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와 관련하여 성경의 강조점은 억압자에 대항하여 저항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에 있다. 예수님은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에게 정의를 실현하는 것을 자신의 역사적인 사명으로 삼으셨다.
그래서 그분은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의 남용에 비판적이셨고, 가난하고 약한 이들을 주변인으로 만들고 폭력에 의존하는 태도에 대하여 반대하셨다.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이러한 예수님의 정치적 태도는 다음의 두 가지 측면을 가진다.
한편으로 예수님의 태도는 사회적 차별과 불의, 사회적 악에 대한 거부와 고발로 특징 지워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느님 나라의 실재(reality)를 생활하기 위한 대안적 사회(alternative society)에로의 초대로 특징 지워진다.
예수님의 가장 큰 특징은 사회적 약자들인 가난하고 주변으로 내몰린 이들, 여성, 어린이, 신체 불구자와 병자,
예수님의 가장 큰 특징은 사회적 약자들인 가난하고 주변으로 내몰린 이들, 여성, 어린이, 신체 불구자와 병자,
더러운 영이 들린 이들에 대한 기본 태도에 있다. 하느님 나라의 시작은 사회적 약자들에는 기쁜 소식, 곧 복음이었다.(루카 4,18-22 마태 11,2-6 루카 7,18-35)
복음은 그들의 사회적 배제(social exclusion)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이 가난하고 약한 이들을 받아들이신다는 위로와 그분이 이제 역사(役事)하신다는 확신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을 끝장내고 그들을 공동체 안으로 회복하기 위하여 행동하셨다.
사실 정의는 우연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의의 실현은 항상 투쟁, 참여, 헌신을 요구한다. 정의를 위한 하느님의 헌신 덕분에 인간에게는 항상 변화를 위한 희망이 존재한다. 예수님은 사회적 차별과 싸우셨다.
사실 정의는 우연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의의 실현은 항상 투쟁, 참여, 헌신을 요구한다. 정의를 위한 하느님의 헌신 덕분에 인간에게는 항상 변화를 위한 희망이 존재한다. 예수님은 사회적 차별과 싸우셨다.
그분은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독선적인 교만을 비판하셨고 죄인들, 내몰린 이들과 친밀한 친교를 나누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막대한 재산이 소수의 손에 집중되는 구조적인 불의에 대하여 비판하셨다. 왜냐하면 이러한 불공정한 경제 구조 안에서 부자는 가난한 이들의 희생으로 번영하기 때문이다.
“불의한 재물”(루카 16,9)이라는 표현에서 잘 드러나듯이 예수님은 부(富)의 추구 안에서 불의를 향한 경향을 간파하셨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당시의 탐욕스런 부자와 지배 엘리트들을 비판하셨다. 그들은 불필요한 잉여를 축적하기 위하여 가난한 이들의 필요를 무시하고 약한 이들을 착취하였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정의가 실현되는 새로운 공동체를 모으셨다. 이 공동체 안에서 가난한 이들은 우선적이었다.(루카 14,12-24)
더 나아가 예수님은 정의가 실현되는 새로운 공동체를 모으셨다. 이 공동체 안에서 가난한 이들은 우선적이었다.(루카 14,12-24)
병자와 감옥에 갇힌 이들을 돌보고, 여성의 존엄성과 평등이 인정되며 어린이들은 본받아야할 모범이 되고, 이방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평등한 하느님 호의의 수혜자로 포함되는 새로운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이 공동체는 나눔의 생활 방식(마르 10,17-30), 단순함(simplicity, 마태 6,19-34 루카 12,22-31), 물질적 의존(마르 6,7-13)과 재물의 유혹(마르 4,19)에 대해 한결같이 깨어있음 등을 그 특징으로 가진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 선포는 당시의 사회적이고 정치-경제적인 상황과 여러 측면에서 갈등을 일으켰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 선포는 당시의 사회적이고 정치-경제적인 상황과 여러 측면에서 갈등을 일으켰다.
그분은 부와 권력의 사용에 대하여,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가난하고 약한 이들을 완전한 참여로부터 배제하는 것에 대하여, 불공평한 현 상황(status quo)을 보호하기 위한 폭력의 사용에 대하여 비판하셨다.
사회적 질서의 불의에 비판적이셨던 예수님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공동체 형성에로의 회개를 요구하셨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뒤따르는 제자들의 공동체 안에서 사회적 약자는 존중 되어야 하고, 부는 정의롭게 분배되어야 하며, 리더쉽은 섬기는 종의 모습을 지녀야 한다.
즉 다가오는 하느님 정의의 나라의 비전(vision)을 실천하는 것은 새로운 메시아 공동체에게 있어 최상의 관심이어야 한다.
송창현 신부는 1991년 사제수품 후 로마 성서 대학원에서 성서학 석사학위(S.S.L.)를, 예루살렘 성서·고고학 연구소에서 성서학 박사학위(S.S.D.)를 취득했다.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과 성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송창현 신부는 1991년 사제수품 후 로마 성서 대학원에서 성서학 석사학위(S.S.L.)를, 예루살렘 성서·고고학 연구소에서 성서학 박사학위(S.S.D.)를 취득했다.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과 성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송창현 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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