며 미소 짓는 학생들을 보면 그간의 노고가 눈 녹듯 사라진다는 게 청주성신학교 교사들의 설명이다.
박선주 교감은 “밥을 전혀 안 먹던 아이가 꾸준히 돌봐주고 노력해서 스스로 밥 한 숟갈을 떠먹던 순간이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며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을 어렵지만 함께 노력해서 해냈을 때의 보람은 정말로 값지다”라고 말했다.
학생들의 생활습관이 점차 나아질 수 있었던 이유는 학교의 꿈두레 행동 지도 덕분이다.
상·하반기로 나눠 기본생활습관과 학교규칙을 지도하고 있는 청주성신학교는 인사하기, 바르게 앉기, 차례지키기 등 질서와 청결과 관련된 행동을 꾸준히 교육했다.
아울러 이를 잘 수행하면 도장이나 스티커를 지급해 행동 실천 의식을 고취했다. 그 결과 복도를 뛰어다니거나 수업시간에 자리를 이탈하는 학생이 크게 줄었다.
■ 함께 성장하는 사람
체육활동도 정서장애 학생들의 몸과 마음을 성장시키는 중요한 교육이다. 청주성신학교는 걷기, 자전거, 인라인스케이트, 역도, 육상을 비롯해 올해부터는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야구를 변형시킨 티볼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역도부는 제16회 전국장애학생체육대회에서 역도종목 종합 1위를 2명이나 배출했다.
청주성신학교 학생들에게 역도는 단순히 무거운 바벨을 드는 기술을 배우는 시간이 아니다. 규칙을 이해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방법을 배우며 사회로 나갈 수 있는 토대를 다지는 시간이다.
역도부 강어진(13)군은 “역도를 하면서 대회에 나가서 메달도 따고 상도 타서 내가 무언가 잘한다는 성취감을 얻을 수 있었다”며 “사실 역도하면서 가장 좋은 것은 역도실에서 친구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평일에 체육지도를 하는 김재식 교사는 주말에는 학생들과 전국으로 자전거 종주를 나선다.
코스는 무려 40㎞가량. 학생들의 신체활동과 도전의식을 높이고 또래와 함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성을 증진하고자 시작한 자전거 국토종주는 6년차를 맞았다.
김재식 교사는 “정서장애 학생들은 몸이 아프거나 힘들어도 표현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신체활동의 한계를 가늠할 수 없어 지도에 어려움이 있다”라며
“그래서 목표를 작게 잡거나 불가능하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편견을 깨고 자신의 한계를 이겨내고 있는 학생들을 볼 때면 너무 기특하다”고 말했다.
교사들에게 보람된 순간을 묻자 “학생이 커피 한 잔을 건넸을 때”, “밥을 안 먹던 학생이 스스로 밥 한 숟갈을 떠먹을 때”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누군가에게 당연할 수 있는 일들을 어렵지만 교사의 손을 잡고 천천히 이뤄나가고 있는 청주성신학교 학생들은 ‘희망’이라는 단어를 눈앞에서 보여주고 있었다. 그들이 보여준 희망은 학교 공동체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교장 오경옥 수녀는 “청주성신학교는 세상의 편견 때문에 외로울 수 있는 정서장애 아이들을 외롭지 않게 돌보려는 교회의 관심에서 시작됐다”며 “사랑스러운 학생들이 사회에서도 사랑을 나누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민경화 기자(가톨릭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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