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례 상 식

[교회상식 속풀이] 23. 미사주는 아무 술이나 되나요?

dariaofs 2014. 2. 19. 00:30

 

일상적인 상황, 즉 본당 혹은 수도회 공동체 안에서 미사를 봉헌할 때는 전례 담당자가 늘 미사주를 준비해 놓기에 미사주에 대해서는 별 걱정 없이 지냅니다.

 

그런데 여행 중에 미사주를 구해야 할 경우가 생기기도 하고, 신자 분들 중에 미사주에 대해 질문하시는 분들이 종종 계시기에 오늘은 미사주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미사주에 술 주(酒) 자가 들어간다고 해서 아무 술을 가지고 미사를 할 수는 없습니다. 전례학을 전공하신 선배 신부님과 나눈 이야기를 토대로 일단 원칙을 말씀드린다면, 첨가물 없이 자연 발효된 포도주라면 미사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미사주는 옛날에는 보통 알콜 도수 7도의 포도주를 사용했다고 하는데 너무 쉽게 쉬어버려 도수를 12도까지 높였다고 합니다.)

 

이런 원칙으로 보면, 마주앙에서 나오는 미사주처럼 애초에 미사주 제조를 위한 포도밭을 따로 떼놓고, 그 밭을 축성한 후 포도를 키워서 주조한 그런 포도주만을 미사주로 사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요즘에는 보통 편의점에서도 포도주를 구할 수 있을 정도니 혹여 공동체에 포도주가 떨어진 경우에는 편의점을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단점은 좀 비싸다는 것이겠지요.

 

알콜 도수를 높이기 위해, 발효 과정이나 발효 후에 도수가 높은 증류주를 섞을 수 있는데, 이때도 포도주를 증류한 것이어야 합니다. 즉, 꼬냑〔포도주를 증류한 술, 프랑스 꼬냑(Cognac) 지방의 특산품입니다〕

 

같은 도수 높은 포도주정을 낮은 도수의 포도주와 섞어서 도수를 높이는 것이기에 포도 외에 다른 첨가물이 들어간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첨가물이란? 예를 들자니, 갑자기 제 조부님께서 개인적으로 주조하셨던 포도주가 생각납니다. 포도주 주조용 포도가 아니라 시장에서 사온 일반 포도를 깨끗하게 닦아 큰 병에 넣으시고는 소주를 붓고 설탕을 가미하셔서 만드시던 그 ‘포도주’. 이게 포도주일까요? 포도향 소주일까요?

 

‘첨가물 없이 자연 발효된 포도주’를 기준으로 할 때, 이 술은 포도주라 할 수 없습니다. 조부님께서 아직까지 살아계셔서 당신의 ‘포도주’로 미사를 봉헌하자고 하셨다면 전 상당히 난처했을 겁니다.

 

기본적으로 포도가 자연 발효된 것이 아니고 소주라는 첨가물이 들어갔다는 점에서 조부님의 ‘포도주’는 전례적으로 맞지 않는 것이니까요.

 

또 하나 제기할 만한 질문은 포도주 중에도 붉은 포도주만 되는 거 아닌가 하는 겁니다. 왜냐면 엄정하게 따져, 예수님께서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결국 붉은 빛이 의미 있습니다. 그러나 사목적인 편의에 따라 백포도주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미사 한 번 봉헌하고 나서 성작 수건에 붉은 흔적이 남아있다고 계속 세탁하기가 쉽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자, 원칙대로 하면 앞서 거론한, ‘첨가물 없이 자연 발효된 포도주’만이 성찬예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원칙은 원칙인 것이고, 특수 상황에서는 우리의 마음이 좀 너그러워야 할 것입니다.

 

한번은 여행 중에 작은 병에 담긴 포도주를 구해서 미사를 봉헌한 적이 있는데, 따르고 보니 삼페인 계통의 와인(기포가 생기는 포도주)이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런 종류의 포도주 가지고 미사를 해도 될까 잠시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행 중이라는 특수 상황이었기에 마음 놓기로 했던 기억이 납니다.

 

십여 년 전만 해도 요즘처럼 포도주를 편의점에서 쉽게 구할 수 없었을 때, 시골에서 포도주 구하는 일은 더 어려웠습니다. 아무 준비 없이 충청도 모처에서 홀로 농사짓던 신부님께 찾아갔을 때는 좁쌀 막걸리로 미사 드린 적도 있습니다.

 

이 경우도 사목적 특수성이 고려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상상해 보세요. 예수님이 이 나라에서 태어나셨다면, 밥과 막걸리로 성찬례를 제정하셨을 테니……. 그래서 종종 특수한 상황에서는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찬례를 제정하시던 날, 제자들은 음식도 포도주도 풍성히 먹고 마셨던 것 같습니다. 그럼 사람이 상당히 여유 있어지지요. 예수님의 고통에는 아랑곳없이 잠들었으니 말입니다.

 

제자들의 모습과는 정반대로, 넉넉한 마음 가지고 쉬는 것은 고사하고 예수님의 심적인 고통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피땀을 흘리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음, 이야기가 엉뚱한 데로 흘러가기 전에 오늘은 여기서 멈추겠습니다.

 


   
 
박종인 신부 (요한)
예수회. 청소년사목 담당.
“노는 게 일”이라고 믿고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