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명동성당에 가보신 분들은 아시다시피, 제대가 놓인 제단과 신자석이 1미터 정도 높이의 난간 비슷한 구조물을 통해 명확히 구분되어 있습니다.
요즘에는 일반적으로 보기 힘들지만, 예전에는 성당의 제단 끝에 그런 난간 같은 것이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본래 기능은 제단과 신자석을 구분하는 것이기도 했고, 영성체 시간에 이곳까지 나와 무릎을 꿇고 기다리고 있으면, 사제가 신자들에게 성체를 분배해 주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보통, 제단이 제단으로 오르는 계단으로만 만들어지고, 제일 낮은 계단을 경계로 제단과 신자석이 구분됩니다. 거룩한 장소(sanctuarium)로서 제단에는 우리가 경험상 알다시피 미사 주례자와 복사, 그리고 독서자들 같이 전례와 관계있는 이들만이 오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미사 중에 미사를 주례하는 사제는 전례 원칙상 제단 아래로 내려오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봉헌 때나 성체분배 때 사제는 제단의 끝이라 할 수 있는 가장 낮은 계단까지만 내려옵니다. 그곳에서 봉헌물을 받고, 성체를 분배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사제가 의미상 거룩한 곳에서 내려오지 않는 것이 전례상의 장면입니다.
그러나 이런 원칙은 실제로 잘 지켜지지 않습니다. 사제들이 전례를 잘 몰라서 그렇다기보다는 그냥 사목상의 배려로 자연스럽게 제단을 벗어나는 일들이 허용된다고 보면 좋겠습니다. 그러니까 미사 중에 몸이 불편하신 신자들을 찾아간다거나 미사 반주자에게 성체를 전해주러 간다거나 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의미상으로도 주님이 거룩한 곳을 떠나 낮은 곳으로 오시는 모습을 재현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그런 분위기를 좋아합니다. 게다가 요즘은 제단과 신자석이 같은 층위에 형성되는 미사도 드물지 않게 봉헌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좌식 경당에서 이뤄지는 미사나, 거리나 야외에서 벌어지는 미사는 사실상 제단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저 제대를 중심으로 모두가 모이는 형태가 그려질 뿐입니다. 매우 친근하고 공동체적 일치감이 강화됩니다. 말 그대로 제대를 중심으로 그곳이 거룩한 곳이 되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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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명동대성당 내부. 제단과 신자석 사이에 난간이 설치돼 있다. ⓒ강한 기자 | ||
처음부터 성당은 성찬례를 거행하기 위해 지어진 건물이기에 성찬례가 이루어지는 제대는 성당의 중심이 됩니다. 그러니 형편상 모든 조건을 충족시킬 수 없는 상황에서 미사가 진행된다고 해도, 제대만 있다면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충족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필리핀의 보홀이란 섬의 변두리 마을에 위치한 한 초등학교에, 학생들과 봉사활동을 다녀왔습니다. 우리가 한 일은 아침 아홉 시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 전 학년의 미술, 음악, 체육을 빙자한 놀이 수업을 진행한 것이었습니다. 매우 행복한 체험이었습니다. 우리는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피정 집에 머물면서 학교로 출퇴근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에 동네 성당에 축제가 있으니 미사에 참여하고 축제 구경 후 성당에서 제공되는 점심을 먹고 돌아오자고 수녀님들이 흥미로운 제안을 하셨습니다. 말을 못 알아듣는다고 해도 미사 형식을 모르는 바 아니니, 봉사자로 파견되었던 학생들을 데리고 함께 동네 성당을 방문했습니다.
바닷가에 면해 있는 성당은 한창 만들어지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창에 유리도, 문에 문짝도 없이 제단 위에는 제대와 십자고상, 신자석에는 신자들이 앉을 의자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창에는 유리 대신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비를 막기 위해 어디에선가 주어온 현수막 천이 덧대어 있었고요.
그런데도 마음은 매우 편안했습니다. 우리 학교 아이들 중에 여러 명이 이 성당으로 미사를 나왔기에 서로 인사하며 미소를 주고받았습니다. 아이들은 그들뿐만이 아니라 인원이 많았습니다.
미사에 이은 축제가 있어서 더욱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들뜬 분위기를 더욱 흥미롭게 해준 것은 제단 뒤편 제의실에서 개가 튀어나와 제단 주변을 어슬렁대고, 꼬마들이 제단 앞과 좌석 사이를 들락거려도 미사가 평화롭게 진행되고 있는 그 장면이었습니다.
바다와 바람 한가운데, 하느님께서 만드신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있는 그런 세상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그 지역은 얼마 전 (추측컨대)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큰 태풍과 지진을 경험한 곳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그런 것에 아랑곳없이 주일과 축제를 기쁘게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정말이지 그 자리에서 모두가 복음을 듣고 있었습니다. 남녀노소, 인간과 동물 할 것 없이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감히 꿈꿀 수 없는 분위기였지만, 우리 눈에는 부족하게 보이는 것이 모든 것을 품어 안을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음을 가르쳐줬습니다. 경계가 허물어진다는 것은 불안해 할 무엇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매력적인 초대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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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인 신부 (요한)
예수회. 청소년사목 담당.
“노는 게 일”이라고 믿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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