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동부 네이메겐(Nijmegen)에서 9차례나 선출된 시장의 아들로 태어난 성 베드로 카니스(애칭)는 법률가가 되려는 야망을 품고 쾰른(Koln) 대학교로 갔으나, 그 대학의 저명한 교수이며 예수회원이던 베드로 파브르(Petrus Fabre) 신부의 영향을 받아 신학으로 전향하고, 1543년에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성 베드로 카니시우스(Petrus Canisius, 또는 베드로 카니시오)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유산을 주고난 후 1546년에 사제로 서품되었고, 곧 그의 설교는 유명하게 되었다.
그는 트렌토(Trento) 공의회의 두 회기에 참석하였고, 성 이냐시오가 시칠리아(Sicilia)의 메시나(Messina)에 설립한 예수회의 첫 번째 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다가, 바이에른(Bayern)의 빌리암 4세 공작이 그곳의 프로테스탄트들을 물리치고 가톨릭을 재건하기 위하여 그를 요청하므로, 그는 1549년에 인골슈타트로 갔다. 그는 이와 비슷한 일을 빈(Wien)에서도 하였는데, 그의 명성은 이 지역에서도 높이 평가받았다.
성 카니시우스는 프로테스탄트를 대항하여 가톨릭의 신앙을 옹호하는 일을 오랫동안 해왔으므로, 이제 그는 같은 주제에 대하여 저술하기 시작하여 자신의 교리서 첫판을 발간하자 큰 선풍을 일으켰고, 즉시 15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그는 또 1556년에 프라하(Prague)로 파견되어 그곳에 새로 짓는 대학교를 위하여 일하는 동안에, 남부 독일과 보헤미아(Bohemia) 그리고 오스트리아로 구성된 새 관구의 관구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독일 전역을 순회하면서 강의하고 설교하였고, 프로테스탄트를 반박하였으며, 여러 개의 대학을 설립하고, 그가 설교하는 도시의 가톨릭을 부흥시켰으며, 폴란드에 예수회를 널리 보급한 장본인이었다.
1559년부터 1565년 사이에 그는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에 있었다. 그는 아주 정열적인 사람이었으니, 30년 동안 도보로 혹은 말을 타고 2만 마일을 여행하면서 선교한 사람이다. 후일 그는 딜링엔(Dillingen), 인스브루크(Innsbruck)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프리부르(Fribourg)에서 교육에 전념하다가 그곳에서 운명하였다.
그는 현대의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들조차 '고상한 예수회원, 결점 없는 인품'을 지닌 사람으로 평할 만큼, 트렌토 공의회를 연이어 일어난 가톨릭 재건 운동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또한 그는 그 당시의 논객들 가운데서 가장 예의바르고 올바르며 예리한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는 일찌감치 펜과 신문의 영향을 감지하였으므로, 모든 인쇄업자와 출판사에 용기를 주었다. 그는 또 알렉산드리아의 성 키릴루스(Cyrillus)와 성 대 레오(Leo)의 전집을 편집하였고,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의 편지를 비롯하여 순교학, 성무일도 개정 그리고 가톨릭 공과 등 수많은 저서를 내었다. 흔히들 그를 '독일의 두 번째 사도'로 부른다. 그는 1864년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925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강론 : (루카 1,39-45)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하다.>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할 때
엘리사벳이 임신한지 여섯 달이 되었다는 말도 했었습니다(루카 1,36).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찾아간 것은 '엘리사벳의 임신을 축하하기 위해서,
그리고 엘리사벳의 출산을 돕기 위해서' 라고 생각됩니다.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만나는 장면을 보면 어두운 그림자가 전혀 없습니다.
원래 온전한 믿음에는 그림자가 없는 법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를 본 엘리사벳은
자기가 아이를 낳게 된 것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고
마리아가 아이를 낳게 된 것에 대해서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 하느님께서 마리아와 엘리사벳을 통해서 하시는 일의 주인공은
세례자 요한이 아니라 예수님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루카복음서 저자는 엘리사벳이 '성령으로 가득 차서'(루카 1,41)
말했다고 기록했는데, 이 표현은 엘리사벳이 자기의 자유의지와 상관없이
성령이 시키는 대로 로봇처럼 말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말은 엘리사벳이 마리아에게 일어난 일의 의미와
마리아 태중의 아기가 어떤 분인지를 깨달은 것은
성령께서 인도해 주신 덕분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을 증언하고 찬양한 것은 엘리사벳 자신의 의지로 한 것입니다.
엘리사벳의 말에는 여러 가지 중요한 내용들이 들어 있습니다.
1)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주님의 어머니' 라고 부릅니다(루카 1,43).
'주님의 어머니' 라는 말은
사실상 '마리아 태중의 아기는 주님'이라는 신앙고백입니다.
(엘리사벳의 신앙고백은 성령의 증언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주님'이라는 말은 '메시아'를 뜻합니다.
루카복음에서 엘리사벳은 '예수님은 메시아' 라고 고백한 첫 번째 인물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나중에 주님이 되실 분"이 아니라
"주님이신 분"이라고 고백(증언)했다는 점입니다.
아기 예수님은 나중에 메시아가 되실 분이 아니라 원래 메시아이신 분입니다.
마리아는 메시아가 되실 분을 잉태한 것이 아니라 메시아를 잉태했습니다.
예수님은 '한처음'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이셨다는 것이
우리 교회의 믿음입니다(요한 1,1).
세례자 요한의 경우는 다릅니다.
아기 요한은 처음부터 메시아의 선구자였던 것이 아니라,
나중에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메시아의 선구자가 됩니다.
"한나스와 카야파가 대사제로 있을 때, 하느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즈카르야의 아들 요한에게 내렸다(루카 3,2)."
2) 엘리사벳은 마리아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신 분이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신 분이라고 찬양합니다(루카 1,42).
태중의 아기가 복되신 분이신 것은 그 아기를 통해서
모든 사람이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리아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신 분이신 것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실 메시아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을 받게 된다면 우리도 복된 사람들이 됩니다.
여기서 '복되다.' 라는 말은 '하느님의 축복과 은혜를 받다.' 라는 뜻이고,
이 축복과 은혜는 메시아의 구원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마리아는 메시아의 구원을 첫 번째로 받으신 분이 됩니다.
'여인들 가운데에서' 라고 표현되어 있지만
이 말은 남자들을 제외하는 말이 아니고,
사실상 '모든 사람 가운데에서'입니다.
'가운데에서 가장'이라는 말은
마리아가 받은 '복'의 위대함을 강조하는 표현인데,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받게 되는 '복'은 가치가 떨어진다고
평가절하 하는 말은 아닙니다.
이 말은 마리아가 받은 복과
다른 사람들이 받게 될 복을 비교 평가하는 말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마리아를 통해서 하시는 일의 위대함을 강조하는 말로 해석됩니다.
언젠가 때가 되면, 우리는 모두 하느님 나라에서
하느님과 예수님과 마리아와 함께 같은 행복을 누리면서 살게 될 것입니다.
3)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믿음을 찬양합니다(루카 1,45).
마리아의 '복'은 하느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이지만,
동시에 마리아가 믿음으로 '받은' 것이기도 합니다.
만일에 믿지 않았다면, 그래서 응답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았다면
마리아는 주시는 복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앞에서 하느님께서 마리아를 통해서 하시는 일이 위대하다고 말했는데,
그 일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협력한 마리아의 믿음과 응답과 순종도 위대하고,
예수님의 구원사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협력하고 동참하는
모든 신앙인의 믿음도 위대합니다.
마리아는 보통 사람들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먼 곳에 계신 분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마리아를 '신앙인의 모범'이라고 표현하는데
이 말은 누구든지 노력하면
마리아가 도달한 그 곳에 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기만 하면......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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