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4년 1월 2일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

dariaofs 2024. 1. 2. 01:10

사진설명: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9-28


19 요한의 증언은 이러하다.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었을 때,

 

20 요한은 서슴지 않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하고 고백한 것이다.


21 그들이 “그러면 누구란 말이오? 엘리야요?” 하고 묻자, 요한은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그 예언자요?” 하고 물어도 다시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2 그래서 그들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우리가 대답을 해야 하오.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오?”


23 요한이 말하였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24 그들은 바리사이들이 보낸 사람들이었다.


25 이들이 요한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


26 그러자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27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28 이는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어떤 작가의 인터뷰 내용을 보다가 참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작가는 글을 쓸 때 쾅쾅 울리는 시끄러운 옛날 노래를 듣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작가들은 어떤지 궁금해서 검색해 보았습니다.

 

빗소리를 들으면 글이 잘 써져서 빗소리 ASMR을 듣는다는 분, 클래식을 듣는다는 분, 벌거벗은 채로 글을 쓴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거의 조용한 곳에서 글을 쓰지만(주로 제 방입니다), 잘 써지지 않을 때는 백색 소음이 있다는 카페를 이용하곤 합니다.

 

글 쓰는 것은 똑같은데 그 상황은 모두가 달랐습니다. ‘같은 일도 다르게 한다’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렇다면 다르게 한 것을 틀렸다고 할 수 있을까요?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각자에게 맞는 신앙생활이 있습니다.

 

다를 수도 있는 부분을 틀렸다고 하면서 자기 방식만을 강요한다면 그것은 큰 잘못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신앙까지 잃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종종 ‘이건 이렇게 해야 한다’라면서 획일화시키려는 분이 있습니다.

 

이런 분에게 ‘같은 일도 다르게 할 수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다르게 하는 그 과정 안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결과도 가져올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더 큰 발전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길을 스스로 찾는 것과 남이 찾아주는 것은 엄청난 차이를 가져옵니다.

 

‘같은 일도 다르게 할 수 있음’을 주님께서도 인정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일에 일일이 간섭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스스로 느끼고 스스로 성장하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왜 주님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올라서려고 할까요?

 

예수님 시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의 생각과 행동만이 옳다고 주장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과 다른 점을 인정하지 못하고 의심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모습을 보고도 그러했습니다.

 

자기들과 달리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 나가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편하고 쉬운 길이 아닌, 엘리야의 모습으로 극기와 겸손의 삶을 산 것입니다.

 

자기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해서 바리사이들은 따지듯이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라고 묻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답인 ‘나는 그리스도다.’라고 말했으면 편한 생활을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은 남들과 같은 삶을 살지 않습니다. 그보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선택하면서, 스스로 낮춥니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우리는 얼마나 겸손의 삶을 살고 있을까요? 교만과 이기심으로 다르게 할 수 있음을 잊어버리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의 명언: 인생은 너무 짧아서 다투고 사과하고 가슴앓이하고 해명을 요구할 시간이 없다. 오직 사랑할 시간만 있을 뿐. 하지만 그 시간마저도 순식간에 지나간다(마크 트웨인).

 

조명연 마태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