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3년 12월 24일 가해 예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dariaofs 2013. 12. 24. 00:07

 

                                                                           (루카 2,1-14)

 

 

<방이 없어서>

 

"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루카 2,7)."

 

예수님이 외양간에서 태어나서 구유에 눕게 된 것은

여관에는 방이 없었기(들어갈 자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먼저 온 사람들이, 또는 돈이 더 많은 사람들이

여관방을 모두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서 저자는 마리아와 요셉이 외양간으로 가야만 했던 것은

가난했기 때문이라는 말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여관에 방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말만 하고 있습니다.)

 

물론 요셉과 마리아가 가난하기는 했지만,

아무런 준비도 없이 베들레헴으로 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여관비를 낼 정도의 돈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빈 방이 없었습니다.

 

여관은 그렇다 치고, 일반 가정집에서 방을 빌릴 수는 없었던 것일까?

아마도 분명히 요셉은 여관에서 방을 구하지 못하게 되자

가정집에서라도 방을 빌리려고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방을 빌리지는 못했고, 겨우 외양간만 빌릴 수 있었습니다.

당시 베들레헴에는 여관이든 가정집이든

산모를 가엾게 여긴 사람은 하나도 없었던 것입니다.

 

방이 없었다는 말에서 노아의 방주가 생각납니다.

대홍수를 앞두고 하느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지시하실 때,

처음부터 노아의 가족만 들어갈 수 있도록 설계하셨을까?

(노아가 방주를 만들었지만 설계는 하느님께서 하셨습니다.)

 

창세기의 내용을 보면,

어차피 노아 가족 외에는 모두 멸망당할 운명에 놓여 있었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더 태울 수 있는 공간을

설계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래도 만일에 노아 가족 외에 누구라도 회개한 사람이 있었다면,

또는 회개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였다면,

방주를 설계할 때 그 사람을 위한 방도 마련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누구든지 회개하고 자기도 방주로 들어가겠다고 했다면

모두 다 들어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회개했는데도 방주가 작아서 못 들어가는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분이 설계하신 방주이니까 정원 제한 같은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실제로는 노아 가족 외에는 아무도 방주로 들어간 사람이 없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안 받아주셔서 못 들어간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안 들어가려고 해서 못 들어간 것입니다.

 

갑자기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한 것은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는 방주와 같은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방주로 들어가고 싶다면

우리가 먼저 우리 집으로 예수님을 모셔 들여야 합니다.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묵시 3,20)."

만일에 우리가 예수님을 모시기를 거부한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이 예수님의 방주로 들어가기를

스스로 거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최후의 만찬 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요한 14,2-3)."

이 말씀은 사도들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향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아버지의 집은 거처할 곳이 많아서 '모든' 사람이 들어가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쪽에서 먼저 예수님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조건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이

꼭 '가난한 사람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라는 뜻만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입니다.

성탄절은 '모든 사람'과 화해를 해야 하고, '모든 사람'을 받아들여야 하는 날입니다.)

 

아마도 베들레헴 사람들은 이렇게 변명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아기가 메시아인 줄 몰랐고, 그 산모가 메시아의 어머니인 줄 몰랐다."

그러나 그런 변명은 예수님 앞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지금 너의 집 문을 두드리고 있는 그 사람이 바로 나다.

지금 이 땅에서 소외당하고 있는 그 사람이 바로 나다.

지금 부당해고를 당해서 단식 농성 중인 그 노동자가 바로 나다.

지금 진실을 말하다가 탄압받고 있는 그 사람이 바로 나다.

정치적인 견해가 다르고, 환경 문제에 대한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지금 네가 미워하고 싫어하는 그 사람이 바로 나다.

지금 네가 너의 적이라고 생각하는 그 사람이 바로 나다.

...... 지금 그 사람이 바로 나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