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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이야기] (2) 신화, 철학에서의 신 문제

dariaofs 2013. 8. 13. 14:22

작성자 : 조규만 주교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은 하느님


우리가 하느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하느님이 보이지 않는 비가시적 존재라는 사실이 하느님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갈까'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죽음이라는 것은 돌아간다는 것인데, 어디로 돌아가는 걸까'…. 끊임없는 질문이 하느님을 발견하게 해준다.


 사람들은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철학을 했고, 철학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철학의 중요한 대상으로 삼았다. 철학은 신과 인간, 자연의 문제를 다룬다. 철학의 시작은 자연이었다.

 

만물의 근원은 무엇일까. 우리에게 자연도 중요하지만 소크라테스가 말했듯이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게 더 중요하다. 철학의 큰 주제는 하느님ㆍ인간ㆍ자연으로, 이 주제들은 계속 번갈아가면서 철학의 중심 주제로 다뤄졌다. 자연철학이 나오기 전에는 신화에서 신의 문제를 다뤘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은 인간과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올림푸스의 신 제우스, 바다의 신 포세이돈, 부부 사랑을 관장하는 헤라 여신, 불을 다스리는 헤스티아, 지하세계를 다루는 하데스 등…. 인간이 희망하는 것을 투사시켜서 신들 모습을 그렸다.

 
 만약 소나 돼지들이 그림을 그릴 줄 안다면 신의 모습을 소나 돼지로 그렸을 것이다. 인간들이 그림을 그리고 생각할 줄 알기에 신의 모습을 사람 모습으로 그렸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여러 신들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신들은 죽지 않지만 인간처럼 잠도 자야 하는 인간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신의 세계에도 신들 운명을 지배하는 최고 존재가 있다. 결국 신화는 다신론을 이야기하지만, 그 안에서 그들을 지배하는 절대적 힘을 가진 유일신론을 지향한다.


 한편 철학에서도 신의 존재를 다룬다. 소크라테스 제자였던 플라톤은 이데아 세계를 그렸다. 플라톤의 사고방식에서 플라톤적 사랑은 이데아적 사랑을 의미한다. 


물질ㆍ육체적 사랑은 저질적으로, 이데아적 사랑은 높게 평가한다. 그리스도교는 오랫동안 인간 개념을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에서 물려받았다.


 토마스 데 아퀴노 성인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교회에 가져오기 전까지 이데아적인 것, 즉 정신적인 것은 고귀한 것이고 인간의 육신은 저질이라고 생각해왔다. 교리에서 보면 우리가 물리쳐야 할 원수는 세속과 육신, 마귀다.


 사실 육신은 물리쳐야 할 원수가 아니다. 성경에서도 예수님이 물질적인 것을 죄악시한 경우는 없었다. 예수님은 먹는 것은 좋은 것이라고 했다. 예수님은 오히려 죄를 짓게 하는 것은 사람 마음에서 나오는 시기와 질투, 증오라고 했다. 이 세상 모든 물질은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게 창조된 것이다. 플라톤의 사고방식과 달랐다.


 플라톤은 이데아 세계가 신의 세계이기에 이데아 세계가 참되고 옳은 것이라고 봤다. 죽음은 이데아에서 온 우리 영혼이 물질적 악의 세계에서 온 육신과 결합해 인간으로 살다가 육신으로부터 해방돼 영원히 다시 이데아 세계로 가는 것이라고 했다. 소크라테스도 죽음은 우리 영혼이 죄스런 육신에서 벗어나 본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꿈은 시간을 초월하는 정신세계로, 하느님이 존재하는 초월적 세계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을, 플라톤은 정신세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서양의 모든 합리적 사고방식의 기초를 놓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플라톤 철학의 영향으로 교부들은 사람을 영혼과 정신, 육신으로 구분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사물은 스스로 존재하지 않고 다른 것에 의해 존재하거나 다른 것에 의해 움직인다고 했다.

 

예를 들면, 성모상이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에 의해 만들어지고 성모상을 제작한 작가는 부모에 의해 존재하고, 그 부모는 할머니ㆍ할아버지, 증ㆍ고조부에 의해 존재한다. 하지만 그 소급과정이 무한할 수는 없다. 어쨌든 시작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만물의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고 봤다. 결과를 통해 최종 원인으로서 하느님을 이야기한다. 토마스 데 아퀴노는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을 접목해 인간이 이성으로 하느님을 알 수 있다며 하느님 존재를 5가지 방식으로 증명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증명한 것 같이, 만물을 움직이게 하는 최종 운동자인 '제일운동인(第一運動因)'을 하느님이라 부른 것이 첫 번째다. 


두 번째는 예를 들어 내가 존재하는 데는 나를 있게 한 부모가 있고, 부모에게는 또 그 부모가 있듯이 부모를 계속 거슬러 올라갈 수는 있지만 영원히 소급할 수는 없다. 그 시작이 되는 '제일작용인(第一作用因)'이 하느님이다.


 세 번째는 우연적인 것에서 필연적인 것으로 전개돼 가는 과정에서 하느님을 증명한다. 우연적인 것은 없다가도 있지만 필연적인 것은 반드시 존재한다.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세상 모든 사물은 우연적이다.

 

100년 전에는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존재하고 있다. 우주 역시 200억 년 전에 빅뱅이라는 사건으로 생겼지만 300억 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사물이 없다가도 있고 있다가도 없는 우연적 존재라면 어느 순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는 것은 이 세상에는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어떤 존재가 있다는 것이다. 이 존재를 하느님이라고 한다.


 네 번째는 이 세상에는 목적 없이 움직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주 질서가 하느님을 증명한다.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가을과 겨울이 오듯이 내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조화롭게 움직이는 것이 있다. 결론적으로 목적을 부여하는 이도 하느님이고, 그 마지막 목표도 하느님이다.



                               (조규만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