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성 요한(Joannes a Cruce)은 1542년 6월 24일 에스파냐의 아빌라(Avila) 근교 폰티베로스(Fontiveros)에서 직조공이었던 곤살로 데 예페스(Gonzalo de Yepes)와 카탈리나(Catalina Alvarez) 사이의 세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가족들은 극심한 빈곤과 궁핍 속에서 생활하였고 아버지와 형 루이스(Luis)는 요한이 어릴 때 사망하였다. 그래서 요한은 어머니와 함께 메디나 델 캄포(Medina del Campo)에 정착해 살며 교육을 받았고, 17세 때에는 그곳의 예수회 대학교에서 공부하는 한편 메디나 병원장을 위해 일하기 시작했다.
1563년 그는 메디나 델 캄포의 카르멜 수도원에 입회하였고 이듬해에 성 마티아의 요한(Juan de Santo Matia)이라는 수도명으로 서원을 하였다. 1564년부터 4년간 살라망카(Salamanca)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1567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 후 성 요한은 고향집을 찾았을 때 아빌라(Avila)의 성녀 테레사(Teresia, 10월 15일)를 만났다. 그 당시 카르멜회의 환경과 생활 방식에 만족하지 못해 더 고적하고 깊은 기도생활을 할 수 있는 카르투지오회로 옮기고 싶다는 뜻을 성 요한이 피력하자, 성녀 테레사는 그를 설득하여 카르멜회에 남아 함께 개혁운동을 하자고 권유하였다.
1568년 11월 28일에 그는 두루엘로(Duruelo)에서 두 명의 동료와 함께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의 도움으로 개혁된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다. 성 요한은 카르멜회의 최초 규칙으로 돌아가 실천하겠다는 서약을 하였으며, 이때 이름을 십자가의 요한으로 바꾸었다. 그는 열렬한 기도와 보속의 생활을 하면서 인근 마을들에서 사도직을 수행하였다. 그리고 1년 뒤 두루엘로에 최초의 맨발의 카르멜회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그는 개혁 카르멜회의 보급을 위하여 진력을 다하던 중, 1577년 10월 2일 수도회 개혁을 반대하던 완화 카르멜회 수도자들에 의해 납치되어 톨레도(Toledo) 수도원 다락방에 감금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1578년 8월까지 9개월간 ‘어두운 밤’을 체험하였다. 이 당시의 체험을 바탕으로 그는 신비적, 영성적, 문학적인 성장을 이루게 된다.
감옥 안에서 그는 몇 편의 시를 썼다. 9개월 만에 감옥에서 탈출한 그는 개혁 카르멜회의 여러 직책을 맡아 활동하는 한편 저술활동을 계속하였다. 1579년 맨발의 카르멜회는 인정을 받았고 수도원도 세웠다. 그는 바에사에 개혁 카르멜회 대학을 세우고 학장이 되었으며, 1582년에는 그라나다(Granada)의 로스 마르티레스 수도원의 원장을, 1585년에는 안달루시아(Andalucia) 관구장이 되었다.
그러나 1590년 카르멜회의 분쟁이 재현되었다. 결국 이로 말미암아 요한은 1591년 6월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 멕시코로 가게 되었다. 하지만 병에 걸려 그대로 에스파냐에 남게 된 그는 그 해 9월 말 우베다(Ubeda) 수도원으로 옮긴 후 병고와 정신적 고통을 겪은 후 12월 13일 밤 자정이 지난 무렵에 사망하였다.
그는 교회의 가장 위대한 신비가 중 한 명이며, 그의 저서들은 가장 유명한 영성신학의 고전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카르멜의 산길”, “영혼의 노래”, “사랑의 산 불꽃” 등이 가장 유명하다. 요한은 1675년 교황 클레멘스 10세(Clemens X)에 의해 시복되었으며, 1726년 교황 베네딕투스 13세(Benedictus X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리고 1926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교회학자로, 199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에스파냐 언어권의 모든 시인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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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 (마태 17,10-13)
<대림, 성탄>
"제자들이 예수님께, '율법학자들은 어찌하여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하고 물었다(마태 17,10)."
지금 이 질문은 예수님께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신 일을(마태 17,1-9) 체험한 제자들의 질문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영광을 보고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믿었지만, 율법학자들의 주장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당시에 율법학자들은, 메시아가 오기 전에 먼저 엘리야가 와서 메시아의 일을 준비할 것이라는 말라키서 3장 23절-24절의 예언을 근거로 해서 아직 엘리야가 오지 않았으니 예수님이 메시아일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지금 제자들의 질문은, 율법학자들의 그런 주장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예수님이 메시아라면 엘리야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변모하실 때 모세와 엘리야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메시아의 일을 준비하기 위해서 미리 온다는 엘리야는 자기들이 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과연 엘리야가 와서 모든 것을 바로잡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그처럼 사람의 아들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마태 17,11-12).'"
예수님께서는 말라키서의 예언대로 엘리야가 이미 왔고, 메시아의 일을 준비했는데,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고 엘리야를 죽여 버렸다고 대답하십니다. (제멋대로 다루었다는 말은 죽여 버렸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엘리야를 알아보지 못한 것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아보지 못한 것을 예시한 것이고, 엘리야의 죽음은 예수님 죽음의 예시입니다. "그처럼 사람의 아들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라는 말씀은 "엘리야가 고난을 받았으니 메시아인 나도 고난을 받을 것이다."가 아니라, "엘리야가 받은 고난은 메시아인 나의 고난을 미리 보여준 일이다."입니다.
"그제야 제자들은 그것이 세례자 요한을 두고 하신 말씀인 줄을 깨달았다(마태 17,13)."
제자들은 사람들이 엘리야를 제멋대로 다루었다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세례자 요한의 죽음을 기억해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이 "세례자 요한이 바로 엘리야다." 라는 뜻이라는 것을 깨달았는데, 이 깨달음은 "예수님은 확실히 메시아이시다." 라는 믿음과 깨달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고난에 관한 말씀은 흘려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는 말씀을 두 번째로 하시게 됩니다(마태 17,22-23).
어떻든 지금 이 내용은 세례자 요한이 엘리야라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메시아" 라는 믿음은 "예수님은 하느님"이라는 믿음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말씀은 하느님이셨다(요한 1,1)."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 20,28)"
지금 대림시기에 이런 내용이 복음 말씀에 배치되어 있는 것은 성탄절의 성격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성탄절은 옛날에 있었던 사건을 기념하고 경축하는 날이 아니라,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사람으로 세상에 오심을 경축하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오셨던 날'이 아니라, '오시는 날'입니다.)
예수님의 강림은 인간 역사 속에서는 과거의 일이지만, 하느님의 구원 역사 속에서는 언제나 현재의 일입니다. 만일에 예수님이 하느님이 아니고 사람일 뿐이라면 우리는 예수님을 존경해도 믿지는(신앙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일에 예수님이 사람으로 오시지 않고 그냥 하느님으로 오셨다면 성탄절이라는 축일 자체가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탄절이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언제나 현재의 사건이라면, 그리고 이 일이 영원하신 하느님의 시간 속에서의 일이라고 해도, 우리 인간의 시간과 모순되는 점이 생깁니다.
예수님은 승천대축일에 우리에게서 떠나셔서 우리 곁에 안 계셨다가 성탄절을 맞이해서 다시 우리 곁으로 오시는 것인가? 우리는 예수님께서 언제나 항상 우리와 함께 살아계신다고 믿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리는 대림절과 예수님의 오심을 경축하는 성탄절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바로 그런 이유로 우리는 이 모든 상황을 거꾸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항상 우리와 함께 살아계시는 주님이신데, 우리 쪽에서 자꾸만 예수님을 떠난다는 것. 그래서 대림절은 예수님이 오시기를 기다리는 기간이 아니라 우리 쪽에서 예수님께로 온전히 되돌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기간이라는 것.
마찬가지로 성탄절은 떠나 계시던 예수님이 인간 세상으로 되돌아오신 날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더욱 새롭게 태어나는(태어나야 하는) 날이라는 것.
송영진 모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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