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례 상 식

[교회상식 속풀이] 46. 금육제(禁肉祭)가 아니고 금육재(禁肉齋)라굽쇼?

dariaofs 2014. 3. 26. 04:00

 

며칠 전에, 한 때 같은 공동체에 머물며, 저랑 만나면 기도생활과 연예계 이야기 빼고는 참으로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담소를 나누던 후배 수사님을 만났습니다. 돌이켜보니 우리는 요리에 대한 이야기도 자주했더랬습니다.

 

자신이 머물고 있는 공동체에 다른 형제들이 대부분 본가 방문과 출장으로 그날 저녁 혼자 식사를 해야 할 상황인데 뭘 해먹으면 좋을까 하며 심각하지 않은 고민을 하고 있더군요. 그날이 마침 금요일이었기에 저는 한 마디 조언을 해줬습니다. “가능하다면 육류는 빼시게.”

 

금요일에 육식을 피하는 관습은 그리스도교 초기부터 내려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금요일에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금요일(성금요일)에만 금육을 할 수도 있지만, 평상시에도 금요일마다 지켜보려했던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목숨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고통과 죽음에 우리 역시 조금이라도 일치해 보고자 몸가짐을 정갈하게 하려는 뜻에서 생긴 전통이니 바람직해 보입니다. 대신 예수님이 돌아가신 당일인 성금요일에는 하나가 더 추가됩니다. 금식이 그것입니다.

 

   
 ⓒ박홍기

 

교회법에서는 연중 모든 금요일에는 대축일과 겹치지 않는 한 금육재가 지켜져야 하고, 재의 수요일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수난하시고 돌아가신 성 금요일에는 금육재(예전에는 소재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에 금식재(옛말로 대재)가 지켜져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제 1251조 참조)

 

옛날에는 성장기에 있는 어린이들과 노약자들은 이 규정에서 메일 필요가 없었습니다. 참고로, 금식은 하루 종일 굶는다기 보다는 한 끼 식사를 거르는 것입니다. 그때 아껴둔 먹을거리를 모아 자선을 위해 사용하는 전통이 아직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의미에 대해 숙고하지 않으면, 금육재를 그냥 하나의 예식이나 행사로 판단하여 ‘금육제’라고 여기시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저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아마도 ‘사육제’(carnival)랑 내용이 대비되기에 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금육재는 무엇을 기념하거나 제사를 올리는 행위가 아니라, 내가 그리스도를 사랑하여 나의 완덕을 위해 몸과 마음을 관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좀 더 일반적인 의미로 보자면, 하늘과 땅이 만나는 일 곧 제사를 드리기 위해 몸을 정갈히 하는 재계를 가리킵니다. 재계에서 ‘재(齋)’는 음식을 삼가는 것을, 계(戒)는 부정한 행동을 금하는 것을 뜻합니다.

 

오늘의 한국사회는 금요일에 대해 “불타는 금요일”의 준말인 “불금”이란 말을 만들어 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토요일에 쉬는 회사들이 많아졌고, 이런 식으로 주 닷새 근무제도가 확대되었기 때문입니다.

 

토요일이 휴일이니 금요일 저녁엔 직장 회식, 다양한 모임도 많이 생겼습니다. 우리의 식문화도 많이 바뀌어 식사에는 대부분 육류가 포함된 음식이 등장합니다.

 

금요일에 금육의 재를 지켜보려는 이들에게는 참 당황스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육류 소비가 너무 늘다보니 어린이와 노약자는 금육재를 지킬 필요가 없다는 규정이 무색합니다.

 

하지만, 부득이한 경우에도 금육재를 꼭 지키려다보면 정신적으로 불편하고 인간관계상으로도 난처해질 수 있으니 너무 율법적으로 이 사안을 대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먹어야 할 일이 있고, 그런 기회가 된다면 그렇게 하는 게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단지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때 절제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좀 달리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금육재를 지키기 힘든 상황이라면 그에 상응하는 선행을 실천해 보는 것도 하나의 좋은 대안이라 하겠습니다.

 

육류소비가 늘어난 오늘의 한국상황에서 금육재를 의식적으로 행하는 것은 환경적인 이유와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몇 년 전에 로마의 예수회 총본부에서 전 세계 모든 예수회원들에게 편지가 왔던 것이 기억납니다.

 

총장 신부님(Father general)이 보낸 것이었는데, 가능하면 금육을 지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온갖 다양한 사도직에 투신하고 있는 예수회원들이 사도직 때문에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금육재가 오늘날 육류의 과다한 소비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이 될 것이기에 지키라는 권고였습니다.

 

따지고 보면, 전 세계에서 고기를 풍족하게 먹을 수 있는 나라가 얼마나 될까요? 육류의 공급량은 수요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대단위 축산이 이루어지고 있고, 동물들을 도축하여 만들어낸 고기의 공급량이 사실상 수요를 앞지릅니다.

 

시장에 내놓으면 팔린다는 것이 공급자들의 생각입니다. 소비자들은 그들의 강요 앞에서 자유롭지 못한 셈입니다. 결국 우리는 필요이상으로 육류를 소비합니다. 고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 특히 소고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 엄청난 녹지와 곡물이 소비됩니다.

 

이 녹지가 달리 쓰인다면 좀 더 맑은 대기를 만들어 낼 수도 있습니다. 이 곡물이 달리 쓰인다면, 아프리카에서 기아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살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말로는 금육재가 금요일과 같이 ‘금’자로 시작해서 기억하기도 좋습니다. 금요일만이라도 작은 실천을 해볼 수 있습니다. 요즘 풍토에서 금요일이 정 어렵다면, 앞서 말씀드렸듯이 대안적인 선행을 계획해 볼 수도 있고, 요일을 바꿔보는 것도 시도해 볼 만합니다.

 

제가 파리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기 전 한 해 동안 머물렀던 공동체는 화요일과 금요일이 금육재를 지키는 날이었습니다. 금요일은 이해하겠는데 화요일은 무슨 이유로 설정해 놓은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단지 화요일마다

 

저희 공동체 바로 옆길에 아침 장이 열렸기 때문이라고 어림해봅니다. 덕분에 새벽같이 올라온 싱싱한 야채와 치즈, 생선을 사러 공동체 동료와 함께 거리 시장을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모색하는 ‘재’가 환경보호에도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더불어 ‘재’를 통해 소비자가 누려야 할 자유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이 또 다른 의미에서 세상을 돌보는 일과 연결되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박종인 신부 (요한)
예수회. 청소년사목 담당.
“노는 게 일”이라고 믿고 살아간다.