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3년 12월 22일 가해 대림 제4주일

dariaofs 2013. 12. 22. 00:00

                                                                  
(마태 1,18-24)

 

<임마누엘>

 

마태오복음서 저자는 예수님의 탄생을

이사야서의 '임마누엘 예언'이 이루어진 일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 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마태 1,22-23).

 

이사야서를 보면, 이 예언은 이사야가 '아하즈' 왕에게 한 예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나쁜 것을 물리치고 좋은 것을 선택할 줄 알게 될 때,

그는 엉긴 젖과 꿀을 먹을 것입니다.

 

그 아이가 나쁜 것을 물리치고 좋은 것을 선택할 줄 알게 되기 전에,

임금님께서 혐오하시는 저 두 임금의 땅은 황량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아시리아의 임금을 시켜,

임금님과 임금님의 백성과 임금님 부친의 집안에,

에프라임이 유다에서 떨어져 나간 날 이후 겪어 본 적이 없는 날들을

닥치게 하실 것입니다(이사 7,14-17)."

 

'아하즈'는 스무 살에 남부 유다의 임금이 되어서 열여섯 해 동안 다스리면서

'주님의 눈에 드는 옳은 일을 하지 않고'

우상숭배에만 빠져 있었던 왕이었습니다(2열왕 16, 1-4 ; 2역대 28,1-4).

그가 왕으로 있는 동안

주변 국가들과 북부 이스라엘이 줄곧 유다를 침략했는데,

그는 주님께 도움을 청하지 않고

다른 나라의 왕이나 우상들의 도움을 받으려고 했습니다(2역대 28,23).

임마누엘 예언은 그런 왕에게 내린 경고성 예언입니다.

 

(이사야서에 '젊은 여인'으로 번역되어 있는 말은 원문대로 번역하면 '처녀'인데,

이 말에는 우리말처럼 '결혼하기 전의 젊은 여자' 라는 뜻과

'동정녀' 라는 뜻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새번역 성경이 '젊은 여인'으로 번역한 것은 별로 적절하지 않습니다.

마태오복음서 저자는 이 말을 '동정녀'로 해석하고 복음서에 인용했습니다.)

 

구약시대 사람들은 임마누엘 예언이 언제 어떻게 실현될 것인지,

또 이 예언의 뜻이 무엇인지 잘 몰랐을 것입니다.

 

어떻든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의 아기가 자라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될 때(나쁜 것을 물리치고 좋은 것을 선택할 때),

그때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엉긴 젖과 꿀을 먹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전까지는, 즉 메시아가 활동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남부 유다나 북부 이스라엘이나 주변 국가들이나 모두

멸망 상태에(황량한 상태에, 즉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은,

또는 하느님에게서 멀어져 있는 상태에) 놓여 있게 될 것입니다.

(사실 그 상태는 어떤 특정 시기만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메시아가 오기 전의 인간들의 보편적인 상태를 가리킵니다.)

 

마태오복음서 저자는 예수님을 임마누엘로,

예수님이 태어나기 전 시대는 임마누엘이 활동하기 전 시대로,

예수님이 태어난 이후 시대는

임마누엘이 활동을 시작하는 시대로 해석하고 있고,

당연히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이사야서에 예언된 '동정녀'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실제로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적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 라는 뜻의 '임마누엘'이라는 말은

어떤 인물의 이름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다시 말해서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라는 예언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해서(구원하기 위해서)

동정녀의 몸에서 아들로 태어나실 것이다."

라는 뜻으로 해석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임마누엘'이라는 말을 예수님과 연결해서 사용할 때에는

"임마누엘이신 예수님" ㅡ 우리와 함께 계신 하느님이신 예수님 ㅡ

처럼 사용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해서 동정녀의 아들로 태어나신다는 말은

어디 먼 곳에 떨어져 계셨다가 되돌아오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언제나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인간들이 하느님에게서 떨어져 있었고 멀어져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에게서 멀어져 있는 인간들을 찾기 위해서(구원하기 위해서)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인간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또 예수님에게서

'하느님은 언제나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신다.' 라는 것을 믿게 되고,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 안에 오신 하느님이신 분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착한 목자(요한 10,11)'로 표현하신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하느님에게서 멀어져 있는 인간들은 모두 '잃은 양'입니다.

(사실은 모든 사람이 다 '잃은 양'입니다.)

예수님은 잃은 양들을 찾아서 구원하는 착한 목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양들 쪽에서도 목자를 찾고 있느냐?"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찾고 계시니 우리 쪽에서도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호소하십니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요한 15,4-5)."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