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이스라엘을 이집트 종살이로부터 해방시키시고 하나의 자주적인 백성으로 세우셨다.
이 성경의 역사는 하느님의 정의가 억압적인 상황에서 자유와 샬롬을 회복하기 위하여 개입하는 해방시키고(liberating) 공동체를 만드는(community-creating) 힘이라는 사실을 잘 드러낸다.
이스라엘은 자신이 이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통하여 하느님의 정의를 실천하도록 초대되었다. 이스라엘은 역사 안에서 이 사명에 충실하기도 하였지만 자주 실패하였다.
그래서 이스라엘 안에서는 장차 언젠가는 하느님의 해방시키는 정의가 이 땅 위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실현되고 온 창조 세계가 다시 새롭게 될 것이라는 희망이 커져갔다.
예수님은 이러한 성경적 희망의 성취이시다. 그분 안에서 하느님의 정의는 새롭고도 극적인 방식으로 실현된다.
예수님은 이러한 성경적 희망의 성취이시다. 그분 안에서 하느님의 정의는 새롭고도 극적인 방식으로 실현된다.
예수님의 삶, 죽음, 부활을 통해 하느님의 정의는 이 땅 위에서 결정적으로 계시된다. 예수님은 하느님이 이 세상에 정의를 이루기 위해 다윗의 후손 메시아를 일으키시리라는 구약 성경의 기대를 잘 알고 계셨다.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다윗을 위하여 의로운 싹을 돋아나게 하리라. 그 싹은 임금이 되어 다스리고 슬기롭게 일을 처리하며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루리라.”(예레 23,5)
예수님은 갈릴래아에서 활동을 시작하시면서 억압받는 이들에게 정의를 가져오는 것을 당신의 사명으로 선언하셨다.(루카 4,16-20)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 선포는 오랫동안 기다려온 하느님 정의의 통치가 이제 이 땅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마르 1,14-15 마태 4,17)
그래서 산상 설교에서 예수님은 하느님 정의의 요구를 그 무엇보다도 앞세우도록 말씀하신다.(마태 6,33)
예수님은 대안적인 공동체를 만드시고, 병자를 치유하시며 배고픈 이들을 배불리 먹이시고 더러운 영이 들린 이들을 깨끗하게 하시며 배제와 억압의 지배 체제에 도전하셨다. 이러한 예수님의 정의 실현 운동은 비폭력적 특성을 가진다.(마태 5,38-42: 12,15-21 이사 42,1-4)
그런데 예수님은 정치와 사회 변화에는 관심이 없는 단지 영적인 스승이셨는가? 비정치적인 예수님의 이미지는 대중적인 신심에서 흔히 발견된다. 이에 따르면 예수님은 영적인 구원자로 오셨지 정치적인 활동가(political activist)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정치와 사회 변화에는 관심이 없는 단지 영적인 스승이셨는가? 비정치적인 예수님의 이미지는 대중적인 신심에서 흔히 발견된다. 이에 따르면 예수님은 영적인 구원자로 오셨지 정치적인 활동가(political activist)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분은 인간을 개인적인 거룩함에로 부르셨지, 정치적인 변혁에로 초대하시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그분은 정치의 지저분한 현실로부터 초연한 비정치적인 종교적 스승이시라는 주장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을 당시의 구체적인 정의와 관련된 문제들로부터 분리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예수님을 당시의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이슈들로부터 완전히 분리하는 것은 실제로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예수님을 당시의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이슈들로부터 완전히 분리하는 것은 실제로 가능하지 않다.
하느님의 나라가 이 세상의 왕국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면, 왜 당시의 정치적 통치자들은 예수님을 죽였겠는가? 사실상 비정치적인 예수님 이미지는 역사적으로 신빙성이 없는 것이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실천에서 정치적인 차원을 소홀히 다루는 태도는 종교와 국가 사이의 분리, 종교 생활과 정치 생활 사이의 분리라는 현대적 이분법에 따라 복음서를 읽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교와 정치의 구분은 예수님 당시의 고대 유다 사회에서는 이질적인 것이었다.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정치적 권력을 행사하였고, 모세의 율법은 나라의 법이었다. 예루살렘 성전은 영적이고 종교적인 권위의 중심이었을 뿐 아니라 정치와 경제의 중심이기도 했다.
따라서 예수님이 종교 지도자들과 갈등을 일으킨 것은 동시에 정치권력과의 충돌이기도 하다.
당시 지배 체제에서 종교적, 정치적, 군사적인 권력을 차지하고 있던 반대자들은 하느님 나라의 정의에 따라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관계를 재구성하기를 요구하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잃을 것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송창현 신부는 1991년 사제수품 후 로마 성서 대학원에서 성서학 석사학위(S.S.L.)를, 예루살렘 성서·고고학 연구소에서 성서학 박사학위(S.S.D.)를 취득했다.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과 성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송창현 신부는 1991년 사제수품 후 로마 성서 대학원에서 성서학 석사학위(S.S.L.)를, 예루살렘 성서·고고학 연구소에서 성서학 박사학위(S.S.D.)를 취득했다.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과 성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송창현 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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